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인공지능)에게 한강 작가의 소설을 학습시키면 문체를 흉내내서 모사 작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 내지는 못한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을 학습시킨다고 해서 고흐나 모네 같은 화풍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범용인공지능(AGI) 시대가 오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AI는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통찰, 상상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이질적인 분야를 결합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AI의 부상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 교육은 지식을 암기하고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능력을 중시했다. 기억력과 연산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AI의 등장으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고등사고능력 함양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비판적인 생각(Critical thinking), 창의적인 발상(Creativity), 타인이나 AI와의 협업(Collabo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이른바 4C 역량이다.
인문학은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기반을 제공한다. 인류가 축적해 온 사유와 경험이 담긴 인문학은 AI가 편향된 정보를 생성하거나 잘못된 답을 내놓을 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도구가 된다. 인문학은 윤리적 나침반이자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추출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낯선 것들을 연결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문학·역사·철학 등은 이러한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는 토양이다. 국가의 AI 경쟁력은 단순히 기술력에 달려있지 않다. 언어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AI의 활용성과 영향력이 달라진다.
AI 시대에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챗GPT나 제미나이의 빈칸에 무엇을 물을지 고민하는 힘은 인문학적 성찰에서 시작된다. 칸트의 명언을 빌려 표현한다면, 인문학 없는 AI 기술은 맹목적이고, AI를 외면한 인문학은 공허한 지식에 머무를 수 있다. 앞으로의 인문학 교육은 AI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실천적인 융합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기술과 인간사회를 매개하고, 급격한 과학기술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문학 기반의 AI 융합 교육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미 AI를 활용해 직무를 수행하는 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그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인문사회 계열 전공자들이 사유, 공감, 상상, 직관을 바탕으로 AI 융합 교육을 받으면, '문송합니다'라는 자조를 넘어 AI 시대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사회, 과학기술, 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융합 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HUSS) 사업에서 다양한 주제의 교육공유와 융합교육이 실천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지속 가능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발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적인 비전 속에서 인문학 기반의 AI 융합 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이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