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입법조사처장 "한국 정치, 상대를 열등하다며 혐오…정서적 양극화 심각"

이관후 입법조사처장 "한국 정치, 상대를 열등하다며 혐오…정서적 양극화 심각"

후쿠오카(일본)=조철희 기자
2025.11.24 06:00

정치 양극화 심화중인 日서 특별강연…"포퓰리즘·적대문화 확산에도 정치는 퇴조·부재, 대통령제·양당제 약화시켜야"

"전 세계적으로 정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지만 한국이 더 위험합니다. 두 정당이 90% 이상 의회 의석을 장악하고 있고, 대통령선거에서 양당 후보 간 격차가 미미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갈등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사진)은 정치 양극화 문제와 관련, "보수·진보 유권자가 팽팽히 대립하는 극단적 상태에서 정치는 상대편 유권자를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지지자들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고 나오려는 행태를 보이는데 앞으로 우리 정치에서 이런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 처장은 지난 21일 일본 후쿠오카 JR하카타시티회의실에서 열린 규슈대학한국연구센터·규슈한국연구자포럼 공동주최 특별강연에서 "지금 한국 정치·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퇴조와 부재의 문제"라며 "포퓰리즘적 징후와 양극화한 적대적 정치문화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지만 이것을 해결해야 할 정치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처장은 최근의 정치 양극화를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로 진단했다. 자신과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거나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상대편을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지식과 지능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혐오하면서 '어떻게 저런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한다. 상대 정당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 정당이 없어지길 바란다. 한 여론조사에선 다른 정당의 지지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 자녀를 결혼시키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이런 정서적 양극화는 △기존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채택하게 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기존의 믿음과 정보를 더 중요시하는 '사전 태도 효과'(prior attitude effect) △기존의 믿음이나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비확증 편향'(disconfirmation bias) △기존의 믿음이나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부합하도록 재해석하는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 등의 문제를 양산한다.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각각 41.15%, 8.34%의 득표율로 합산하면 49.49% 기록, '50 대 50'의 팽팽한 양 진영 대립이 지속됐다.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각각 41.15%, 8.34%의 득표율로 합산하면 49.49% 기록, '50 대 50'의 팽팽한 양 진영 대립이 지속됐다.

이 처장은 "자신과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바보 아니야? 어떻게 그런 정당을 지지할 수 있어?'라고 묻는 것은 실제로 대단히 위험하다"며 "급기야 지지 정당의 선택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를 자발적으로 고안하고 유포하는 현상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SNS(소셜미디어)가 이런 정치 양극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처장은 정서적 양극화 현상의 배경을 크게 3가지로 봤다. 첫 번째는 '탈냉전'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이성에 기반한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있었다면 냉전이 종결된 이후에는 정서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두 번째는 정치권에서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양당의 공약이 복지국가에 초점을 맞추며 비슷했다. 이 처장은 "정책적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다음 남은 것은 '정당이나 후보가 좋다 혹은 싫다' 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 이후 보수-진보 양 진영의 대선 득표율은 '50 대 50'으로 팽팽히 이어져 왔다. 2017년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이 41%를 득표했고, 보수진영 후보들의 득표율을 합하면 50%에 달했다. 2022년 대선은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불과 0.73%로 차이로 이겼다. 올해 21대 대선도 이재명 대통령이 49.4%로 당선돼 5대5의 팽팽한 긴장은 지속됐다.

정서적 양극화의 또 다른 배경은 신자유주의가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이다. 한국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양극화가 더욱 심했다. 이 처장은 "국가가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상당히 강해졌고 그때부터 '내가 오롯이 나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배타적으로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며 "보수적 유권자와 진보적 유권자 모두 자신의 이익을 반영해 줄 수 있는 정당과 정권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특별강연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강연회에는 이즈미 카오루 규슈대학한국연구센터장, 히라이 카즈오미 규슈한국연구자포럼 대표,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교수 등이 참석했다. /사진=조철희 기자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특별강연 후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강연회에는 이즈미 카오루 규슈대학한국연구센터장, 히라이 카즈오미 규슈한국연구자포럼 대표,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교수 등이 참석했다. /사진=조철희 기자

이 처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정치에 대해 "인구소멸, 지방소멸, 기후위기, 안보위기, 산업전환, 노동·복지 위기 등 다중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수권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 규범, 문화, 제도, 리더십의 동시적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당정치의 복원도 선거제도, 권력구조, 정치문화의 변화가 동시적으로 진행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특히 우리의 양당제 성향을 약화시키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여러 정당이 있는 나라들은 정당 간 상호 견제가 가능해 극단화를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상호 관용, 예의와 협력 같은 정치문화적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며 "협력적 정치문화를 선도하는 정당과 리더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976년생인 이 처장은 지난해 역대 최연소 국회입법조사처장으로 임명됐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국무총리비서실 소통메시지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2023년부터는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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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기자

안녕하세요. 혁신전략팀 조철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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