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민 체육대회서 봉변, 선대위 "관계당국 재발방지 하라"
"박근혜 후보가 왔습니다. 식사 중단하고 박수 치세요."
"(문재인) 물러가라, 퍼주기,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가 14일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이북도민 체육대회를 방문, 환호와 욕설이 뒤섞인 가운데 아찔한 순간을 넘겼다. 민주당 측은 문 후보를 향해 플라스틱 물병이 여럿 날아오는 등 현장 상황이 도를 넘었다고 보고 관계당국에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강력 반발했다.
문 후보는 이날 오전 11시50분 대회장인 효창운동장에 입장했다. 실향민 1, 2세들은 대체로 강경한 대북정책을 선호하고 포용정책에도 부정적이다. 때문에 이날 문 후보가 '환대'받으리라 기대하긴 어려웠다.
물론 빅3 대선주자 가운데 문 후보의 선친과 누나가 함경도 함흥 출신 실향민이란 점에서 비교적 무난한 분위기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문 후보가 응원석 스탠드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사이, 운동장 트랙에는 '영토포기 매국행위' '친북종북세력 물러가라' '6.15 狂風(광풍), 10.4 妄動(망동)'이라고 쓰인 종이를 펼쳐든 20~30명이 문 후보를 뒤따르며 야유를 퍼부었다.
문 후보가 스탠드를 1/4쯤 돌았을 무렵, 트랙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시선이 집중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였다.
장내 사회자는 "박근혜 후보가 왔습니다"라며 "식사 중단하고 박수 치세요"라고 유도했다. 응원석에 앉은 이들은 문 후보의 등 뒤에 대고 '박근혜, 박근혜'를 연호했다.
붉은 옷을 입고 흰 모자를 맞춰 쓴 평안남도 응원단은 바로 앞 관중석을 돌고 있는 문 후보를 외면한 채 멀리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었다. 반면 문 후보에게는 거친 욕설과 함께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문 후보는 더 이상 응원석을 돌지 않고 트랙으로 내려갔다. 어느 참가자가 건네는 소주 한잔을 두세 모금 나눠 모두 마시고 답주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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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15분경 '미수복(수복되지 않은) 강원도' 관중석 앞을 지나던 문 후보를 향해 플라스틱 물병이 날아왔다. 문 후보가 아니라 취재하던 기자가 이마에 맞았다. 또 한 차례 날아온 물병은 수행하던 민주당 당직자의 눈에 맞았다. 함경도 쪽 응원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문 후보도 누군가 가까이서 뿌린 물에 얼굴 등이 일부 젖었다. 그는 잠시 안경을 벗어 닦았고 한 중년 여성이 건넨 손수건으로는 얼굴을 다시 닦았다.
이후로도 긴장은 계속됐다. 한 실향민은 문 후보를 향해 "종북 아니냐"고 따졌고 문 후보를 수행하던 진선미 대변인은 "절대 아닙니다"라고 소리쳤다. 문 후보는 "(우리 가족이) 함경도 (출신) 아닙니꺼"라고 말하기도 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다 돌았을 즈음 분위기가 다소 나아졌다. 평안북도 응원석에선 노란 막대풍선을 흔들며 문 후보를 환영했다. 20대 청년과 중년 여성들이 기념촬영을 부탁했고 문 후보는 이에 응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문 후보와 악수하며 그를 격려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다소 상기된 붉은 얼굴로 인사를 마치고 12시20분경 운동장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문 후보 선대위의 진성준 대변인은 이른바 '물병 시위' 상황과 관련, 영등포당사 브리핑을 통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 기본권으로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의사 표시를 넘어서 대통령 후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오늘 물병 시위 배경에는 전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저열한 흑색선전, 정치공작이 놓여 있다"며 "BBK 가짜편지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가짜 대화록 사건을 일으킨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사과와 대오각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허동준 선대위 부대변인 논평은 보다 강경했다. 그는 "문 후보 일행을 향해 물병을 던져 언론인을 비롯한 수행 당직자가 부상을 입었고 인쇄된 종이를 펼치는 등 사전에 계획된 행위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며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허 부대변인은 "관계당국은 해당 관련자를 엄중 조사하여 응분의 조처를 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