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 정세의 급변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전략에도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려와 달리 북한이 일시에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권력 세습체제를 구축한 것은 소련이 권력교체기에 겪은 혼란에서 북한이 도출한 부정적 교훈에 따른 것이다. 후계자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체제 자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북한은 1970년대 들어 김정일로의 권력승계를 주도면밀하게 추진했다.
이에 비한다면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는 그리 철저히 진행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의 최근 정책노선을 보면 김정일 이후를 포괄적인 구도 하에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년이 되는 2012년을 '주체 100년'이라 지칭하며 강성대국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 흐름을 살펴볼 때 김정일은 2012년에 권력승계를 완결짓는 것을 목표로 한 것 같다.
김정일은 최근 여러 차례 방중과 경제협력을 통해 북중관계를 한 단계 격상했고, 지난 8월에는 러시아를 방문하여 북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발언권을 높여주면서 북러관계를 복원했다.
이와 동시에 올들어 북한은 강온 양면정책을 구사하며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다각적으로 모색해왔다. 미국도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온건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어 북미관계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19일에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을 발표하고 북한은 수일 안에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임시 중단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북한의 이러한 외교전략은 김정일이 자신이 주도해온 미국과의 핵협상을 자신의 시기에 마무리지음으로써 김정은에게 대외적 고립에서 벗어나 북한을 물려주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권력승계를 단순한 권력이양에 한정짓지 않고, 대외정책의 포괄적인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진행해왔다. 게다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는 대외적으로도 이미 2~3년 전부터 알려진 일이었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위원장의 유고 시를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새로운 정책노선을 취하기보다 이미 설정한 정책방향을 일관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과정은 큰 혼돈 없이 진행되어 김정일 위원장의 원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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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정은 후계권력이 우호적 대외환경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체제의 안정을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일은 항일혁명 세대가 아니지만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혁명 1세대와 전후세대인 전문가 세대를 잇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김일성과 다름 없는 절대적 권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김정일과 같은 권위와 리더십을 유지할 것인가에는 많은 의문이 따른다. 북한이 3대 세습을 결정한 것은 북한 권력엘리트들이 공식 절차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옹립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의 권력구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불안정해지는 양상을 띨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은 2009년 말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2010년 4월 인민경제계획법을 개정하여 계획경제의 규율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최근 탈북주민이 급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통제정책이 주민들의 이반을 심화시키고 오히려 내부적인 갈등과 동요를 초래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던진 한국 사회와 경제에 던진 충격은 단기적인 데서 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은 매우 가변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의 불안요인도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절대권력자의 사망이 주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지만 실제적인 영향은 상당기간을 두고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고 북한의 변화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