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1월1일부터 도로명주소 전면시행… 홍보부족·무관심 탓 혼란 불가피
#택배기사 박모씨는 최근 물품 배달 중에 고객과 통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택배 운송장의 받는 사람 주소가 기존 지번 주소가 아닌 도로명 주소로 적혀 있어서다. 3년 째 택배일을 하고 있는 박씨는 "지번으로 불러주면 대충이라도 어디인지 찾아갈 수 있는데, 도로명 주소로 적힌 건은 걸릴 때마다 두세 상자를 더 배달할 품이 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내년 초부터 당장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 하지만 정부의 홍보 부족과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시행 초기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길 찾기 쉬어져" vs "낯선 주소 모르는 사람 대다수"
27일 안전행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길 이름과 건물 번호를 쓰는 도로명주소가 법정 주소로 사용된다. 앞서 정부는 1910년 일제의 토지조사로 부여된 토지번호 중심 지번주소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1996년 도로명주소 도입을 결정했다.
도로명주소는 시·군·구, 읍·면 다음에 '동·리+지번'으로 돼 있던 주소 대신 '도로명+건물번호'를 쓴다. 도로를 크기에 따라 대로(大路), 로(路), 길로 나누고 도로 기점에서부터 20m 간격으로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로 건물에 번호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서울시청은 세종대로 시작점에서 1100m 떨어져 있고 도로 오른쪽에 있어 '세종대로 110'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뿐 아니라 중국, 북한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도로명 주소를 쓰고 있다"며 "화재·범죄 등에 대한 신속한 대응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도로명주소는 2011년 7월 고시된 이후 2년여간 지번주소와 병행 사용돼 왔다. 공공기관의 경우 도로명주소 전환이 100%에 가깝다. 문제는 민간에서의 활용이 미미해 시민들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우편물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경우는 17.22%에 불과하다. 안행부가 올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자기집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34.6%에 불과했고, 우편 등에 실제 활용해 봤다는 대답도 23.4%에 그쳤다.
정부는 일단 내년 말까지 도로명주소의 민간 활용률을 '4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인터넷쇼핑 등 국민생활 밀접분야 도로명주소 중점 전환을 통해 활용도를 높일 것"이라며 "도로명주소 인지·활용도 조사결과를 반복적으로 진행해 그에 맞는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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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만 아는 어려운 주소‥불편·혼선 불가피
바뀐 도로명주소에 대한 인지·사용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 초기 각종 불편과 혼선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도로명주소 시행에도 행정체계와 법정동 지번은 변하지 않는다. 법정주소가 바뀐다고 과거 지번주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필지마다 부여된 기존 지번주소는 그대로 존속해 부동산 표시는 여전히 과거 지번주소를 사용한다.
결국 부동산 계약서에서 거래 당사자의 주소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하지만 부동산 위치표기는 계속해서 지번을 사용해야 한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물건지 주소는 지금처럼 그냥 쓰는데 매도·매수인 주소는 바꾸니 공인중개사들도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공기관 민원처리 시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문서엔 도로명주소만 사용하기 때문에 노인, 장애인 등 상당수 시민들이 각종 민원처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 구청 한 관계자는 "공무원은 교육도 받고 전산처리 등에 있어 익숙하지만 시민들은 필요한 서류를 작성할 때 도로명주소를 잘 몰라 소통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동 이름'에 담겨 있는 고유한 이야기, 문화 역시 도로명주소와 함께 사라질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법정동과 아파트 명칭을 주소 뒤에 쓸 수 있도록 했지만 쓰지 않아도 무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지명의 경우 전체 72개 동명 가운데 59개(82%)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대해 안행부 관계자는 "도로명을 부여할 때 해당 구간의 역사유적, 인물 등을 우선 반영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