[우리가 보는 세상]

전력 인프라는 '느리고 무거운' 사업이다. 각 프로젝트 규모가 크지만 그만큼 사업 건수가 적다. 전력망 교체 주기가 보통 수십년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필요한 사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력 인프라 시장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지난해 우리 전선 업체 수주 소식이 부쩍 늘더니 올해도 한 달이 멀다 하고 낭보가 들린다. 지난달 LS전선과 대한전선은 각각 2000억원, 520억원 규모 해외 사업 수주 소식을 전했다. 3월에는 두 회사가 나란히 영국 전력 송배전 기업과 HVDC(초고압직류송전) 프로젝트를 위한 프레임워크 계약을 했다고 발표했다.
수주 성과는 그대로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LS전선의 지난해 매출은 6조7653억원으로 전년(6조2171억원) 대비 5000억원 넘게 늘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 매출 3조원을 넘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8555억원을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8.5% 늘었다. LS전선과 대한전선 모두 올해 지난해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회사의 선전은 높은 기술 경쟁력과 더불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이 도래한 영향이 크다. 미국·유럽의 노후 전력망 교체, 동남아시아 등의 신규 인프라 구축 시기가 맞물리며 세계적으로 전선 수요가 급증했다.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의 AI(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구축,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추세도 전선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수퍼사이클에 따른 호실적에 안주하기보단 과감한 투자를 선택했다.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의사결정이다. LS전선은 약 1조원을 투입해 미국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미국·유럽 해상풍력 시장을 공략한다. 회사의 해외 해저케이블 공장 착공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전선은 올해 상반기 충남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 종합 준공을 완료하고 2027년 2공장 가동을 시작한다.
이들 두 회사에도 고민은 있다. 바로 미국의 정책이다. 우선 관세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25%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후 양국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25% 관세가 현실화하면 LS전선과 대한전선 모두 미국 수출에 타격을 받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소극적이라 현지에서 추진 예정이던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LS전선이 미국 해저케이블 공장의 초기 주요 수요처를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LS전선은 최근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이 (우리의 제품을) 다시 필요로 한다면 미국 내수 시장을 위해 여기에서 준비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외 리스크는 개별 기업이 해소하기 어렵다. 정부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모처럼 '물 만난' 전선 기업의 수출길이 험난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세 등 협상 과정에서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LS전선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이미 단행했고, LS전선과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 등에서 미국 현지 기업은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협상 과정에서 들이밀어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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