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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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1978년 DGB대구은행에 입행한 후 38년째 근무하고 있다. 행원으로 출발해 은행장에 올랐지만 대구은행 입행 초기 2년간은 틈만 나면 이직을 꿈꿨다. “취업하던 때 2차 석유파동이 닥쳤다. 위기를 맞아 기업들이 신입직원을 거의 뽑지 않는 상황에서 대구은행 딱 한 곳에만 붙었다. 원래 은행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런데 입행하고 보니 사수(대리)가 대구상업고등학교 동기였다. 나는 영남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ROTC(학생군사교육단)로 군대를 다녀온 후 입행해 상고 동기보다 출발도 늦으니 일할 마음이 안 생겼다.” 박 회장은 2년을 방황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대구은행에 뼈를 묻자고 결심했다. 이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대리와 차장, 부장 승진이 동기 중 가장 빠르진 않았지만 상위권 순위를 유지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박 회장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2001년 2월 연고도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M&A(인수·합병)에 뛰어들 때 실무진에게 진짜 괜찮은 회사냐고 거듭 확인한다. 그리고 좋은 회사라는 확신이 들면 실무진이 제시한 여러 입찰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골라 얼마라도 더 얹어 제안서를 내라고 한다. 제2본점 신축 땐 직원들이 일할 공간이니 돈을 아끼지 말고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고급으로 지으라고 당부했다. 돈을 더 써도 그만큼 더 벌면 된다는 지론이다. 박 회장은 기업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투자, 직원들의 복지와 교육에 대한 지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돈은 기업의 수익으로 다 돌아온다고 믿는다. 제2본점 신축과 본점 리모델링도 자신의 임기 때 큰 돈 들어가는 일을 벌일 필요가 있는지 고민했지만 직원들이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라는 생각에 미루지 않기로 했다. 2015년 15년만에 유상증자를 실시할 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수익 다변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주들을 설득했다. 이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 신탁업이 포함된 것은 금융투자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신탁업 발전을 위해서라면 법을 새로 만드는 대신 자본시장법을 고치면 된다. 이런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1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난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신탁업법 제정은 '동일기능 동일규제'라는 자본시장법 대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국회의원 입법 청원을 통해 "신탁업 발전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금융위원회의 신탁업법 제정 움직임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황 회장은 신탁업법 분리·제정 논의는 자산운용업을 넘보는 은행의 의도가 담겨 있다며, 은행의 업무영역 확대로 다른 금융권 종사자들의 피해를 본 역사가 있는 만큼 동반성장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방카슈랑스를 팔면서 보험설계사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펀드를 팔면서 증권사 일자리도 빼앗았다"는 것. 실제로 은행은 1998년 펀드판매를
"예술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 저작권 보호 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윤태용(58) 한국저작권보호원장은 그 스스로도 영화, 드라마를 즐기는 콘텐츠 소비자다. 저녁 10시 퇴근 후면 드라마를 챙겨보고 여의치 않으면 주말에 몰아보기까지 한다. 신입 사원들과 드라마 얘기를 통해 친해질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문화콘텐츠가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며 진정한 콘텐츠 강국을 위해서는 저작권 보호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3월에는 지난해 말 출범한 한국저작권보호원(이하 보호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보호원은 문체부 산하 저작권보호센터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흩어져있던 저작권 보호 기능을 통합한 공공기관이다. 불법저작물에 대한 감시·감독을 통해 실질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한다. 윤 원장은 2014년부터 2년간 문화콘텐츠산업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창작권자의 권리 확대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2월부터 '음원 전송사용료 개선 방안'을 시행함에
국내 저작권 보호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설치됐다. 지난해 9월 설립된 한국저작권보호원(이하 보호원)은 올 3월 초대 원장으로 윤태용(58)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실장을 맞아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국내 저작권법에 따라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올해는 국내 저작권법 제정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가 해외에서까지 큰 인기를 누리면서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순수 '창작자'로 살아남긴 힘들다는 인식이 크다. 보호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7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 금액은 약 2조3800억원이다. 직·간접적인 생산 감소는 3조9000억원, 일자리 손실은 3만5000개 규모다. 영화 '해운대'(2009)의 경우 개봉 전 파일이 유출되면서 9000원짜리 영화 티켓이 900원짜리 중국 불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유독 ‘국민’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국민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해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재벌은 사실상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도 했다. 중기중앙회장은 340만 중소기업인의 대표로 소위 ‘중통령’으로도 불린다. 중소기업 종사자와 소상공인까지 포함하면 대표하는 숫자는 1400만명 넘는다. 여기에 가족 등을 포함하면 국민 대다수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박 회장이 국민 중심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새 정부 들어 중기중앙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안방에 불러들여 대부분 공약을 관철했다. 경제단체의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휘말리면서 기능을 상실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일자리정책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긴장관계가 생기면서 역할이 커졌다. 1957년 경기 안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 회장은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야간중학교를 다녔다. 연
“대기업은 그동안 과보호받았다. 정부가 일찍부터 경쟁시켰다면 세계적 기업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문재인정부 인사? 점수로 치면 100점이다. 그래도 장관만 바뀐다고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가 변하지 않는다. 조직의 뿌리까지 쇄신해야 한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60)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재벌부터 정부까지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평소 할 말은 하는 돌파형 스타일이 그대로 투영됐다. 그는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공정거래위원회 위상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과거 이명박·박근혜정부 초기 의욕적으로 추진한 중기지원정책이 나중엔 흐지부지된 점을 들어 “마지막 평가가 진짜 평가”라고 여운을 남겼다. 일자리 창출을 제1과제로 삼은 새 정부는 일자리의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계와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회장의 입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지난 22일 서울
"단지 모두에게 살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 세계 분쟁 지역을 다니며 일해 온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대표(58)는 난민을 돕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28년간 국제연합(UN)에서 활동한 그의 첫 업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됐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일하면서 UNHCR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개인이 겪는 문제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기구라는 점에서 UNHCR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발칸반도에서 처음 UNHCR 소속으로 일하기 시작했죠. 분쟁 지역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보람있어요. 유엔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해요." 유엔총회에서 설립한 UNHCR은 1951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터전을 잃은 수백만명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 유엔은 2001년부터 세계 난민의 날(6월20일)을 시행했고 2003년 UNHCR을 상설화했다. 현재 127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소라야씨(가명)는 아들이 고향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까지 받자 한국으로 도망쳤다. 고향을 떠나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아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지난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소라야씨는 희망이 생겼다. "한번 거절당한 후 재신청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았어요. 이제 바라는 건 취업입니다. 돈을 벌어서 아들을 한국에서 잘 키우고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난민 문제는 생소하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 곁에 다가온 현실이다. 3월 말 기준 법무부에 접수된 난민인정 신청서는 2만4911명(누적)에 이른다. 소라야씨처럼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지난해에만 98명이다. 일반 이민과 달리 난민은 박해, 분쟁, 폭력 등 공포로 인해 출신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24년간 일한 나비드 후세인 UNHCR 한국대표부 대표(58)는 한국 사회도 난민 문제에 갈수록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후세인 대표는 "후원금 규모로 보면 한국은
“세계 ICT 미래 기술 표준화와 시험인증의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 박재문 한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54)이 “5G(5세대) 이동통신 등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환경에서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서비스·상품이 세계 시장에 통하려면 국제 표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TTA는 국내외 ICT 표준 제정 활동과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ICT 지원기관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국내 기업들의 기술 역량 강화를 통해 세계 ICT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 도약하겠다는 게 박 회장이 꼽은 TTA의 미래 비전이다. 특히 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정보보호 분야 등을 선제적 표준화가 필요한 전략분야로 꼽고 국제 표준화를 주도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험인증 분야에서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FIDO(생체인증 국제표준)에 대응하기 위해 하반기 중 국내 FIDO 시험소를 개소한다. 이를 통해 생체인증 관련 기
박재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은 30년 공직에 몸 담아 온 관료 출신이자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박 회장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에서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융합정책 등 다양한 ICT 정책부서를 두루 거쳤다. 때문에 ICT 미래 기술과 트렌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조예가 깊다. 또 방송통신위원회 대변인 등을 거치며 대외협력 능력과 소통의 리더십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이같은 공직 생활의 경험과 ICT 정책 노하우를 바탕으로 TTA의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부서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TTA는 석박사급 인력만 전체 조직의 3분2의 달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박 회장은 “정보통신기술, 단말 등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등 표준화 시험인증도 분야별로 나뉘어져 각 고유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며 “이는 한 분야에 집중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상호 소통이나 인력 교류 기회가 적어 분야
권세창 한미약품 신임 대표는 연구원 출신이다. 사내에서 그는 '미래를 살고 있는'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그가 손을 대는 신약 후보물질은 곧 한미약품의 미래가 됐다. 그는 지난해까지 한미약품연구센터장을 역임하면서 한미약품 미래사업 밑그림을 그려왔다. 한미약품의 핵심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도 권 사장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취임과 동시에 신약개발 임상 과정 등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또 다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미약품 기술력에 대한 권 사장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권 사장은 20년간 한미약품에서 연구원으로 외길을 걸어왔다. 1996년 SK인더스트리에서 한미약품에 합류할 때만 해도 한미약품엔 바이오신약 연구원이 5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여명 규모로 20년 전보다 20여배가 커졌다. 그간 권 사장이 한미약품에서 관리하고 출원한 특허만 1000여개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한미약품을 오늘날 위상까지 끌어올린 랩스커버리를 개발해온 주인공이다. 권 사장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