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가족, 쿨패밀리]<1-1>의학박사 노관택ㆍ동영 부자 가족

아마 그때 소년은 여섯 혹은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어느 깊은 밤, 잠결에 소년은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밤이 지나고 나면 툇마루엔 고구마나 호박 따위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젊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시골집에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밤낮 없이 찾아들곤 했다. 아버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에겐 소중했다.
소년은 느꼈다. 그 마을에서 아버지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외아들이던 소년은 아버지의 길을 응당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여겼다.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명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가문의 명예와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집안을 부러워할 것이다. 아버지 노관택 박사(78)는 아시아에서 청각학과 중이염 치료의 선각자, 아들 노동영 박사(52)는 국내 유방암 수술의 최고 명의로 꼽힌다.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인 노동영 박사는 이현재 전 국무총리의 사위다. 이 전 총리의 맏딸, 이수요 씨(48)가 그의 부인이다.
그의 집안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대대로 존경 받았다. 노동영 박사의 할아버지는 고(故) 노진환 옹으로, 그는 울산군 온산면에서 존경 받는 유학자이자 초대 민선면장이었다.
노동영 박사의 외갓집도 유학자 집안이었다. 어머니 최윤보 여사(74)의 할아버지인 고 최봉식 옹은 제헌국회의원을 지냈다. 최 여사의 부친, 고 최영대 옹은 도쿄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해방 후에 옥계중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이렇듯 의사, 지도자로 대를 이어 존경 받는 집안인데도, 당사자들은 자신과 가족에 대해 너무나 '쿨'하게 말했다.
아버지 노 박사는 아들이 의대 대신 공대를 가길 바랐다고 했다. 의사는 고된 일이니까.
아들 노 박사는 자신의 1남2녀가 의사를 배우자로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테니까.
독자들의 PICK!
아버지 노 박사는 정년퇴임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주일에 이틀은 병원으로 출근한다. 청각학 분야 1인자가 퇴직 후 선택한 직장은 경기도립의료원 산하의 작은 시골병원이었다.
입원환자 40%가 저소득층인 파주병원으로 간 우리 시대의 명의는 희수(喜壽)가 지난 요새도 하루에 20여 명의 환자를 본다.
아들 노 박사는 주말 휴식을 건너뛰면서 지낸 지 오래다. 유방암 수술은 물론 환자들 모임과 상담까지 직접 챙기는 탓이다. 2000년부터 그가 환우회 홈페이지에 올린 답변만 해도 1만5000여건에 이른다.
유방암환우회 '비너스회'의 이병림 회장은 "노 교수는 환우들의 우상"이라며 "수술 받은 후 수년 간 진료를 받고 있지만 초지일관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에 늘 감동 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 박사 부자에게 의사는 돈 많이 벌면 그만 둘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살아있는 한 수행해야 할 천직이다. 그들이 지닌 재능은 의술이 아니라 인술(仁術)이다.
자신의 천직을 찾아 그 책무를 다하는 것. 이것이 노 박사 가족이 대대로 존경 받는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