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역사 우에노공원 세계미술 중심 돼
120년만에 찾은 용산은 후세 물려줄 유산
정치적 개발은 땅의 '역사성' 파괴하는 것
"꽃구름 속에 들리는 종소리는/우에노일까 아사쿠사일까"
일본 에도시대 최고의 시인 마쓰오 바쇼는 우에노의 만개한 벚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벚꽃이 구름처럼 뒤덮인 풍경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우에노 간에이지(관영사)에서인지, 아사쿠사 센소지(천초사)에서 울리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을만큼, 봄꽃의 아름다움이 도시 전체를 감쌌다는 찬사다.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은 메이지유신 때 조성됐다. 빽빽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우에노공원은 녹색섬처럼 보인다. 우에노의 거목들은 마쓰오 바쇼가 노래한 그대로 구름처럼 뒤덮여있다. 150년이 넘었지만 공원내 대형 건축물은 4곳에 불과하다. 도쿄국립박물관,국립서양미술관, 도쿄도미술관,우에노노모리미술관이다.
우에노공원의 건축물은 모두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다. 특히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은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쿄는 우에노공원의 3대 미술관을 앞세워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이달 초 32년만에 우에노공원을 다시 찾았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리는 ' 램브란트전', 우에노노모리미술관에서 열리는 '반 고흐전'을 보고싶었다. 국립서양미술관 옆엔 생뚱맞게 야구장이 있다. 이 야구장은 국립서양미술관이 건립되기 훨씬 전인 1880년대 후반에 조성됐다. 야구장 옆에는 '봄바람이여, 공을 던지고 싶은 풀밭이여'라는 시인 마사오카 시키의 글귀가 적혀있다. 야구광이었던 마사오카 시키는 '타자', '주자'등 야구용어를 일어로 번역한 인물이다. 나는 이번 방문에서 왜 일본이 이 야구장을 철거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도쿄시민들은 우에노라는 땅에 얽힌 이야기, 역사마저 사랑한 것이다.
서울 용산공원 부지는 120년 동안 남의 나라 땅이나 다름 없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위안스카이가 군대를 몰고 들어왔다. 23세의 새파란 그는 청나라의 '총독'처럼 조선의 왕위에 군림했다. 청일전쟁 때 승리한 일본은 이 땅을 영구적인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엔 미군이 들어왔다. 용산은 우리 땅인데도 한국인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용산을 다시 찾은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좌파단체들의 극렬한 반대투쟁에도 용산미군기지 평택 이전을 밀어붙였다. 그는 2007년 여야 합의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을 만들었다. 다시 찾은 이 땅을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고, 후세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남겨주자는 뜻이었다.
용산은 치욕과 수난의 역사를 갖고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이 땅을 자랑스런 역사로 바꿔 물려줄 의무가 있다. 그러려면 100년 정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용산의 역사성·상징성을 살려 차근차근 가꿔나가야 한다.한국인들의 기억속에 장기간 지워진 이 땅에 새로운 서사를 입혀야 한다. 용산공원은 녹지를 최대한 살리되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에도 의미를 담는 정성이 필요하다. 건축물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품격을 지녀야 하고, 공공화장실 디자인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 특히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졸속 개발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서울에 용산공원 부지만한 녹지를 조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솔직히 이 땅에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다면 이미 녹지는 거의 사라지고 아파트 숲으로 난개발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립중앙박물관 뒷편 30만㎡(9만여평) 땅에는 용산어린이정원이 들어섰다. 용산과 남산을 잇는 녹지축의 핵심이다. 정부·여당은 이 녹지에 최대 2만가구의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다. 반대여론으로 실제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런 몰상식한 발상을 여론 수렴도 하지않고 밀어붙이는 시도 자체가 용산의 역사·환경·미래를 파괴하는 짓이다.
용산공원에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묻고싶다.
"우리는 왜 용산을 역사·자연·예술이 어우러진 우에노처럼 만들면 안될까. 다시 찾은 용산을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할 공간으로 온전히 물려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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