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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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7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7월24일 오전 1시55분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출발해 알제리로 향하던 AH5017편 항공기의 교신이 갑자기 끊긴 뒤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 인원 116명이 전원 사망했다. 추락 사건과 관련해 핵심 당국인 프랑스, 말리 그리고 부르키나파소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사고 발생 이튿날인 25일. 부르키나파소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말리의 한 마을에서 비행기를 발견했다. 비행기는 비에 젖은 흔적과 함께 지상과 충돌하면서 받은 큰 충격에 의해 동체가 산산조각난 모습이었다. 현장은 참혹했다. 비행기 잔해는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일부 시신은 불에 탄 채 흩어져 있었다. 추락 사고 원인에 대해선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는 자연재해에 의한 추락이었다고 주장했고, 다른 일부는 분쟁 지역을 지나다가 격추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후자였다면, 엄청난 외교적 갈등을 빚을 터였다. ━
2011년 7월 23일 토요일 오후. 중국 항저우에서 푸저우로 향하던 D3115호 고속철이 주행 도중 벼락을 맞고 갑자기 멈춰 섰다. 약 10분 후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뒤따르던 D301호가 그대로 앞 열차를 들이받았다. 당시 D3115호에는 승객 1072명이, D301호에는 558명이 타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에 객차 4량이 교량 아래로 추락했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고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40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최악의 고속철 사고로 꼽히는 이 사건은 자연에 의한 사고가 아닌 안전을 소홀히 한 '인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명 사상자 낸 고속철 참사…원인은 벼락?━전 세계의 이목은 철도 참사 원인 규명에 쏠렸다. 얼마 후 모두가 기다리던 기자 회견 날. 이 자리에서 상하이 철도국 국장은 '벼락이 신호등 장비를 고장 내 빨간불이 켜져야 할 상황에 초록 불이 켜졌다' '관제사들이 경고 메시를 보내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
10년 전 오늘, 2014년 7월22일. 여름 휴가철을 맞아 강원도를 찾은 기차 여행객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강원 태백시 문곡역으로 향하던 관광열차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오트레인)가 교행 신호에도 정차하지 않고 맞은편에 있던 무궁화호 열차를 정면으로 충돌해서다. 이 사고로 관광열차에 탔던 77세 여성 승객 1명이 사망했고 90여명이 다쳤다. 태백선 운행은 13시간 넘게 중단됐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사고는 관광열차 기관사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관사는 열차 운행 중 습관적으로 휴대폰 카카오톡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름날 오후, 평화롭던 태백 기차역 아수라장으로━ 사건은 2014년 7월22일 오후 17시49분쯤 승객 43명이 탄 태백선 관광열차에서 일어났다. 관광열차는 ①태백 문곡역에 우선 정차한 뒤 ②태백역에서 문곡역 방면으로 진행해오는 무궁화호와 교행했어야 했다. 교행은 1개 철로에서 열차가 서로 비껴가는 것을 뜻한다. 당시 무궁화호엔 승객 67명이
2016년 7월 19일.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 기상악화로 정박해있던 9.77t급 새우잡이 배 선원 이모(당시 34)씨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50대 동료 선원을 바다로 떠밀어 살해한 혐의다. 이씨는 승선한 지 불과 보름밖에 안 된 새내기였다. 그는 왜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동료를 살해한 것일까. ━전과자 이씨, 왜소했던 선원 골라 괴롭혀━이씨는 공갈 등으로 유죄 판결받고 복역한 전과자다. 2015년 12월 출소한 그는 이듬해 7월부터 이 배에서 일했지만, 거친 성격 탓에 동료 선원들과 갈등이 잦았다. 그는 특히 체구가 왜소했던 선원 A씨(당시 51)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욕설하는 등 유독 막대했다. 이씨는 가족과 불화로 생긴 스트레스도 A씨에게 풀었다. 이씨는 가족에게 "뱃일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전화로 하소연했는데, 가족은 "그래, 그럼 죽어버려라"고 짜증을 냈다. 이에 화가 난 이씨는 애꿎은 A씨에게 욕설을 뱉었다. 사건은 이씨가 배를 타기 시작한 약 보름이 지난 20
3년 전인 2021년 7월 18일 오후 3시,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 집에 혼자 있던 15세 중학생 A군은 2층 창문으로 침입한 40대 남성 2명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다. A군을 살해한 이들은 당시 48세였던 백광석과 그보다 두 살 어린 지인 김시남이었다. 백광석은 A군 모친의 전 남자친구였다. 백광석은 2018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A군과 그의 어머니, 자신의 친아들과 함께 살면서 사실상의 가족관계를 꾸리기도 했다. 범행 당일, 백광석은 오전 9시부터 A군이 있는 집 주변에서 대기했다. 백광석은 전 연인이 아침에 출근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 A군이 집에 혼자 있다는 걸 파악하고 6시간을 더 기다렸다. 오후 3시쯤 A군이 혼자 있는 집의 2층 다락방 창문이 열린 것을 본 백광석은 지인 김시남과 함께 창문을 통해 집 내부로 들어갔다. A군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일을 마치고 귀가한 A군의 어머니였다. 그는 밤 10시50분쯤 집에 돌아와 주검이 된 아들
2015년 7월18일. 경찰은 경북 상주의 한 마을회관에서 사이다에 몰래 농약을 넣어 할머니 2명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를 받는 80대 여성 박모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박씨를 용의자로 특정, 체포한 지 하루 만이다. 박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씨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사이다에 농약을 넣었던 것일까. ━할머니 6명 쓰러졌지만, 박씨는 '외면'━ 사건은 2015년 7월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마을회관엔 박씨 등 할머니 7명이 모여 있었다. 박씨를 제외한 할머니 6명은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고, 마침 전날 잔치에서 마시다 남은 사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1.5ℓ 페트병에 든 사이다는 색깔이 다른 자양강장제(박카스) 뚜껑으로 닫혀 있었다. 할머니 6명은 별다른 의심 없이 사이다를 나눠마셨고, 하나둘씩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만 홀로
2014년 7월17일 오전 10시54분께.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수색 지원을 마친 소방헬기가 시속 400㎞의 속도로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헬기에 타고 있던 소방관 5명은 모두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은 광주시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로, 헬기는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도로로 떨어졌다. 사고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던 여고생 한 명이 헬기 파편에 맞아 인근 병원에서 치료받긴 했으나 비교적 경상이었다. 그 외에 다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자칫 대참사가 될 뻔했던 헬기 사고에 대해 입을 모아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륙 4분 만에 갑작스러운 추락, 왜?…대참사로 번질뻔했던 순간━ 사고 헬기에는 기장 정성철 소방경, 부기장 박인돈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 소방교와 이은교 소방사가 타고 있었다. 사고 헬기는 추락 때까지 13년간 2644시간을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소방방재청은 기체 결함 가능성을 대비해 유사 기종
1999년 7월 16일 오후 5시 20분쯤 전남 순천시 조례동 한 아파트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됐다. 파란만장했던 도주극이 2년 6개월(907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희대의 탈옥수로 불리는 신창원은 도주 중에도 숱한 화제를 뿌렸고 그의 검거는 세기말 분위기가 겹치며 '신창원 신드롬'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통풍구 통과를 위해 석 달 간 체중 20㎏ 감량━1997년 1월 20일 새벽 3시쯤 무기수 신창원이 탈옥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 3명과 모의해 서울 주택가에서 강도 짓을 벌였다가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서울구치소를 거쳐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가 5년 뒤인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
2023년 7월15일 오전 8시35분쯤. 강수로 불어난 미호강물이 임시제방을 넘어 충북 청주시의 궁평2지하차도로 들이닥쳤다. 지하차도는 물 6만톤이 순식간에 쏟아져 3분 만에 침수됐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지하차도는 흙탕물로 뒤덮였고, 뒤늦게 찾아온 피해자 가족들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일부는 전화기를 붙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소방이 급하게 분당 4만5000톤 물을 퍼내는 양수기를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천의 물과 계속해서 내리는 빗물이 지하차도로 유입됐다. 흙탕물이어서 잠수부도 투입하지 못했다. 범람한 물살은 당시 지하차도를 건너려던 차량과 시내버스 등 17대를 덮쳤다. 이 사고로 11명이 다쳤고,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 14명은 숨졌다. 이날은 오송 참사가 발생한 날이었다. ━오송 참사는 인재…되짚어본 사고 전조 현상 3가지━ 오송 참사는 피해를 예상할 수 있는 전조 현상이 3개나 있었다. 우선 폭우로 인한 하천 범람 가능성이다. 지난해 초부터 엘니뇨(해수 온난
2013년 7월15일.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박평균)는 "국가는 정씨에게 26억3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는 평온한 일상을 살다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를 당하고 가족마저 그릇된 낙인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을 겪게 된 정 씨의 손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고문·가혹행위한 뒤…경찰 "범행 자백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10월 강원도 시골에서 만홧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 A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A양은 그해 9월27일 오후 7시쯤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길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에는 성폭행을 당하
12년 전인 2012년 7월 14일 오전 10시30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서 곰 농장을 운영하던 A씨는 사육장에서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관련 당국에 상황 전파 후 엽사들과 함께 탈출한 곰 2마리를 찾고자 수색에 나섰다. A씨 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2마리는 모두 6년생 암컷으로, 몸무게가 성인 남성과 비슷한 70㎏에 달했다. 곰 2마리 중 1마리의 동선은 빠르게 파악됐다. 이날 오전 11시쯤 농장 인근 야산 정상에서 한 주민이 돌아다니는 곰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곰은 사람을 보자 사육장 방향으로 도망갔다. 만약 곰이 주민을 공격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을 수도 있었다. 주민 제보를 받은 경찰은 20명의 엽사와 함께 야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사냥개도 10마리나 동원됐다. 이들은 2시간 넘게 수색을 벌였고, 결국 이날 오후 2시쯤 사육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곰 1마리를 사살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20년 전인 2004년 7월 12일 오전 10시40분쯤 대전 유성구에 있는 대전교도소 17동 거실에서 40대 남성 수형자 김모씨가 교도관 A씨(7급 교위)를 쇠파이프로 마구 구타했다. 피해자 A씨는 뒷머리와 목 부분에 심한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A씨는 결국 3일 뒤 병상에서 숨졌다. 가해자 김씨는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A씨와 만나 면담을 진행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1997년 9월 상해치사 등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그는 복역 중 다른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징역 2년이 추가됐다. 김씨는 평소에도 다른 재소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교도관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둔기 폭행을 저지른 김씨는 대전교도소의 사건 조사에서 묵비권 행사로 일관했다. 현장 CCTV를 확인한 교도소 측은 "면담부를 정리하던 고인을 (뒤에서) 김씨가 갑자기 쇠파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