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도 선거결과 반영하는거지만
학교에 정치적 신념을 전파해선 안돼
진영 넘어 미래 보고 반대의견 들어야
교육과 정치는 어떤 관계여야 할까. 교육정책의 결정에 정치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고, 학교는 정치와 어떤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 이는 지난 몇 년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화두였다. 우선 교육정책도 정치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선거로 표출된 민의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민의를 대변하는 것과 미래 세대를 위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다. 교육정책을 수립할 때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조정하는 숙의가 필요하고, 때로는 일부의 반대를 감수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최근 교육의 미래를 논하는 모습을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국회든 정부위원회든 공청회든, 교육철학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장의 내용보다 누가 제안했는지를 살피거나,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기 전에 배척부터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생각이 달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정책을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는 것만큼 상대의 말을 듣고, 새로운 근거 앞에서 판단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절제와 중용은 신념의 부족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맡은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숙의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숙의가 결정의 유예를 위한 변명이 돼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교육정책에는 반대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동의와 완벽한 방안을 기다리다 변화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때로는 결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다음 세대에 더 큰 부담을 남길 수도 있다. 충분히 논의하되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결단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가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요구된다. 5.31 교육개혁을 주도했던 박세일 교수는 율곡의 말을 빌려 시대의 변화를 이끌 '경장(更張) 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정책에도 진영의 이해를 넘어 미래를 위해 변화를 선택하는 경장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 활동과 정치의 관계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 교육은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학교는 정치적 신념을 전파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학교가 사회 문제에 눈을 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일수록 민주사회의 발전을 위한 교육의 역할은 중요하다. 세대와 성별, 지역과 이념, 계층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하는 현실에서 교육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존 듀이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았다. 학교는 이를 경험하는 작은 사회다. 학급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갈등이 생기면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며,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경험이 민주 시민을 기른다.
그런 배움이 가능하려면, 학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학교의 일에 정치가 개입하고 교사와 학생이 판단하고 성찰할 여지가 줄어든다면, 학생이 민주적 문제해결을 배울 기회가 사라진다. 학교 공동체에는 전문성과 양심, 동료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바로잡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믿고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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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사람과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은 다르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른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지, 자기 신념보다 학생의 미래를 앞세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교육정책에는 경청하는 겸손과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교육에는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르게 할 책임이 있다. 오늘 우리가 교육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내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