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붉은 샌드위치 위기(The Red Sandwich Crisis)'를 두려워해야 할까

[유효상 칼럼] 왜 '붉은 샌드위치 위기(The Red Sandwich Crisis)'를 두려워해야 할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9.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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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지난 7월 27일,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ChangXin Memory Technologies)가 상하이증권거래소 산하 과창판(科创板·중국판 나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무려 4.7배나 폭등하며 단숨에 중국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2026년 아시아 증시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였으며, 그 여파로 코스피와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까지 출렁였다. 8월 말 공개한 상장 후 실적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배 이상 급증했고, 대규모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반도체 굴기를 향한 중국 정부의 자금과 정책이 총동원된 CXMT는 2016년 지방정부인 허페이시가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상장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9월 초 현재 시가총액은 800조 원에 육박하며 중국 본토 1위를 지키고 있다.

CXMT는 빠른 생산능력 확대와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자급자족 정책에 힘입어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 7%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웨이퍼 투입량 기준 생산능력은 13%에 육박한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은 CXMT가 2028년까지 중국 국내 D램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소화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해 온 중국 메모리 시장의 판도가 구조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8월 11일에는 양자 기술 기업인 궈이양자(CIQTEK·国仪量子)가 과창판에 입성했다. 전자현미경과 양자 정밀측정 장비 등을 주력으로 개발하는 궈이양자는 상장 첫날 주가가 419.5%나 폭등했다. 이 역시 허페이 지방정부의 자본과 정책 지원이 결합된 결과다. 이어 8월 19일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니트리(Unitree·宇树科技)가 과창판에 입성했다. 상장 당일 장중 최대 629%까지 폭등했고, 상장 예비심사 신청 후 불과 73일 만에 승인을 받으며 과창판 역대 최단기 입성 기록을 세웠다. 화웨이 '천재소년' 출신 펑즈후이(彭志辉)가 창업한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아지봇(Agibot) 역시 올해 안에 홍콩 주식시장 상장이 예상되고 있다. 유니트리와 아지봇의 빠른 성장은 중국 로봇 산업의 약진을 상징한다.

YMTC(Yangtze Memory Technologies Corp.)도 과창판 상장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미국의 수출 제재 속에서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며,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온 YMTC의 부상 역시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업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한 저가 선박에만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전환,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핵심 기자재 국산화를 앞세워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선박집단(CSSC) 산하 조선소들은 3D 디지털 모델링 기반의 '무도면 건조 시스템'과 5G, AI 자동 용접·도장 로봇 등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초대형 LNG 운반선부터 메탄올·암모니아 추진 컨테이너선, 초대형 크루즈선까지 고부가가치 선박의 설계·건조 역량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2026년 7월 기준 중국 조선소의 LNG 운반선 수주가 34척으로 한국의 32척을 처음 앞질렀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산업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중국 기업들의 약진을 단순한 개별 기업의 성공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설계하고 자본이 밀어붙이는 중국식 혁신 방정식, 이른바 '차이노베이션(Chinnovation)'이 자리하고 있다. 차이노베이션을 움직이는 엔진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자율주행과 AI 등 신산업을 빠르게 육성해 온 선(先) 허용·후(後) 규제,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다. 둘째, 알리페이·위챗페이와 테무·쉬인 등 디지털 플랫폼과 이커머스가 뿌리내린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셋째, 비야디(BYD)·CATL 등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뒷받침한 국가 차원의 장기 R&D 투자다. 마지막으로 DJI 드론처럼 기획부터 시제품, 양산까지 초단기로 연결되는 선전(深圳) 중심의 촘촘한 제조 생태계다. 돈·시장·제조·규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혁신의 속도를 높인다는 것이 차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러한 성장이 미국의 첨단 반도체·AI 수출 제재라는 강력한 외부 제약 속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진짜 경쟁력은 보조금의 크기나 개별 기업의 기술력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 자본·내수시장·제조생태계·규제환경을 결합해 기술개발→시장검증→양산→가격인하의 사이클을 극단적으로 단축하는 능력에 있다. 기술 격차를 줄이는 속도 자체를 경쟁력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쟁력이 무서운 이유는 개별 기업 하나가 한국 기업을 추월해서가 아니다. 반도체·로봇·조선·전기차·양자 등 서로 다른 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핵심 산업에서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여나가는 하나의 경쟁 방정식을 확립했다는 증거다.

미·중 간 미증유의 패권 경쟁과 차이노베이션의 공세가 격화되는 과정에서 한국 산업계는 극심한 '붉은 샌드위치 위기(Red Sandwich Crisis)'라는 구조적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과거 한국의 샌드위치 신세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것이었다. 일본에는 기술로, 중국에는 가격으로 밀리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하나가 위에서는 기술로, 아래에서는 가격으로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하단에서는 막대한 정책 지원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범용 D램, 사족보행 로봇, 드론 등에서 공격적인 가격 공세를 펼치며 한국의 주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반면 상단에서는 첨단 낸드, 차세대 D램, 상업용 휴머노이드, 친환경·자율운항 선박 등에 이르기까지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며 한국이 오랫동안 강점을 유지해 온 고부가가치 시장마저 위협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모든 산업이 곧바로 한국을 추월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 원천기술, 글로벌 신뢰, 품질 안정성, 공급망 네트워크 등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문제는 격차의 존재가 아니라 그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다.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중국산 부품과 소재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의 기존 공급망과 사업모델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자국산 부품 채택이 확대될수록 한국 기업이 누려온 가격 결정력과 수익성에도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이 흐름을 방치한다면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제조업이 기술과 가격 모두에서 경쟁우위를 잃고 단순 생산기지로 전락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차이노베이션이 몰고 온 '붉은 샌드위치 위기'는 한국 산업을 받쳐온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다시 써야 한다는 경고음이다. 중국을 막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국이 따라오는 속도보다 우리가 새로운 기술과 시장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중국과 같은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HBM4·CXL 등 차세대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처럼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분야에서 다시 초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중국 내 기존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는 엄격하게 선별하고, 신규 첨단 투자와 차세대 미세공정 R&D·첨단 패키징 역량은 국내 핵심 거점에 집중 배분하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이 필요하다.

초격차는 구호가 아니다. 중국이 따라오는 속도보다 얼마나 빨리 다음 기술과 다음 시장을 선점하느냐의 문제다. 붉은 샌드위치라는 거대한 포위망을 뚫어낼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 정부는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기업은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과 선택적 디리스킹으로 공급망의 안전판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중국을 얼마나 막느냐가 아니다. 중국이 따라오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다음 산업과 다음 기술로 이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초격차는 기존의 자리를 지키는 방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내는 선제적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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