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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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좌우명은 '중용'이다. 그의 품성이 극단을 배제하고 있는 이유다. 투자의 세계에선 갇히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경계에 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다. 열린 사고가 어렵거나 관념에 매몰되면 현상의 본질을 꿰뚫지 못해 그릇된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 사장이 11년째 업계 최장수 CEO(최고경영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유연한 사고가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1층에선 출근시간에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유 사장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간혹 신입사원이 사장을 어려워하며 동승하길 주저하면 스스럼없이 같이 타자고 손짓하고 농담도 건넨다. VIP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래야 직원들과 얼굴이라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람 욕심은 대단하다. 뽑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삼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의 성과는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각각 4816억원, 3754억원을 기록해 업계 최대 실적을 거뒀다.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는 12.9%(연환산)를 기록했다. 업계 최상위권은 물론 대형사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자기자본이 크면 ROE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투자증권은 '덩치가 크면 느리다'는 속성마저 깼다. 글로벌 IB의 ROE가 10% 남짓한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여기에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IB(투자은행) 5개사 중 발행어음 신규업무를 홀로 인가 받았다. 발행어음은 초대형IB의 핵심 업무다. 한국투자증권이 초대형IB(투자은행) 대전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은 셈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올해 초대형IB 선두 자리를 지키고 세전이익도 지난해보다 40%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66)은 국내에서는 25년간 연곡리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로 국외 구석기 학계에서도 활동이 활발한 '국제통'이다. 그동안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요 문화재 기관 인사 때 수없이 이름이 오르내렸던 그가 지난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경남고 동기로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난 배 관장은 고교 시절 별명은 공자였다고도 했다. 1975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삼국시대 마구(말타기 도구)를 전공했다. 이후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故) 삼불 김원룡 서울대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구석기 연구에 매진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지인 전곡리 유적은 주요 발굴 성과다. 당시 27살의 젊은 나이에 현장에 뛰어든 그는 발굴현장 총괄 소장을 맡아 현장에서 먹고 자며 25년간 발굴에 매진했다. 150만 년~10만 년 전까지 사용된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현장에
취임 6개월 만에 그에게 내려진 올해 특명은 두 가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걸맞은 유물 전시, 코앞에 닥친 평창동계올림픽에 선보일 특별한 전시가 그것.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배기동(66) 관장은 비교적 따뜻하고 여유로운 노란색 넥타이 앞에서도 급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올림픽 기간 북한 만월대 유물을 평창에 전시하고 연말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고려전’을 준비 중인데, 모두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이 모든 전시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협의 중인 상황이라 더 그렇습니다.” 실현 가능성은 높지만,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답답함이 적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배 관장은 유물을 다루는 이의 꼼꼼함과 조심스러움이라는 특유의 기질로 두 가지 모두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임기 초반이지만, 그의 목표는 또렷했다. 안 오거나 못 오는 이를 위한 서비스 구현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
김동열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문재인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재정·복지·규제 등 공공경제학 전문가로 28년 동안 기업·국회·정부·연구기관에서 정책이론과 실무를 두루 경험했다.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캠프 내 ‘비상경제대책단’에서 중소기업 경제정책을 담당, 소득주도성장 등 핵심공약을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동안 김 원장은 한국경제의 3대 핵심 위험요인으로 ‘고용불안, 노후불안, 소득불평등’을 지목해왔다. 지난해 초 출판한 저서 ‘고용절벽의 시대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에선 불안한 일자리가 소득과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고 저성장으로 연결된다며 대기업 중심 경제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과 맞닿아 있다. 전문 연구기관과 기업·정치권을 오가며 정책 개발부터 입법, 시행까지 관여한 경험이 김 원장의 강점이다. 199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실 중소기업담당 연구원을 거쳐 2000년 정동영 의원, 2004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시기를 기업 규모별로 차등화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입니다. 인상된 임금을 지불할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적용하고 중소기업에는 지불능력을 갖출 유예기간을 주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중소기업연구원(중기연)의 6대 원장으로 취임한 김동열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우려가 예상보다 큰 점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중기연은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 정책연구기관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개발, 연구기획, 정책평가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중기연을 국책연구기관으로 발돋움시킨다는 게 김 원장의 포부다. 중기연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 조직인 ‘2020TF(태스크포스)’를 출범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실시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에 맞춰 중소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전략과 과제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사회적 취약계층의 고용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4차산업혁명의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TS·이하 연구회) 새 수장으로 임명된 원광연 제2대 이사장이 “출연연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구회는 과학기술 분야 25개 출연연의 상위 기관이다. 출연연 발전정책과 연구기획, 기능 조정, 경영평가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출연연 기관장을 뽑는 일도 연구회의 고유 권한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연구회 이사장을 맡게 된 원 이사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산하 출연연들이 공공기관의 틀을 벗고 본연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해 대한민국 혁신성장을 이끄는 중추 플랫폼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만은 않다. 그가 말한 청사진이 실현되기 위해선 출연연 미션 및 중점영역 재정립, 평가제도 개선 등이 전제돼야 하는데, 과거 정권 시절에도 쉽게 풀지 못했던 숙제들이다. 원 이사장은 “급격히 변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 속에 출연연 자체
김교흥 국회 사무총장(장관급)은 정세균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일하다 지난 1일 국회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1986년 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민주당 당직자 생활을 거쳤다. 경기도 여주 출생인 김 총장은 인천 대학교에서 학사·석사(정치외교학)를 마쳤고 동국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이며 17대 국회의원으로 첫 배지를 달았다. 17대 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교육위원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2년 연속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등에 선정되는 등 국회의원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인천광역시 정무부시장,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17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18~20대 총선에서 3번 연속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다시 20대 국회에 의원이 아닌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입성했다. 특히 인천과 중앙 정치권을 넘나들며 활동 무대를 넓혀온 점이 김 사무총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김교흥 국회 사무총장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헌법개정(개헌)이다. 국회의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해서다. 정부와 대통령이 개헌안을 낼 경우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 커질까 걱정도 된다. 김 총장은 지난 6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의 당위성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국회가 서로 싸우다 합의안을 못 내고 대신 정부가 낸 개헌안을 국회가 표결 처리하는 상황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이번이 개헌을 위한 '골든타임', ‘적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개헌이 반드시 돼야 한다며 "이번에 안 되면 어렵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여소야대와 다당제를 겪고 있는 소회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인연 △인천 지역에 대한 애정 등에 관한 얘기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회 개헌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여야가 개헌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대통령과 정부가 개헌안을 냈을 때 국회가 못한다고 버티는 모양새도 그렇다. 표결
2005년 출범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새 단장을 마쳤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부위원장직 신설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의 ‘컨트롤타워’였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부위원장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이끌도록 해 저출산의 해법을 찾도록 했다. 지난 9월25일 위촉장을 받은 김상희 부위원장은 머니투데이와 만나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말했다. 2005년 합계출산율이 1.076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저출산 대책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부위원장은 “먼저 촘촘한 돌봄과 노동시간 축소, 일자리 문제, 주거불안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집중할 것”이라며 “아이를 보육시설에서 데려와 식사하고 씻고 하면 밤 9~10시 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 육아기 엄마들의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다자녀 정책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지역구에서 ‘소사댁’으로 불린다.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입성한 김 부위원장은 19대 국회에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의 선택을 받았다. 20대 국회에서는 수성에 성공했다. 소사구는 보수정당의 색깔이 강했던 지역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내리 3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 부위원장은 소사구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과 소통했다. 소사댁이라는 애칭이 생긴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김 부위원장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맡긴 건 김 부위원장의 전문성뿐 아니라 이런 소통 능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3선 현역 의원이라는 위상에 맞춰 중책을 맡은 셈이다 김 부위원장의 발자취를 보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이라는 게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화여대 제약학과를 졸업한 약사 출신인 김 부위원장은 1980년대 여성평우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에 기여하는 등 여성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에는 장관급인 대통령자문
적잖은 386세대 직장인들의 삶이 그렇듯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것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였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당시 선망 받던 기업인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학군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대우차에서 본격적으로 경영기획업무를 맡았다. 회사에서 돈을 지원해주는 미국 MBA(경영대학원)과정에 뽑힐 정도로 핵심인재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997년부터 대우차의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김 대표는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 상황이어서 기획실은 할일이 더 많아졌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대표는 수년간 거의 쉬는 날 없이 늦은 밤까지 일했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을 관두고 벤처기업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면서도 "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며 고 말했다. 대우차 기획실에서 같이 일했던 서정진 회장을 비롯한 동료 5명과 셀트리온의 모태가 되는 '넥솔'(현 셀트리온홀딩스)이라는 회사를 차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