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이 흘러 넘치는 주(state·州)들에 AI(인공지능) 빅테크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전력계통 시장 상황에 정통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가 최근 전해준 말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풍부한 발전 역량을 보유한 주들에 앞다퉈 "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주정부들이 온갖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빅테크들을 모셔가기에 바빴던 상황과는 사뭇 달라진 셈이다.
이 관계자는 "풍부한 일조량을 바탕으로 태양광 발전 역량 등을 보유한 미국의 선벨트(Sun Belt) 지역이 오히려 빅테크들을 줄세우는 상황"이라며 "AI 시대의 개화가 만들어낸 변화"라고 설명했다. 막대한 규모의 전력 없이는 AI 관련 인프라가 작동할 수 없기에 콧대높은 빅테크들이 을(乙)처럼 보이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력이 흘러넘치는 곳이라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AI 관련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메타·xAI 등 유력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앨라배마·조지아·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딥사우스(Deep South)가 대표적이다. 미국 남부의 오래된 낙후 지역이지만 태양광 등 풍부한 전력 인프라를 보유한 덕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분명하다. AI 산업이 흥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 '전력'이라는 점이다. 관련 인프라 없이는 AI 산업도 존재할 수 없다. 전력 인프라가 확실하게 갖춰진 지역이라면 AI 관련 기업들이 알아서 따라오는 현상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각 지역별 AI 국가 균형발전 계획은 이같은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충분한 전력을 갖춘 지역에 기업이 자연스럽게 향하는게 아니라, 마치 원스톱 속도전 양상으로 전력과 산업 기반 구축이 추진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유력 대기업들이 수천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실성이 있느냐", "일단 지르고 본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AI 산업은 고도화된 제조업과 다름없다. 공장을 짓는다고 그냥 반도체가 만들어 지고 데이터센터가 돌아가지 않는다. 기본 인프라가 반드시 전제돼야 하고, 각종 첨단 장비 확보를 위한 스케줄도 맞춰야 한다. AI를 통한 미래 먹거리 확보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의 디테일이다. 무리한 '속도전'보다는 치밀한 '빌드업'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일단 각 지역에 AI 산업의 기본인 전력 인프라부터 갖춘다면 기업의 투자도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