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논문 위에 잠든 기술'을 깨워야 한다

[투데이 窓] '논문 위에 잠든 기술'을 깨워야 한다

류창완 한양대학교 교수·창업대학원장
2026.09.20 07:00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UFO 칼럼] 류창완 한양대학교 교수·창업대학원장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생 래리 페이지는 학위연구로 개발한 검색 알고리즘 '페이지랭크'를 100만달러(약 13억8000만원)에 팔고자 포털들에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대학원을 휴학하고 직접 회사를 차렸고, 특허는 대학에 남겼다.

훗날 그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 구글로 성장하면서 대학이 라이선스 대가로 받은 주식은 2005년 3억3600만달러(약 4631억원)의 연구 재원이 됐다. 연구자는 기업가가 되고, 대학은 연구비를 얻었으며, 시장은 혁신을 누렸다. 실험실 창업이 만드는 선순환의 전형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박사학위가 곧 교수직으로 가는 티켓이었던 1989년, 서울대 박사 변대규는 동료들과 창업해 매출 1조원의 '휴맥스'를 일궜고, 1997년 카이스트 박사과정생 김영달은 세계적인 디지털 영상저장장치 기업 '아이디스'를 세웠다.

2000년대에는 교수들도 벤처 열풍에 나섰다. 서울대 서정선 교수의 '마크로젠'은 바이오 벤처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고, 포스텍 성영철 교수의 '제넥신'은 한때 시가총액 2조원을 넘겼다.

2010년대 들어 혁신의 주역은 다시 대학원생들로 넘어왔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연구실 출신의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를 최대주주로 맞았고,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라이다와 뇌 영상 AI(인공지능) 창업 기업들도 코스닥 상장까지 완주했다.

창업 지원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절부터 실험실의 석·박사들은 연구실을 넘어 스스로 시장을 향해 걸어 나왔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이들의 성취는 체계적인 시스템보다 개인의 비범한 결단이 만든 예외적인 결과에 가깝다.

올해 우리나라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은 35조5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최상위권이며 논문과 특허 건수도 막대하다. 반면 올해 6월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대학이 새로 확보한 기술 중 실제 이전된 비율은 26%에 그쳐 미국, 영국에 크게 못 미친다.

이전 기술 중 매출로 이어진 비율도 2023년 기준 19.2%에 불과했다. 대학 기술 100건 중 시장에서 팔리는 건 5건 남짓인 셈이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절반이 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30대 기업 중에는 한 곳도 없다. 논문의 저자는 많은데 기술을 시장으로 옮기는 사람과 이들을 길러낼 시스템은 부족하다.

이 병목을 국가 차원에서 먼저 짚은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문제의 본질을 '연구비 부족'이 아니라 기초연구를 사업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지식의 격차'로 진단했다. 해법으로 연구자가 실험실 밖으로 나가 잠재 고객 100여명을 직접 인터뷰하는 실전 창업 교육을 도입했다.

현재까지 3000여개 팀이 이 훈련을 거쳤고, 이중 52%가 실제 창업으로 이어져 70억달러(약 9조6600억원)가 넘는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참여 팀 리더의 절반 이상은 대학원생이었다. 시장을 읽는 안목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라 '배워서 익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국가적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처방은 명료하다. 병목의 원인이 '지식의 격차'라면 처방은 '교육'이어야 한다. 학부 창업 교육을 넘어 주요 대학 재학생의 30% 안팎을 차지하는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의 실전 창업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연구원들에게 기술을 사업으로 바꾸는 '촉'과 시장의 가능성을 읽는 건강한 야성(野性)을 길러줘야 한다.

혁신의 승부처는 결국 강의실과 시장에 있다. 30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의 꿈을 얻었던 아이디스 김영달 회장은 그곳에 건물을 마련해 모교와 함께 글로벌 창업 캠퍼스를 조성했다. 선배의 경험이 후배들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다.

기술이 실험실에서 태어나는 것은 온전히 연구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기술이 논문 위에서 잠들지 않고 거대한 시장으로 걸어 나가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우리 교육의 몫이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