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전두환 사망]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전씨는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신군부를 이끈 장본인이다.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으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전씨는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1935년 대구로 이주해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대구공고를 졸업한 뒤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군인의 길을 걷는다. 4년제 육사의 첫 기수로 추후 11기로 정해졌다.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생들은 전씨의 쿠데타를 도우며 신군부의 핵심으로 군림한다. 전씨의 전우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별세했다. 고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전씨도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육군보병학교, 육군공수특전단, 육군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1961년 서울대 ROTC 교관이었던 전씨는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이 5·16군사정변을 일으키자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군부 지지를 이끌었다.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전씨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으로 활동했고, 육사 동기들을 주축으로 한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한다. 전씨는 1961~1963년 중앙정보부에서 일했으며 1969년 대령, 1974년 준장, 1978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10·26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10·26사건 처리를 맡은 전씨는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고 군을 장악했다. 1980년 3월 육군 중장으로 진급한 전씨는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를 장악한 뒤 5·17 쿠데타로 정권을 완전히 침탈한다.
전씨는 5·17 쿠데타에 항거한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계엄군을 투입해 유혈 진압했다. 공수부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사살하는 잔혹한 사건을 일으켰다. 전씨는 사망할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1980년 8월 군에서 전역하면서 대한민국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후 7년 단임제 헌법을 통과시킨 후 1981년 2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12대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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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이어졌음에도 전씨는 호헌 조치를 발표하며 여론을 악화시켰다. 6·10 민주항쟁이 전국으로 번지자 집권여당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 약속을 내놨다. 이후 전씨는 1988년 7년 임기를 마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퇴임 후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권력비리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요구가 거세졌다. 이에 전씨는 1988년 11월 23일연희동 자택에서 재임 기간 중 일어난 과오와 비리에 대한 대국민 사죄와 재산 헌납을 발표하고 부인 이순자씨와 백담사로 향했다. 769일 간 은둔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전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반란수괴죄와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당했다. 2년 뒤 김대중 정부에서 두 사람은 특별사면됐다. 특사 이후에도 자신의 정권 침탈과 5·18 유혈 진압을 인정하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완납한 것과 달리 전씨는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다. 전씨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약 1000억원에 달한다. 추징금 2205억원 중 납부가 이뤄진 955억원은 2014년 검찰이 강제 집행한 것이다.
전씨는 5·18 당시 시민들에게 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불복해 항소했고, 29일 2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