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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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파동, 생리대 안전성 논란까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사건이 잇따랐다. 올해도 최우선 목표는 안전 또 안전이다" 취임하자마자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업무파악이 다 끝나기도 전에 국회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취임 8개월째.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비로소 한숨 돌린 모습이었다. 업무 계획을 설명할 때는 단단해진 내면도 느껴졌다. 류 처장은 "연속된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식약처가 추진하는 안전관리와 국민들이 느끼는 안심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놓은 결과물이 '국민청원검사제도'다. 류 처장이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한 국민 눈높이 정책이다. 국민 다수가 검사를 원하면 직접 제품을 수거하고 분석·검사해 알려준다. 류 처장과 만나 정책 현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하자마자 여러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맨 먼저 살충제 계란 문제가 터졌다. 계란 생산단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유통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영업통이다. 1960년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지역농협인 포천농협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농협중앙회에는 1985년에 입사했고 농협은행에서 프로젝트금융부장, 경기영업본부장, 서울영업본부장을 역임했다. 경기영업본부장과 서울영업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하위권이었던 성과를 전국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등 영업력을 인정받으면서 2016년말 농협상호금융 대표로 깜짝 발탁됐고 1년만에 다시 농협은행장으로 올라섰다. 이 행장은 2012년 NH농협금융이 농협에서 분리돼 농협은행이 출범한 이후 부행장을 거치지 않은 첫 행장이다. 지난해말 농협상호금융 대표에서 농협은행장으로 이동한 것도, 2016년 경기영업본부장에서 상호금융 대표로 발탁된 것도 농협 내에서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파격 인사는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의 신임에서 비롯됐다. 김 회장은 이 행장이 서울영업본부장으로 일할 때 유심히 지켜보고 상무급(부행장)을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시켰다. 이 행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취임 후 한달반 남짓 동안 직원들을 만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주력했다. 그는 “평소에 늘 직원들이 농협은행에서 일하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직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겠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이 2016년 STX조선 등에 대한 대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으며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 했는데 이제 그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설명이다. 경쟁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행장은 “농협은행이 자산 규모로 4위인데 1위인 KB국민은행과 좀 차이가 나고 2, 3위 은행과는 격차가 크지 않다”며 “고객들에게 농협은행이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농촌을 살리는 은행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 고객 기반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라도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12월29일 취임해 최근 지역영업본부 방문을 마무리한 이 행장을 만나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68)은 한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스터 원’으로 불릴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금융 전문가로 통했다. 굵직한 관직을 두루 거친 뒤 공직을 물러난 그가 손해보험협회 수장으로 변신했다. 김 회장은 1950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용산고등학교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국제금융과장·국장·차관보를 차례로 지내며 ‘국제금융통’으로 불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엔 국제금융 업무를 총괄하며 환란 극복에 기여했다. 당시 수많은 국제회의에 참석하느라 아침에 눈을 뜨면 그곳이 뉴욕인지 런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미스터 원’이라는 별칭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김 회장은 이후 관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후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문제를 사전에 진단하고 원인을 짚어내는 안목이 탁월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손해보험업계가 수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반대로 정부에 이해를 구해야 할 업계의 애로사항도 있다. 업계 입장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게 아니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문재인 케어’(문케어) 등 정부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할 일은 다하되 업계 의견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반영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은 “손보업계는 정부도 금융당국뿐만 국토교통부(자동차보험), 보건복지부(실손의료보험과 헬스케어 서비스), 농림축산식품부(반려동물 보험) 등 다양한 부처와 접촉해야 하고 국회와 대화도 중요하다”며 “소통을 통한 조율에 중점을 두고 손보협회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오는 13일 취임 100일을 맞는 김 회장을 만나 실손보험을 비롯한 보험업계 현안과 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다. -경제·금융 관료로 30년 넘게 지내다 특정 금융권에서 일해보니 어떤가. ▷공직에서 나온 지 10년이 됐고 그간 대학에서 강의를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사진)은 손꼽히는 산업정책 전문가다. 산업정책 콘트롤타워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30년간 일하면서 기존의 판을 뒤엎는 혁신적인 정책을 많이 만들었다. 참여정부의 ‘10대 신성장동력’, 이명박정부의 ‘17개 신성장동력산업’, 박근혜정부의 ‘미래성장동력-산업정책 종합실천계획’ 등 지난 15년간 우리 산업의 미래먹거리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선이 굵으면서도 깔끔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청주고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왔다.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 상공부에서 산업부에 이르기까지 국제협력과장, 에너지관리팀장, 전력산업과장, 자원개발총괄과장, 대변인, 신산업정책관, 창의산업정책관, FTA(자유무역협정)정책관, 통상교섭실장, 에너지자원실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홍조근정훈장
“단순한 R&D(연구개발) 투자 지원뿐 아니라 신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실력 있는 기업들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해 유통·수출할 수 있는 플랫폼 조성에 앞장서겠다. P&D(플랫폼개발)로 ‘혁신성장’을 이끌어 가겠다.”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의 답변은 명쾌했다. 지난해 12월 29일 KIAT 원장에 임명된 후 한 달간 고민의 결과를 담은 답변을 자신감 있게 쏟아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R&D에서 시장과 산업의 ‘판’을 바꾸는 혁신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연구실에 갇힌 R&D’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뿐 실제 성과를 창출하는 사업화, 판로개척, 수출지원 등 산업기술 생태계, 즉 플랫폼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고 김 원장은 “신기술 발굴·개발부터 상용화, 유통, 수출 등 전 단계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김 원장은 새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혁신성장’을 “기업이 기술혁신을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좌우명은 '중용'이다. 그의 품성이 극단을 배제하고 있는 이유다. 투자의 세계에선 갇히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경계에 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다. 열린 사고가 어렵거나 관념에 매몰되면 현상의 본질을 꿰뚫지 못해 그릇된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 사장이 11년째 업계 최장수 CEO(최고경영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유연한 사고가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1층에선 출근시간에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유 사장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간혹 신입사원이 사장을 어려워하며 동승하길 주저하면 스스럼없이 같이 타자고 손짓하고 농담도 건넨다. VIP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래야 직원들과 얼굴이라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람 욕심은 대단하다. 뽑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삼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의 성과는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각각 4816억원, 3754억원을 기록해 업계 최대 실적을 거뒀다.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는 12.9%(연환산)를 기록했다. 업계 최상위권은 물론 대형사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자기자본이 크면 ROE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투자증권은 '덩치가 크면 느리다'는 속성마저 깼다. 글로벌 IB의 ROE가 10% 남짓한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여기에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IB(투자은행) 5개사 중 발행어음 신규업무를 홀로 인가 받았다. 발행어음은 초대형IB의 핵심 업무다. 한국투자증권이 초대형IB(투자은행) 대전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은 셈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올해 초대형IB 선두 자리를 지키고 세전이익도 지난해보다 40%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66)은 국내에서는 25년간 연곡리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로 국외 구석기 학계에서도 활동이 활발한 '국제통'이다. 그동안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요 문화재 기관 인사 때 수없이 이름이 오르내렸던 그가 지난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경남고 동기로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난 배 관장은 고교 시절 별명은 공자였다고도 했다. 1975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삼국시대 마구(말타기 도구)를 전공했다. 이후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故) 삼불 김원룡 서울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구석기 연구에 매진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지인 전곡리 유적은 주요 발굴 성과다. 당시 27살의 젊은 나이에 현장에 뛰어든 그는 발굴현장 총괄 소장을 맡아 현장에서 먹고 자며 25년간 발굴에 매진했다. 150만 년~10만 년 전까지 사용된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현장에
취임 6개월 만에 그에게 내려진 올해 특명은 두 가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걸맞은 유물 전시, 코앞에 닥친 평창동계올림픽에 선보일 특별한 전시가 그것.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배기동(66) 관장은 비교적 따뜻하고 여유로운 노란색 넥타이 앞에서도 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올림픽 기간 북한 만월대 유물을 평창에 전시하고 연말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고려전’을 준비 중인데, 모두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이 모든 전시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협의 중인 상황이라 더 그렇습니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만,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답답함이 적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배 관장은 유물을 다루는 이의 꼼꼼함과 조심스러움이라는 특유의 기질로 두 가지 모두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임기 초반이지만, 그의 목표는 또렷했다. 안 오거나 못 오는 이를 위한 서비스 구현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
김동열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문재인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재정·복지·규제 등 공공경제학 전문가로 28년 동안 기업·국회·정부·연구기관에서 정책이론과 실무를 두루 경험했다.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캠프 내 ‘비상경제대책단’에서 중소기업 경제정책을 담당, 소득주도성장 등 핵심공약을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동안 김 원장은 한국경제의 3대 핵심 위험요인으로 ‘고용불안, 노후불안, 소득불평등’을 지목해왔다. 지난해 초 출판한 저서 ‘고용절벽의 시대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에선 불안한 일자리가 소득과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고 저성장으로 연결된다며 대기업 중심 경제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과 맞닿아 있다. 전문 연구기관과 기업·정치권을 오가며 정책 개발부터 입법, 시행까지 관여한 경험이 김 원장의 강점이다. 199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실 중소기업담당 연구원을 거쳐 2000년 정동영 의원,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