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영란법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영란법도

진상현 기자
2016.05.06 09:04

[the300][우리가보는세상]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낮 청와대에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2016.4.26/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낮 청와대에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2016.4.26/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2014년 4월, 국회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심사가 시작되자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안팎에서는 이런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회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법안 심사 자체가 매우 험난하다는 우려도 깔려 있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법안 준비에 들어갔다고 해서 '김영란법'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 법안은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인다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현실성있게 가다듬는데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부정청탁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부터 공직자들의 가족까지 법안의 제재 대상으로 삼는 일종의 연좌제의 위헌성 등 검토할 것이 수없이 많았다. (정무위 법안소위의 야당 간사로 김영란법 논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5년3월3일 본회의에 상정된 김영란법 제안설명을 하면서 "이 법안이 전직 대법관 출신의 권익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제출한 법안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김영란법은 김영란법이 아니다)

정무위 법안소위 여야 의원들은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검토할 사안이 산더미이고, 해법을 찾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논의가 늦어지는 것 자체가 개혁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당 의원들을 더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인 2004년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김영란법'의 조속한 통과를 국회에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며 김영란법을 상기시켰다. 여론의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박 대통령의 요청까지 가세하자 여당 지도부는 법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정무위 법안소위 여당 의원들에 대한 압박으로 돌아갔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수차례 김영란법 처리를 촉구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실제 저는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면서 김영란법의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 자신이 미쳤을 영향에 대한 '유감' 표명 같은 것은 없었다.

박 대통령을 탓하기 위해 다시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경제 영향이 심각하다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뒤늦게라도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맞다.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원들이 4일 정부세종청사 제3주차장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농축수산물·화훼류 제외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2015.9.4/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원들이 4일 정부세종청사 제3주차장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농축수산물·화훼류 제외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2015.9.4/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국회 법안 논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매년 수천개씩 발의되는 법안들의 취지는 대부분 아름답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19대 국회 내내 개정 논란에 휩싸였던 '국회선진화법'은 폭력 없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을 가졌다. 하지만 현실에 맡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법안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안이 목적으로 했던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법안은 국회 담장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법안의 디테일을 전문성을 갖고 검토하는 곳이 바로 국회의 상임위원회다. 국회를 좀 안다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상임위 중심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전문성을 갖고 집중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상임위가 입법부 의사 결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상임위의 의사결정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여론의 영향을 받고,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론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대통령이 꼭 처리하달라고 하면 '아니다' 하면서도 다른 결론을 내릴 위험이 있다. 이 경우 그 피해는 해당 법안의 이해당사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법안에 따라서는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대통령 등 영향력 있는 인사일수록 법안에 대한 언급엔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법안의 합리적인 논의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물론 법안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법안의 한 단면이 아닌, 디테일까지 보려는 노력이다. 한 단면만을 보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 댓글 하나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지금은 경제적 이유로 김영란법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도 정작 국회 논의 당시에는 '공직사회의 청렴성' 제고라는 한 면만을 보고 김영란법 처리를 촉구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안을 직접 찾아보기 보다 언론을 통해 접한다. 그런 면에서 언론들도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을 다룰 때 좀더 자세하게 균형감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법안을 다루는 정치기사 자체도 더 많아져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법안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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