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라고 불리던 5대 은행이 차례로 무너졌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정부는 168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퍼부었다. 은행이 망하면 국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였다.
# 2008년 다시 위기가 닥쳤지만, 이번엔 달랐다. 은행들은 위기 직후에도 꾸준한 실적을 올렸고, 이를 "건전성 관리의 결과"라고 자화자찬했다.
문제는 은행의 건전성 관리가 다름 아닌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대출 기준 강화라는 점이다. "비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지적에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던 은행이 최근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쓰겠다고 제안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가 은행 영업이익 10%를 서민대출에 활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하자 입법을 차단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은행의 높은 문턱 때문에 제2금융권으로 발을 돌려야 했던 서민 입장에서는 환호할 만한 방안이다. 지금까지 서민들에게 고압적이던 은행을 생각하며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일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은행이 위기 때마다 국민 혈세를 지원받아 살아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익의 일정부분을 서민대출로 돌리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긍정적 반응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은행의 팔을 비틀고, 그 결과로 서민대출이 확대되는 결과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간 영역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이 점차 거세진다는 이유에서다.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서민대출 확대가 오히려 서민경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은행의 담당자는 "서민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면 당장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고 은행의 사회공헌 활동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민대출 확대 정책이 오히려 서민경제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대출 금리를 올리는 은행도 나올 것이다. 어떻게든 손해를 안 보고 이익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게 지금 국내 은행의 속성이다. 얄밉지만 얄밉다고 때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건 서민들이 더 쉽게 대출 받고, 서민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