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일본의 북한'이라 불린 섬

[투데이 窓] '일본의 북한'이라 불린 섬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6.03.11 04:00

오이타현 앞바다의 작은 섬 히메시마 마을회관 앞에는 소박한 동상 하나가 서 있다. 관광객을 위한 조형물도, 지역 캐릭터도 아니다. 전후부터 이 섬의 행정을 이끌어온 후지모토 가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본에서도 정치인의 동상이 일상 공간 한복판에 서 있는 사례는 드물다. 그럼에도 이 섬 주민 대다수는 이 풍경을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히메시마의 정치는 '교체'보다 '연속'의 언어로 설명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상은 권력의 과시라기보다, 오랜 시간 유지돼 온 선택의 기록에 가깝다.

히메시마는 인구 2000명이 채 안 되는 낙도다. 에도시대부터 어업 외에는 산업 기반이 약했고, 전후 고도성장기에도 개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젊은 층은 도시로 떠났고, 섬에 남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변화보다 유지였다. 급격한 혁신보다 오늘을 내일로 이어가는 것이 목표가 된 공간이었다. 이 조건 속에서 후지모토 가문의 집권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으로 완성됐다.

연표로 보면 흐름은 분명하다. 1950년대 전후 혼란기, 초대 후지모토 촌장은 항만 복구와 정기선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먹고사는 문제 이전에 '섬이 끊기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1960~70년대 2대 촌장 시기에는 중앙정부의 낙도 진흥 정책을 적극 활용해 항만과 생활 인프라를 정비했다. 대규모 개발 대신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는 전략이 이 시기에 굳어졌다.

1980~90년대 3대 집권기에는 교육과 의료가 핵심 과제가 됐다. 학생 수 감소에도 초·중학교 통폐합을 늦추고, 의사 파견을 유지해 '섬에 학교와 진료소가 있다'는 최소 조건을 지켜냈다. 2000년대 이후 4대에 이르러서는 재정 관리와 산업 유지가 중심이 됐다. 무리한 투자 대신 보조금과 소규모 정비를 반복하며 적자를 키우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매번 "지금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재신임으로 이어졌다.

이 장기 집권의 결과 히메시마에는 '일본의 북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십 년간 정권 교체가 없고,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적이며, 선거 결과가 늘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표현은 언론과 SNS를 통해 소비되며 섬을 하나의 '이상 사례'로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 히메시마의 풍경은 우리가 떠올리는 북한과는 거리가 멀다. 강제도, 선전도 없다. 대신 소규모 공동체 특유의 합의와 침묵이 있다. 갈등은 곧 일상의 균열로 이어지기에, 안정은 곧 생존이었다.

히메시마 경제의 한 축은 보리새우 산업이다. 어획량은 많지 않지만 품질이 높아 단가가 비싸다. 후지모토 행정은 이를 '확대 산업'이 아니라 '관리 산업'으로 다뤘다. 어획 시기와 물량을 제한하고, 현과 협력해 브랜드화를 추진했다. 공동 냉동·보관 시설을 구축해 어민 부담을 줄였고, 고급 일식점 유통망을 확보했다. 대박은 없지만 가격 붕괴도 없는 구조다. 작은 섬에 어울리는, 그러나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산업 모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주민 중 공무원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군청, 학교, 진료소, 항만 관리 등 공공부문이 섬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민간 일자리가 제한적인 환경에서 행정은 곧 산업이었고, 안정적인 소득원이자 인구 유지를 위한 장치였다. 이는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무원이 많은 사회는 규칙과 연속성을 중시한다. 급격한 정권 교체보다 '행정을 아는 사람'에게 표가 몰리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한국과 비교하면 대비는 선명하다. 한국 지방자치는 경쟁과 교체가 활발하지만, 행정의 축적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성과는 빠르지만 지속성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히메시마는 역동성은 없지만 안정과 지속성이 극대화된 사례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기준은 분명히 다르다.

마을회관 앞 후지모토 동상은 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묻는 듯하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치가 실패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본의 북한'이라는 별명 뒤에 숨은 이 섬의 연표는 지방자치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잣대를 조용히 제시하고 있다.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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