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출국을 앞두고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고 USDT를 구입한 후 공항 라운지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출국 전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몸을 홀가분하게 비운 지금 쓸모없는 게 딱 하나 있다. 지갑에 있는 우리나라 돈이다. 원화는 정말이지 외국에선 쓸모가 없다. 하지만 세계 어디서든 원화를 사용하고 싶다.
디지털 자산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으로 통화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화폐가치를 유지하면서 전송과 보관이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통화로 달러 기반 코인이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나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은행을 비롯한 전통 금융기관이 가장 먼저 발행 주체로 거론된다. 이는 금융기관은 기존 규제체계 안에서 높은 회계 투명성과 자산운용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급준비금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상 법적·제도적 안정성을 갖춘 금융기관은 신뢰확보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은행은 보수적인 운영방식과 내부 의사결정 구조, 기술변화에 대한 낮은 수용성 등으로 인해 시장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지급준비금을 한국 국채로 설정할 경우 미국 국채 기반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글로벌 신뢰도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반면 핀테크 기업의 접근은 보다 시장친화적이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국내 대표 플랫폼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마케팅 수단이자 사용자 확대전략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동일한 스테이블코인을 다양한 기업이 함께 사용하면 사용자 입장에선 서비스간 전환이 쉬워지고 기업 입장에선 신규 유저확보와 유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결제, 송금, 리워드 등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코인에 담는 시도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핀테크 기업이 발행 주체로 나서기 위해서는 자산신탁체계, 회계의 투명성, 금융당국과 협업 등 극복해야 할 현실적 과제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은행과 핀테크 양측 모두 장점과 약점이 뚜렷한 상황에서 입법·제도권은 누구에게 발행권을 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모색한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은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를 발행 주체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발행 주체를 제한함으로써 스테이블코인의 혁신 가능성이 위축될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 최근 통과된 '지니어스액트'(GeniUS Act)는 발행 주체의 자격보다 지급준비금의 안정성과 회계투명성 확보를 중심 원칙으로 설정했다. 누구든 기준을 충족하면 발행이 가능토록 문을 열되 그 기준을 철저히 검증하는 방식이다.
독자들의 PICK!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비춰볼 때 우리는 '누가' 발행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신뢰를 확보할 것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통화며 통화는 기술이나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뢰, 사용성, 네트워크라는 3요소가 결합해야 비로소 통화로서 기능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발행 주체는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자산운용 역량, 핀테크의 기술력,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공동발행 또는 협력구조가 바람직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패권을 뒤엎으려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달러에 종속된 글로벌 결제망에 균형을 부여하고 한국 경제의 디지털 영향력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K콘텐츠, K금융, K투자에 관심 있는 글로벌 사용자와 파트너들에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리잡기 위해선 누구 하나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은행과 핀테크, 규제당국과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공동으로 발행하고 신뢰를 공유하는 구조만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연합의 시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