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경쟁력, 조직 재설계에 달렸다[청계광장/이정식]

AI 시대 경쟁력, 조직 재설계에 달렸다[청계광장/이정식]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2026.08.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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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남는 시간에 추가업무 부과 우려
새 기술 받아낼 조직,보상 체계 시급
덴마크,싱가포르 등 해외사례 배워야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51.8%가 이미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절약한 시간(주당 평균 1.5시간)은 개인업무의 효율을 높였을 뿐, 기업 차원의 생산성 향상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기업의 제도화된 AI 도입률은 여전히 10%에 미치지 못한다. 조직이 AI로 일하는 개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이 조직의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전환의 공백'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간극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미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는 "컴퓨터 시대는 어디에나 보이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일찍이 1987년 꼬집었다. 컴퓨터가 사무실에 보급된 뒤에도 한동안 생산성이 정체된 것은, 기업들이 업무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구조를 기술에 맞게 재설계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때문이다. 지금 AI도, 기술보다 조직변화가 더디다는 점에서 당시와 닮았다. 문제는 전환속도와 방식을 결정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통계수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곳에 있다. AI로 절약된 시간은 누구의 몫인가. 조직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업무 속도만 빨라지면, 그 여유는 휴식이나 학습이 아니라 추가 업무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AI 도입 이후 노동강도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현장 목소리가 적잖다. 성과와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생산성 향상은 결국 번아웃과 이직률 상승, 조직 신뢰 저하로 되돌아온다. AI로 번 시간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부족하다.

해외에서는 이 질문에 다양한 답을 내놓고 있다. 덴마크는 노사 협력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는 오래된 강점을 AI 전환에도 그대로 적용해, 노동자의 참여 속에 직무가 바뀌어도 노동자가 재교육을 통해 다음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국가 평생학습제도(SkillsFuture)로 재교육 비용을 사회가 함께 부담하며 기술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 7월 발표한 'AI 시대의 스킬(Skills in the AI age)' 보고서 역시 AI의 성패가 기술 자체보다 직무 재설계 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받아낼 조직과 제도,보상체계를 먼저 준비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의 과제는 이제 명확해진다. AI 활용 능력을 가르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일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AI에 맡기고, 사람은 문제 해결과 협업,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도록 직무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된 시간과 성과가 조직에만 쌓이지 않도록 이익공유와 학습시간 보장, 재훈련 투자라는 세 가지 장치를 함께 갖춰야 한다.

이익공유는 AI로 늘어난 성과의 일부가 임금이나 성과급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장치이고, 학습시간 보장은 절약된 시간이 다시 업무로 흡수되지 않고 노동자의 역량을 키우는 데 활용되도록 최소한의 학습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이다. 재훈련 투자는 직무가 바뀌는 이들이 새로운 역할로 옮겨갈 다리를 놓는 장치다. 세 장치 중 하나라도 빠지면, AI가 만든 여유는 결국 소수의 몫으로 흡수되고 만다.

노동정책도 이 흐름에 맞춰 재편돼야 한다. 직무 재설계, 숙련 전환, 평생학습, 성과공유가 이제 노동정책의 곁가지가 아니라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혁신유인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의 전환을 지원하는 균형있는 제도설계가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가 아니라, 그 기술에 맞춰 조직과 제도를 가장 먼저 바꾼 나라가 앞서갔다는 것이 산업혁명 이래 반복된 역사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다. 이제 남은 경쟁은 조직과 제도를 바꾸는 속도다.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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