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경영권 위협과 경영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경제계가 우려했던 상법 개정안이 세 차례에 걸쳐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작 기업에 약속한 '배임죄 개편'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 하고 있다. 경영진이 의무를 다해 선의로 내린 판단이라면 손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 원칙'을 관련 법안에 명시해 달라는 게 경제계의 입장이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이 그간 추진해 온 배임죄 폐지 및 완화 논의는 현재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법무부에서 배임죄 개편을 위한 연구용역을 이달까지 진행하고 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태스크포스(TF)에 보고하기로 했으나 올해 상반기까지 최종 입법안 마련은 어려워 보인다.
배임죄 개편은 더불어민주당이 기업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을 줄이겠다며 내세운 '경제형벌 합리화' 정책의 핵심 과제다. 앞서 당정은 지난해 9월 '배임죄 폐지'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적용 범위가 넓고 모호한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대신 30여개의 다른 법을 고쳐 개별 입법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7월 1차 상법개정 당시 배임죄 폐지 또는 전면 개선을 약속했지만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했다. 1차 상법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배임죄 개편은 상법 개정의 보완책으로도 여겨졌다. 이사에게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까지 보호할 의무가 생기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죄 등 형사소송을 남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선 김태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배임죄 개편안을 배임죄 폐지 논의의 마중물로 삼자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 의원은 앞서 상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형법에는 경영진이 의무를 다해 선의로 경영 판단을 했다면 손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 원칙'을 명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배임죄 논의의 핵심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법상 배임죄(특별배임죄) 폐지보다는 형법상 배임죄 폐지 또는 개편이라는 점이다. 상법상 배임죄는 폐지해도 법적 공백이 크지 않고 '이사'나 '감사' 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형법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실제 수사 현장에서도 상법이 아닌 형법이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의 배임죄 규정을 근거로 활용한다.
배임죄 논의가 답보 상태에 놓이면서 경제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은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됐다. 재계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역시 오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독자들의 PICK!
경제계에선 배임죄 자체가 없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기업범죄를 사기나 횡령죄로만 다루거나 배임죄를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정상적 절차와 합당한 근거로 결정한 경영사안'에 대해선 처벌을 면제하는 원칙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배임죄 폐지를 위해선 여러 법안을 두고 개편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배임죄 폐지와 무관하게 경제계가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경영판단 원칙'의 명문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