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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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2014년 2월 17일 오후 9시 6분쯤 경북 경주 양남면에 있는 한 리조트의 강당 건물 지붕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대형 참사였다. 당시 강당 안에는 한 대학교 신입생 예비교육으로 560명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다. ━'단 13초 만에' 지붕 완전히 붕괴…V자로 꺾여━당시 부산외국어대학교 유럽·미주대학과 글로벌자유전공학부, 아시아대학 학생들은 이틀간 신입생 예비교육을 위해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를 찾았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숙소와 떨어진 강당이다. 강당은 2층 구조의 조립식 건물이었다. 세 단과대학은 강당이 협소해 한꺼번에 들어가지 못해 아시아대학과 유럽미주대학, 글로벌자유전공학부 순으로 번갈아 가며 강당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고는 순번에 따라 가장 먼저 강당에 들어간 아시아대학이 신입생환영회를 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했다. 출입문 반대편 무대가 설치돼 있던 곳부터 붕괴가 시작돼 순식간에 무너
2012년 2월15일 아침 9시40분. 충청남도 서산에서 수십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진원지는 농공단지에 있는 한 공장. 3년 전 이곳을 퇴사한 성모(당시 31세)씨는 이날 옛 직장동료 6명에게 조준 사격 10발을 포함해 총탄 50여발을 퍼부었다. 이 총격으로 직원 최모(38)씨가 현장에서 숨졌고, 임모(30)씨, 문모(56)씨는 가슴과 팔을 크게 다쳤다. 차를 몰고 도주한 성씨는 서해대교에서 경찰과 대치하자 음독자살을 시도했고, 나흘 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왜 3년 전 퇴사한 직장을 찾아와 총기를 난사한 것일까. ━직원에 총탄 50발 난사…"'빵' 폭발음 들렸다" ━ 성씨가 쏜 총은 이탈리아 베넬리사에서 만든 1m 길이의 12구경 산탄총이었다. 산탄총은 탄환 여러 개가 흩어지도록 발사해 명중률이 높다. 성씨는 이날 아침 경찰관서를 찾아 "제천으로 수렵을 갈 것"이라며 해당 총기를 인수받았다. 이후 아버지 명의로 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타고 농공단지로 향했다. 공장에
'탕, 탕, 탕'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이 준비한 총알 6발 중 2발은 명중했다. 총을 맞은 이는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당시 30세였던 안중근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돼 만주 뤼순 감옥에 갇혔다. 밸런타인데이로 알려진 2월 14일은 안중근이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다. 그는 사형선고 한 달 반만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교수형을 당했다. ━왜 이토 히로부미 암살했나 ━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은 사건 당일 미국 LA헤럴드 등 신문 1면 톱기사로 보도되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하얼빈 이론 총영사관에서 시작된 조사에서 안중근은 "이토 공작을 왜 원수로 여기는가"라는 일본 검사의 질문에 15가지 의거 명분을 막힘 없이 술술 대답했다.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
2017년 2월13일, 오전 9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급작스런 속보가 전해졌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 김정남이 여성 2명의 습격에 허망하게 암살된 것이다. 공격 시간은 단 3초. 사람이 북적이는 공항에서 이뤄진 대범한 암살은 새삼 북한 정권의 무서움을 세상에 일깨우기 충분했다. 당시 이 사건은 큰 화제를 모았다. 체구가 작은 여성 2명이 화학무기로 순식간에 덩치 큰 성인 남성을 살해했다는 점, 베일에 싸인 북한 정권의 후계 다툼이 표면에 드러났다는 점에서였다. 사건 발생 후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수많은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다. 범인 2명까지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풀려났고, 김정남 암살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 ━여성 2명이 3초 만에 범행..도구는 화학무기━말레이시아 현지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김정남은 2015년부터 IT(정보기술) 사업 차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인 2017년 2월6일에도
2008년 2월10일.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방차 32대와 소방관 128명이 동원됐지만, 숭례문은 화재 5시간 만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국민들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긴 사건이었다. 숭례문은 사고 후 5년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2013년 5월 다시 개방됐다. 국민 혈세 225억원이 투입됐다. 토지 보상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홧김에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렀던 70세 채모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후 2018년 만기 출소했다. ━◇방화범은 70세 채씨, 토지 보상액에 불만 품고 범행━ 당시 70세였던 방화범 채씨는 경기 고양시에 소유했던 땅이 도로 건설을 위한 부지로 수용됐지만 토지 보상액이 기대에 못 미치자 불만을 품었다. 채씨는 사회적 이목을 끌기 위해 '국보 1호'로 상징성이 큰 숭례문에 불을 지를 것을 결심했다. 채씨는 범행에 앞서 이미 문화재를 훼손한 이력이 있었다. 그는 창경궁 문정전을 방화하려 한 혐의로 2006년 7월 징역 1년 6개월에
지난해 2월 9일, 성매매 알선과 성매매,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 여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최종 1년 6개월 실형이 확정된 그룹 빅뱅 멤버 출신 승리가 출소했다. 2006년 가수로 데뷔해 예능에 개인 사업까지 벌이며 다방면으로 활동했던 그는 2019년 초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며 연예계에서 퇴출, 옥살이까지 했다. 출소 후 '반성하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문란한 사생활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예계 최악의 스캔들로 번진 클럽 버닝썬 사태━사건의 시작은 2018년 11월 말 강남 일렉트로니카 클럽인 버닝썬에서 직원들이 한 남성을 폭행하며 시작됐다. 이후 남성은 온라인상에 자신의 피해 사실과 함께 경찰이 클럽의 뒤를 봐주고 있다며 이들의 유착 관계를 폭로했다. 이 논란은 발생 2개월 뒤인 2019년 1월 말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나며 더 확산했다. 이후 폭행과 경찰 유착 외에 마약 판매, 탈세 의혹도 제기됐고 클럽의 대표이사인 승리가 해당 클럽에서
"Parasite."(영화 '기생충' 영어 제목) 2020년 2월 9일(이하 현지 시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17', '아이리시맨', '조조래빗', '조커' 등을 제치고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생충'은 이날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총 4개 영역에서 상을 휩쓸었다. ━봉준호 "국제영화상 받고 '오늘 할 일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한국 영화는 유독 오스카와 인연이 없었다.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감독 신상옥)가 아카데미 문을 처음 두드린 이후 매년 출품됐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은 없었다. 2018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든 게 가장 좋은 성과였다. 작품상 호명 직후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할 말을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동점 홈런은 기적이었다" 야구선수 임수혁은 '기적의 사나이'로 기억됐다. 1999년 10월 20일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9회말 만들어낸 극적인 동점 홈런 때문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줄곧 국가대표 포수를 맡았던 임수혁은 롯데 자이언츠의 공격형 포수였다. 임수혁은 처음 주전 포수로 나선 1995년 15홈런을 기록하며 그해 입단한 마해영과 33개의 홈런을 합작해 '마림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결정타가 있는 '거포' 임수혁은 당시 3-5로 롯데가 지고 있던 9회말, 기대를 받으며 대타로 타석에 올랐다. 임수혁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홈런을 직감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그는 2점 홈런을 치면서 동점을 만들어냈다. 연장전 혈투 끝에 롯데는 6대 5로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9회말 임수혁의 동점타를 발판으로 이뤄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기적의 사나이'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눈 뜨고 코 베이징", "베이징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운동회" 수많은 편파 판정 논란을 낳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그 중에서도 2년 전 오늘인 2022년 2월7일, 온 국민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 유명한 '눈 뜨고 코 베이징' 패러디를 낳은 쇼트트랙 '황당 실격' 사건 때문이다. 뻔히 알면서 당하는 피해를 가리켜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하는데 이 경기가 딱 그에 맞는 상황이어서 '눈 뜨고 코 베이징'으로 통했다. ━1·2위로 결승선 통과한 한국 선수에 잇따라 '실격'…결국 메달은 중국에━ 2022년 2월7일, 쇼트트랙 에이스 황대헌, 이준서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각각 1·2위로 통과했지만 실격 처리됐다. 황대헌은 준결승 1조 경기에서 4바퀴를 남겨두고 인코스를 파고들어 단숨에 중국 선수 2명을 제쳤다. 이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는 실격이었다. 중국 선수 2명을 추월하는 과정에서 규정에 맞지 않게 레인을
1년 전인 2023년 2월 6일 새벽 4시17분쯤(현지시간). 튀르키예(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 지역이 굉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리히터 규모(M) 7.8의 대지진이 해당 지역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지하 약 17.9㎞에서 발생한 지진은 아파트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을 붕괴시켜, 현지 주민들 삶의 터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현장에는 규모 7.5의 2차 지진과 수십 회의 여진이 찾아오면서 피해를 누적시켰다. 미국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 5만명 이상, 시리아에서 6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현장이 폐허로 변하면서 약 13만명에 달하는 부상자도 발생했다. 한순간에 거주지를 잃은 이재민도 약 2300만명에 달했다. 영국 로이터는 현장에 있던 목격자 말을 인용해 "이른 새벽 강한 진동이 약 1분간 지속되면서 건물들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며 강진 발생 당시 상황을 전했다. 피해 지역 인근 국가인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프러스(키프로스) 등에서도 진동
9년 전인 2015년 2월 4일. 사망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공무원 남편을 살해한 뒤 교통 사망사고로 꾸민 아내와 아들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고 발생 8년여 만이었다. 법정에 선 모자는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인했다고 판단했다. ━크리스마스 악몽…교통사고로 숨진 김씨, 곧바로 화장━사건은 2006년 12월 25일 밤 9시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정읍시청 공무원이었던 김모씨(당시 54세)와 아내 백모씨(당시 51세)는 둘째 아들(당시 28세)이 운전하는 SUV 차량에 올라탄 뒤 크리스마스 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 가족이 타고 있던 차량은 정읍시 칠보삼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호흡과 맥박, 심장 박동 등이 없다며 사망 판정을 내렸다.
"피해 아동이 참혹한 죽음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과연 뭘 했는가." 8년 전인 2016년 2월 3일. 경기 부천시 한 가정집에서 11개월간 방치된 중학교 1학년 이모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불 덮고 누워 있던 백골 상태의 시신 옆에는 냄새 제거를 위한 방향제가 놓여있었다. 이양을 폭행해 숨지게 한 친부와 계모는 "기도하면 딸이 부활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친부는 집에 딸의 시신을 내버려 둔 동안 교수와 목사로 태연하게 활동했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딸 사진을 올려뒀다. ━사별하고 재혼...세 자녀 양육 포기한 목사 친부━피해 아동의 아버지 이모씨(55)는 신학대학교 겸임교수이자 교회 목사였다. 이씨는 1997년 첫 번째 아내와 결혼해 1남 2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 아내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귀국했다. 이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녀 양육을 맡긴 뒤 모교에서 강의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같은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