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지난 4일 밤 한나라당의 단독 강행처리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본회의 이틀 전에 합의 처리를 약속했지만 내부 반발에 부딪혀 파기했다. 여·야·정 합의로 이끌어낸 FTA 후속대책을 지키지 못했고 야권연대의 '신뢰'마저 훼손해 결과적으로 '명분'과 '실리',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지난 1년간 여야 원내사령탑을 맡아 온 김무성 한나라당 ,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종일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산안 처리, 6.2 지방선거 등 당 안팎의 환경으로 팽팽하게 대치하던 때도 있었지만 임기 말 한·EU FTA 비준안을 놓고 극적인 합의를 이뤄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합의 파기로 모처럼 여야가 이룬 '통 큰 합의'는 깊은 불신의 골만 남겼다. 당초 한·EU FTA 비준동의안의 합의 처리는 여야간 '대립'이 아닌 '정치' 복원의 선례로 남을 것으로 보였다.
특히 박 원내대표가 여러 차례 주장한 것처럼 이번 합의안은 난색을 표하는 정부에 오히려 여당이 서명을 강요할 만큼 민주당의 주장이 대거 반영된 내용이었다.
한·EU FTA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고 '야권연대' 훼손을 우려하는 민주당내 반대 여론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보이콧'에 그쳤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를 예상하고도 방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EU FTA 비준안을 놓고 벌인 12시간의 격론에 과연 진정성이 담겨 있었던 것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결국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야권연대, 어느 쪽의 신뢰도 얻지 못했다.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공당으로서 향후 정치적 행보에 제약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EU FTA로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서민·중산층의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마저 마련하지 못했다.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4·27 재보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지 불과 8일 만에 민주당은 다시 어려움에 직면했다. 수권정당, 정권교체를 꿈꾸는 제1야당이라면 원칙 없이 갈팡질팡했던 이번 결정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