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이클 자원강국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국제 분쟁의 증가 추세 속에 자원이 곧 안보인 시대가 열렸다. 리사이클링은 자원빈국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원강국'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확인해봤다.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국제 분쟁의 증가 추세 속에 자원이 곧 안보인 시대가 열렸다. 리사이클링은 자원빈국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원강국'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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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을 핵심 정책 과제로 내세우면서 폐자원을 산업 원료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 추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들어 폐전기·전자제품 속 희토류 영구자석 회수, 미세조류를 활용한 저농도 리튬 추출, 폐현수막을 활용한 자동차 내장재 생산 등에 대해 순환경제 규제특례를 부여했다. 그동안 폐기물로 처리되던 자원을 실제 산업 원료로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증사업을 허용한 것이다. 기술 투자 확대에도 나섰다. '케이(K)-순환경제 리본(Re-born) 프로젝트'를 통해 2027년부터 7년간 총 2540억원을 투입해 폐플라스틱과 폐자동차, 폐전기전자제품 등에서 고품질 순환원료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 단순 재활용을 넘어 신재(석유·나프타에서 처음 생산한 플라스틱 원) 수준의 원료를 확보해 순환경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한 상태다. 국내 기업들은 신재와 재생 원료의 가격 차이를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으로 얼마나 잘 보완해주느냐가 정책 성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원 리사이클링 기술은 '도시유전'과 '도시광산' 등의 개념으로 불린다. 폐기물에서 뽑아낸 원료를 바탕으로 석유 제품 및 광물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글로벌 자원 공급망이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기업들이 리사이클링 기술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배경이다. 금호석유화학이 최근 양산을 개시한 '에코-SSBR(친환경 고기능성 합성고무)'의 경우 리사이클링을 통해 석유 제품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타이어용 합성고무는 석유 기반 원료인 스티렌과 부타디엔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폴리스티렌(PS) 등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얻은 재활용 스티렌을 적용해 만드는게 '에코-SSBR'이다. 이같은 순환경제 구조가 뿌리내린다면 자원의 자체 수급이 용이해질 수 있다. 최근 중동 사태 발발 이후 원재료인 원유와 나프타 수급 문제가 대두됐던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 수입되는 원유의 65%, 나프타의 54%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닫힌 이후 자원 수급 문제가 국가적 화두로 떠올라서다.
기업들이 재활용 원료를 활용한 자원 확보와 소재 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민관 차원에서 전 제조업 밸류체인(가치사슬) 내에 순환경제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힘을 받고 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전남 여수공장에서 재활용 원료를 적용한 친환경 합성고무 '에코-SSBR(친환경 고기능성 합성고무)'의 양산에 돌입하고 이를 한국타이어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에코 SSBR'은 국내 대형 화학사로부터 공급받은 재활용 스티렌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양사가 2023년부터 공동 개발해온 결과물로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화학 원료→친환경 합성고무→타이어 제품'까지 만드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향후 고객사 확대에 맞춰 친환경 제품군 생산을 늘리고 재활용 원료 투입 설비도 추가할 계획이다. 리사이클링 사업에 눈을 돌린 기업은 금호석유화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SK케미칼은 미국의 이스트만, 중국 지아렌과 함께 화학적 재활용 소재 상용화에 성공한 글로벌 3대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자원이 제한적인 국가일수록 재활용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지난달 30일 경기 판교 SK케미칼 연구동에서 만난 김성기 기능소재부문 실장(사진)은 순환경제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그는 "전세계 어디를 가든 폐기물은 존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한 계속 (폐기물이) 나올 것"이라며 "이를 자원화하는 기술을 확보한다면 사실상 무한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활용이 단순 환경 보호 차원이 아니라 자원 안보·산업 지속성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현재 전세계에서 화학적 재활용 소재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 SK케미칼이다. 김 실장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은 폐플라스틱을 분자 단위 원료로 되돌릴 수 있어 수입 원료를 대체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의 원료 경쟁력을 뒷받침할 핵심 요소로 보고 관련 기술과 인프라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제품은 '스카이펫 CR'이다.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면서도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사실상 동일한 수준의 품질과 물성을 구현했다.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 통제 기조 속에 세계 각국이 공급망 주도권 확보를 위해 핵심광물 리사이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방산·로봇 등에 필요한 희토류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광산부터 자석 생산, 재활용까지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대표 사례가 미국 내 유일한 상업 희토류 광산을 보유한 희토류 기업 MP 머티리얼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이 회사의 지분 15%를 인수하고 중희토류 분리 설비의 자금을 지원했다. MP 머티리얼즈는 캘리포니아 마운틴패스 광산에 희토류 재활용 시설을 신설해 전자제품과 산업 폐기물에서 희토류를 회수하고 재처리할 예정이다. 애플도 재활용 부문의 투자로 참여하며 리사이클 밸류체인을 업그레이드했다. 유럽연합은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2030년까지 역내 연간 소비량 기준 재활용 25% 달성을 법제화했다. 폐배터리, 폐모터, 폐풍력발전기에서 희토류를 회수해 전체 수요의 25%를 충당하겠다는 목표다. 영구자석(NdFeB)이 포함된 제품에 자석의 포함 여부와 분리 가능성, 종류, 위치 등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해 재활용 업체가 희토류를 쉽게 회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게 포인트다.
광물을 광산이 아니라 쓰레기에서 뽑아 쓴다. 글로벌 광물 전쟁의 주요 콘셉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시광산'의 개념이다. 버려진 가전제품,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선 등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해부터 온산제련소에서 연간 1만~2만톤 규모의 태양광 폐패널을 처리해 구리, 은 등 핵심광물을 추출하고 있다. 생산 규모는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태양광 폐패널 등 리사이클 원료를 활용한 구리 생산능력은 지난해 기준 3만3000톤에서 중장기적으로 15만톤까지 늘리기로 했다. 원료인 태양광 폐패널은 주로 고려아연의 미국 자회사인 페달포인트의 전자제품 재활용 자회사 EV테라를 통해 공급받는 구조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태양광 폐패널 발생량은 2030년 누적 800만톤에서 2050년 누적 7800만톤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같이 막대한 규모로 발생하는 폐패널을 활용할 경우 구리(동), 은, 실리콘, 알루미늄, 주석 등을 재자원화할 수 있다.
"탈중국 공급망 구축이라는 흐름 속 리사이클링 기술은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 지난달 5일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만난 최헌식 기술연구소장은 핵심광물 리사이클링 산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최 소장은 "현재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은 특정 국가에 상당 부분 집중돼 있다"며 "이 같은 구조에선 지정학적 갈등이나 수출 통제,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사이클 기술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비철금속 제련기업인 고려아연은 자원순환 기업으로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광 폐패널을 포함해 전자폐기물, 폐배터리 등 자원순환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희토류 리사이클에 집중하고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모터와 풍력발전, 방산, 반도체·전자부품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분리·정제와 영구자석 등 가공 공급망에서 중국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호무역과 블록화의 확산 속에 '자원 안보'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다.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동시에 독립 공급망을 구축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기업들이 광물 리사이클 사업을 앞다퉈 추진하는 이유다. 미국의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중국의 전 세계 희토류 생산 비중은 93%에 달한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로봇,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첨단 산업에 활용되는 핵심 광물로 그 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최근 미중 헤게모니 다툼 기조 속에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적극 활용하는 점이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거론되는 게 리사이클이다. 희토류는 가전제품·모터·영구자석 등에 들어있어 재자원화를 할 경우 폐기물을 줄이면서, 희토류를 만들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 이슈도 우회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진 국내에서 세륨, 란탄, 네오디뮴, 디스프로슘과 같은 희토류 금속의 재자원화율은 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완성차업계가 앞으로 6년 내에 거의 모든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에 재활용 소재를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시하고 있는 차량의 평균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약 4% 수준이다. 가장 높은 재활용률을 기록한 차량은 기아의 EV4로 약 4. 5%다.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은 매년 철강과 비철금속, 플라스틱 등 약 20만톤의 자원을 폐차에서 회수하고 있다. 폐자동차 리사이클(재활용)과 관련해서는 도전적인 시장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EU(유럽연합)가 ELVR(폐차처리규정)을 이달부터 발효하는 등 글로벌 차원의 규제가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LVR에 따르면 2032년 9월부터는 신차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15% 이상 적용해야 한다. 이 가운데 최소 20%는 폐차에서 회수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소재여야 한다. 현 4% 수준인 플라스틱 재활용율을 15%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해외 시장에 자동차를 파는게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재활용 소재 비율을 높이면서도 자동차의 성능과 가격, 물량 모두를 만족시키는게 관건인 셈이다.
바스프·LG화학·미쓰비시화학·사빅·수에즈 등 글로벌 대표 화학사들이 참여한 연합체 GIC(글로벌 임팩트 연합)는 지난 1년간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동차에 적용된 플라스틱을 어느 수준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매년 막대한 양으로 버려지는 자동차 폐플라스틱의 상업화를 위해 경쟁 관계인 이들이 손을 잡은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의 폐자동차 총 100대가 투입됐다. GIC는 이들 차량의 범퍼와 시트, 헤드램프 등 각종 부품에서 총 8톤의 플라스틱 소재를 회수했다. 차량 1대당으로 환산하면 전체 플라스틱의 절반가량이다. 회수한 플라스틱은 화학적 재활용을 거쳐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약 15가지 원료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결과에 GIC는 자동차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기술적 기반은 이미 충분히 갖춰졌다고 평가했다. 찰리 탄 GIC CEO는 "가장 고무적인 결과는 기술 수준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이라며 "폐차에서 회수한 플라스틱을 다시 자동차용 소재로 활용하는 '클로즈드 루프'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차량에 쓰인 재활용 소재는 이미 '눈에 보이는 곳'까지 들어와있다. 외장 도료에서 실내 마감재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개발을 끝낸 뒤 양산 적용을 검토 중인 부품도 늘고 있다. 현대차의 플라스틱 재활용율의 경우 4% 수준으로 유럽 평균치(약 2~3%) 보다 앞서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2032년부터 신차에 적용될 유럽 ELVR(폐차처리규정) 기준(15%)에는 미치고 못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현대차는 우선 폐타이어에서 추출한 안료를 넣은 페인트를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아이오닉 5 N'에 처음 적용한데 이어 '아이오닉 6'의 범퍼 로워 커버 등 외장 부품에도 들어가고 있다. 제네시스 'GV60'과 '일렉트리파이드 GV70·G80'의 경우 헤드라이너(천장재)와 필라 트림, 선바이저, 패키지 트레이 등 실내 부품에 재활용 소재가 활용되고 있다. 일단 재활용율과 안전 규제를 모두 충족하는게 과제다. 에어백·안전벨트 등 안전 관련 부품에는 재활용 소재 사용을 제한하면서, 나머지 부품에서 더욱 높은 함량 기준을 충족하도록 만든다.
철강과 알루미늄, 각종 플라스틱·화학제품으로 구성된 폐자동차는 그 자체로 자원의 보고다. 문제는 그동안 폐차를 통한 자원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만 매년 80만톤 규모의 폐자동차 플라스틱이 쓰레기로 분류돼 소각·매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재활용율 의무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2032년 이후 신차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15%를 재생 원료로 사용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2036년 이후에는 이 비율이 25%로 치솟는다. 이 중 최소 20%는 폐차나 사용단계에서 탈거된 차량 부품에서 나온 플라스틱으로 충족해야 한다. 자원빈국이면서도 자동차 수출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폐자동차 리사이클(재활용)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폐자동차의 재자원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막대한 양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에 자동차를 파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서다. 특히 유럽 등의 재활용 소재 규제는 중국을 향한 무역장벽으로도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