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제 진심 받아주면 좋겠다" 역사인식 논란 종지부…새벽까지 회견문 직접 챙겨

24일 오전 9시 정각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4층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회색 상·하의 정장 차림의 박 후보는 약 10분 동안 준비해 온 과거사 논란 관련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시종일관 낮은 톤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저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18대 대통령 후보로서 이 자리에 섰다"며 입을 열었다.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다소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끝까지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에서 오히려 기자회견장에 서기까지의 고뇌가 엿보였다.

그러나 "대선 후보로 나선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는 대목에서는 더 이상의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국민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는 이날 박 후보의 언급은 지난 1998년 정계입문 후 계속된 과거사 논란에 대한 입장 중 가장 '전향적'인 내용이다. 특히 거듭되는 논란에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던 기존 입장과 비교할 때, 이날 박 후보의 발언 강도는 정치권의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는 아무렇게나 말해 (어려운) 국면을 모면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마디를 해도 마음에 없는 얘기는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사람"이라며 "내가 박 후보를 모신지 8년이 됐지만, (과거사에 대해) 이 정도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발언에 진정성이 담겼는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역시 이날 회견 직후 퇴장하면서 "마지막 사과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 내용에 모든 게 함축돼 있고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제 그런 진심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참모들에 따르면, 이날 회견문은 박 후보가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성했다. 한 참모는 "어젯밤 최종 회견문이 나와 검토했고, 오늘 새벽에도 박 후보가 직접 회견문을 꼼꼼히 손보는 등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독자들의 PICK!
박 후보의 이날 기자회견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과거사 논란이 대선을 불과 3달 앞둔 시점까지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지지율 정체현상의 '뇌관'으로 작용하자 사과를 통한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의 과거사 논란은 당내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지난 7월 한 토론회에서 5·16과 관련,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언급, 경선 내내 공세에 시달렸다. 경선 종료 후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파격적인 '대통합' 행보로 잠시 논란을 잠재운 듯 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법원의 인혁당 판결은 두 개"라고 언급, 다시 수렁에 빠져들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은 인혁당 발언 후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고, 최근 야권 후보들이 부상하며 더욱 심화됐다. 양자구도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물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도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럿 나왔다.
또 다자구도에서도 안 후보가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 기존 박 후보를 지지하던 중도층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후보로서는 외연 확대의 최대 걸림돌인 과거사 논란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