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전 10시 국회. 각 정당의 아침회의가 끝날 시각이지만 이날만은 한산했다. 그 많던 브리핑도 뜸했다.
같은 시각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여의도에서 사라진 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열린 518 민주화항쟁 27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범여권 총집결'이라 할 만했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통합신당 등이 모두 모였다. 각자 자신들이야말로 '518 정신 계승자'라 자처하는 정파들이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천정배 의원 등 잠재적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을 나온 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참석했다. 최근 대선출마를 선언한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도 눈에 띄었다.
이들이 한 자리에 서긴 했지만 '통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대를 모았던 대선주자 연석회의도 무산됐다. 이에 대해 한명숙 전 총리는 "연석회의는 구체적 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무산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애써 낙관론을 폈다.
기념식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인삿말이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세력이 어느 시대 누구와 비교해 무능하다는 말인가" "아직도 지역주의가 살아 있다"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 이유가 그것(지역주의 타파)인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는 등의 정치발언을 쏟아냈다.
각 주자들은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듣기에 따라선 범여권의 통합 노력을 지역주의로 규정한 발언도 될 수 있어 민감한 주제였다. 그러나 각 주자들은 반발을 삼갔다. 대신 '인정' '동감'이 주를 이뤘다.
김근태 전 의장은 "결의를 갖고 민주주의 발전시키자는 말씀으로 들었다"며 "분발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흩어졌던 대선주자들은 다시 한 번 모였다. 5·18을 다룬 새 영화 '화려한 휴가'의 제작발표회장이다. 광주 시내 한 극장에서 열린 행사에 천 의원, 한 전 총리, 손 전 지사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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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념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보였다. 범여권 통합 관련 관심을 모은 정 전 의장과 손 전 지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다시 화제였다.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답은 '두루뭉술'했다.
정 전 의장은 "대통령께서 설마 대통합을 지역주의라고 말씀하셨겠나"며 즉답을 피했다. 손 전 지사는 "영화보러 왔는데…"라며 말끝을 흐렸고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말씀은) 원론적인 얘기 아니냐"라고 짧게 답했다.
다만 천 의원은 "정책도 비전도 없이 무조건 대통합을 하겠다면 지역주의로 비칠 소지가 있다"며 다른 주자들보다 자세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말씀의 요지는 민주화세력이 군부세력보다 무능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100%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5·18을 맞아 정치인들이 대거 광주를 방문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오전 기념식에서 소복을 입은 한 유족은 "5·18을 팔아 장관되고 의원됐지 않았냐"며 "5·18을 이제 그만 팔아라"고 외쳤다.
기념식엔 일반 참배객을 포함, 2500여명이 참가했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등 이른바 '민중가요'가 연주돼 이채로웠다. 한 때 금지곡 반열에 올랐던 노래가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 공식석상에서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