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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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은 공직자를 거쳐 마흔 살에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증권사 장수 CEO(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 기술경영학 석사를 졸업한 뒤 1986년 21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사회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옛 통상산업부와 산업자원부 서기관과 산업기술개발 과장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2000년 1월 키움증권 전신인 키움닷컴증권 출범 직후인 그해 초 키움증권 모회사인 다우기술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다우그룹을 총괄하는 전략경영실장을 함께 맡아 다우기술 금융부문 핵심계열사인 키움증권과 사람인HR, 한국정보인증 등 계열사를 관리하기도 했다. 이 인연으로 2009년 키움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8년째 증권업계 장수 CEO에 이름을 올렸다. 권 사장은 공무원 출신답게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안정적인 조직 관리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특히 키움증권의 주력사업인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분야에서
"한마디로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다는 게 어쩌면 경쟁력인지도 모릅니다."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에게 증권업계에서 주식거래 분야 선두를 달리는 비결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의 말처럼 경쟁력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경쟁력일 수 있을까.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키움파이낸스스퀘어 빌딩 본사 접견실에서 만난 권 사장은 “큰 틀에서 다른 회사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다. 첫 번째는 고객 친화적이고 두 번째는 서비스를 좀 더 편하게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비결”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난 17년 간 이런 원칙이 모든 서비스 하나하나에 녹아든 게 지금의 키움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권 사장은 2009년 4월 취임 후 키움증권이 주력사업인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시장에서 고속성장을 토대로 선두업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취임 8년여 만에 2000년 벤처 붐 속에서 설립된 키움증권의 주식 브로커리지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17%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62·사진)는 '스타 PD(프로듀서)' 출신 문화예술전문가다. MBC '퀴즈 아카데미'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비롯해 다수의 히트작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대학과 방송사 등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주 대표는 1955년 경남 마산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에 있는 고모 손에서 자랐다. 197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모교인 동북중·고등학교에서 약 3년간 교편을 잡았다. 당시 배우 최민수도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1983년 MBC PD로 입사한 그를 스타 PD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퀴즈 아카데미'다. 1980년대 학생운동으로 점철된 대학가에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퀴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한돌, 안치환 등 대학가 스타를 발굴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사계'도 프로그램 엔딩음악으로 쓰이면서 대중성을 얻었다. 이후에도 '장학퀴즈',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숲길을 돌아 구름을 타고 꿈동산에 왔어요. 새들은 날아 꽃들은 피어 노래하는 꿈동산. 하늘 아래 땅 위에 모두가 친구죠. 아무라도 좋아요. 꿈동산엔 담장이 없으니까요~”(MBC ‘모여라 꿈동산’ 주제곡)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62·사진)가 선창을 했다. 꼬불꼬불 파마머리가 잘 어울리는 얼굴에 개구진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린시절을 ‘모여라 꿈동산’과 함께 보낸 기자도 곡조를 함께 흥얼거렸다. “거봐. 40대 이상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슬그머니 이 노래를 불러요. 그러면 모두 합창하더라고. 내가 만든 노래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는 거잖아요. 이게 너무 멋진 것 같아요.” #. 지난해 9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공공기관의 장을 맡았다. 지난 35년간 방송PD와 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지만 공기관 근무는 처음이다. 어쩌면 ‘꼰대’가 되기 딱 좋은 조건. 하지만 조직의 딱딱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문화’를 바꾸기로 했다. 문화 사업을 좀 더 유연하게 펼치기 위
강민구 법원도서관장(59·사법연수원 14기)은 사법부 내 최고의 IT 전문가로 꼽힌다. 1997년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근무시절 한국형 법률정보 시스템인 '종합법률정보 1.0 버전'을 총괄 기획해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미국에서의 사법 정보화 연수 경험을 토대로 2003년 출간한 '함께 하는 법정'은 전자소송의 초석이 됐다. 강 관장은 이달 출범할 사법정보화 전략위원회의 위원장도 맡게 됐다. 수준 높은 재판을 위해 '더 나아간 혁신'이 그의 고민인데, 특히 판사들을 타이핑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주의에 입각한 강 관장은 평소 'IT 전도사'로 불린다. 스마트폰 활용방법 등을 담은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란 제목의 강연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86만건(3월5일 오전 기준)을 넘어섰다. 눈길을 끄는 판결로도 화제가 됐다. 2012년엔 구직자가 포함된 노동조합도 설립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판결문에서 “일시적
나이가 몇 살이든 ‘영감님’으로 불리는 직업군이 있다. 판·검사다. 원래 영감은 조선 시대 고관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법조인 등을 높여 부르는 말로 굳어졌다. 단연 보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가 녹아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고위 법관’은 대법관 임명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영감의 정석’으로 꼽힌다. 그런데 어느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고위 법관은 20대 초반 공익근무요원과도 스스럼없이 차 한잔을 나누고 부하 직원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각종 업무는 에버노트와 구글 드라이브로 처리하며 스마트폰을 법원 내에서 가장 ‘스마트’하게 쓰기로 유명하다. 후배 법관들에겐 손수 미역국을 끓여 먹이기도 한다. ‘IT(정보통신) 전도사’, ‘강줌마(강+아줌마)’ '스티브강스(스티브잡스+강)' '디지로그 판사' 등으로 불리는 강민구 법원도서관장(59·사법연수원 14기) 얘기다. #. “원두커피, 발효차, 보이차, 녹차 다 있어요. 뭐 드실래요?”
"모든 은행 업무가 비대면으로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24시간 365일 이뤄집니다. 직장인이라면 퇴근해 소파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만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밤에 마이너스 대출을 신청하면 다음날 편의점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돈을 인출해 쓸 수 있습니다." 다음달 중으로 영업을 시작하는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심성훈 행장의 말이다. 그는 "인터넷전문은행 자체가 비대면 전자거래 방식으로 영업이 한정되기 때문에 비용구조가 단순하다"며 "점포 인건비와 임대료가 안 들어 시중은행보다 예금금리는 높이고 대출금리는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모든 은행 업무를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처리할 수 있는 편의성과 비용 절감을 통한 차별성 있는 금리로 승부를 걸겠다는 포부다. 심 행장은 이를 통해 '넘버원(NO.1) 모바일뱅크'라는 슬로건으로 10년 후 자산규모 1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서울 종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기초과학계의 ‘든든한 맏형’이다. 미국 뉴욕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을 시작으로 고등과학원 교수까지 30년 넘게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해 왔다. 통계 물리 분야에서 수월성을 인정받는 학자일 뿐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기초과학계 발전에도 기여해왔다.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을 기반으로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 기초과학계의 신망이 두텁다. 고등과학원 원장 시절, 당시 생소한 개념이던 ‘초학제 연구’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고등과학원의 변화를 이뤄냈다. 초학제 연구란 자신의 전공을 넘어 다른 분야의 연구까지 함께 진행하는 개념으로 오늘날 융·복합 연구의 뿌리가 되고 있다. 2014년 기초과학연구원 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IBS 취임 후 기관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고자 구체적인 추진전략인 ‘IBS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IBS 이니셔티브’는 우수한 신진연구자 육성, 세계무대 리더십 등의 내용을 담은 IBS 비전이다. 김 원장은 연구자들의
‘시냅스 뇌질환, 면역 미생물 공생, 초강력 레이저 과학,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운영하고 있는 연구단 이름의 앞자를 나열한 것이다. 다채로운 연구단 간판들이 낯설다 못해 희귀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김두철 IBS 원장은 이 명칭이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IBS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연구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2011년 11월 설립됐다.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연구 자율성도 존중해줘 연구자들 사이에선 ‘드림랩(꿈의 연구실)’으로 통한다. 현재까지 28개 연구단이 가동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50개 연구단을 구축하면 기초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조직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시도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오는 11월엔 IBS 대전 본원이 완공된다. 김 원장은 “해외 과학자들이 깜짝 놀랄만한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의미 있는 평가도 잇따랐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조류인플루엔자(AI)가 좀 잠잠해 지나 싶더니 산란계가 대거 살처분 되면서 계란수급에 난리가 났다. 급히 미국에서 계란을 들여와 한 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구제역이 터졌다. 현장방역 챙기고 수습책 만들다 보니 지난 몇 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장관 재임시 가축질병과 쌀 문제만큼은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기반을 확실히 만들어 놓겠다. 수출농업, 미래일자리 창출을 위한 산업화 등 농축산업만큼 중요한 산업도 없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요즘 하루는 ‘25시간’이다. AI·구제역 민간합동 상황회의, 국회 상임위원회 등 그가 주재하거나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한둘이 아니다. 시·군 방역현장 지휘와 이들을 격려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파김치’가 될 법도 하지만 김 장관은 뚝심 있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며 “이번에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쌀 수급, 소·돼지 등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30여년간 농업현장을 지켜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오랜 농정경험과 실무를 바탕으로 농산물 유통, 가공, 저장, 수출, 식품안전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경북 영양출신으로 경북고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거쳐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11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을 거쳐 장관에 오르기까지 농축산업분야에서 한 우물만 팠다. 2011년 aT 사장으로 재직시에는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연임에 성공하며 2007년 공공기관 임기제 도입 이후 첫 재연임·최장수 CEO란 타이틀을 거머 쥐었다.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새로운 아이디어 및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는 등 전문성과 창의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기구(OECD)와 주미대사관 농무관을 지내 세계 농업시장과 흐름에 대해서도 정통하다. 최근 극심한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농식품분야의 청년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국내 해양·항만정책의 ‘산 증인’이다. 1984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 해운항만청을 시작으로 해양수산부까지 해양·항만 한 우물을 팠다. 해수부가 배출한 네 번째 내부 출신 장관이기도 하다. 2002년 북극다산과학기지, 2003년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 2007년 남극장보고과학기지 건설 등 우리나라 해양정책의 굵직한 성과들이 모두 김 장관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풍부한 현장 및 행정 경험에서 나오는 업무 기획력과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이다. 해수부 내부적으로는 특유의 소탈하고 격의 없는 소통 리더십으로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1959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천안고와 경북대(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수부 감사관과 홍보관리관, 해양정책국장, 부산지방해양항만청장 등을 요직을 거쳤다. 2011년엔 ‘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사무차장과 국제관장을 맡았고 이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 해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