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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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8월 9일은 대한민국 마라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평가받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고(故) 손기정 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황영조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손기정의 경우 당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던 탓에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서명이 필요할 때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적었으며,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국적을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나라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56년 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공식적으로 한국의 첫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 두 사람의 '영광의 날'이 모두 8월9일이었던 셈이다. ━한국인으로서 첫 금메달…올림픽 공식 기록엔 日━ 손기정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42.195㎞를 2시간 29분 19초에 주파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당시 올림픽 신기록이기도 했다. 이때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인 선수들이
2019년 8월 8일 오전 3시 서울 구로구 A 모텔. 한 남성 직원이 손님의 '숙박비가 얼마냐'는 반말을 듣고 화가 나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남성은 카운터에 있던 무게 1kg짜리 쇠망치를 챙겨 들었다. 이어 피해자의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 망치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직원은 살해 현장에서 시신을 훼손해 봉투에 담았다. 살해를 저지른 뒤 남성은 다른 직원과의 근무 교대를 하고 사건 당일 모텔 내부를 비추는 CCTV 기록을 인멸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흘 동안 본인의 숙소에 오가며 시신을 관리하기까지 했다. 사건 나흘 뒤 그는 봉투에 나눠 담은 시신을 한강에 던졌다. 모텔 직원의 이름은 장대호. 한강 마곡 철교 남단 인근에서 남성의 몸통 시신이 떠오르면서 장대호가 잔혹하게 저지른 '한강 토막살인'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대호, 고개 빳빳이 들고 피해자에 "다음 생애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 장대호가 피해자를 한강에 내던진 지 반나절이 지나지 않은
1998년 8월7일 금요일,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발생했다. 이 참사로 224명이 사망했고 4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FBI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수사가 벌어졌다. 미국 정부는 알카에다의 배후로 지목된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제재를 시작했다. 다만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후에도 알카에다는 테러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2001년 9.11 테러까지 일으켰다. ━한날한시 케냐·탄자니아서 울려 퍼진 '펑' 소리…사상자 4700여명━케냐 나이로비 중심부에 위치한 미 대사관의 맞은편에는 7층 높이의 사무실 빌딩이 있었다. 그 옆에는 21층 높이의 은행 건물이 있었다. 당일 오전 9시55분쯤 케냐 주재 프루던스 부시넬 대사는 대사관 앞 은행 건물 꼭대기 층에서 회의를 앞두고 있었다. 회의 전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취재진이 돌아간 지 몇 분
1945년 8월 6일, 일본과 태평양 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던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여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를 전쟁에 투입한 사례다. 히로시마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버섯구름이 만들어졌다. 폭발 시 발생하는 고열뿐 아니라 이어지는 방사선, 충격파 등에 의해 히로시마는 지옥으로 변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인 피해자만 약 7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자폭탄 사용은 히로시마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3일 후인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일본은 다음날(8월10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혔다. ━세대를 넘어 반복된 후유증…韓 피해자들의 절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한 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약 2만명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됐던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 정
8년 전인 2015년 8월 5일. 이날 강남대 디자인과 장모 전 교수가 검찰에 구속됐다. 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등 이유로 수년간 가혹행위를 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였다. 이 사건은 해당 분야에서 존경받고 있던 장 전 교수가 자신의 학생이었던 직원을 감금한 뒤 폭행하고 인분을 먹이는 등 엽기적인 가학행위를 저질러 큰 사회적 충격을 줬다. ━처음에는 언어폭력…갈수록 기괴해진 가혹행위━ 디자인 분야에서 권위자로 알려졌던 장 전 교수는 2013년부터 약 2년간 자신이 대표를 맡은 디자인 관련 학회 사무국 직원 A씨(29)에게 폭행을 일삼았다. A씨는 장 전 교수 소속 대학의 제자 출신으로, 교수 밑에서 일하다 보면 교수라는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사무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출근 후 장 전 교수의 악마 같은 민낯이 드러나며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장 전 교수는 일명 '쓰싸'(슬리퍼 따귀)라는 체벌을 만들어 자신의 제자에게 A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가리봉동에 사는 소창영이라고 합니다!" 1988년 8월 4일 오후 9시,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 20대 남성 소창영이 난입해 자신의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 소식을 전하던 강성구 앵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드러냈고, 스태프들은 급하게 이 남성을 제압했다. 이 사건은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졌고, 당시 뉴스를 보던 시청자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황당함을 표했다. ━도청장치 의심케 한 '감시공포증'━ 1988년 당시 24세였던 소창영은 사건 1년 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이 귀에 맞아 고막이 파열됐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이명 증상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의사가 내 귀에 도청장치를 심어 놓았다"는 피해망상 중 하나인 '감시공포증'을 겪게 됐다. 감시공포증은 불안장애의 한 형태로,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고 해칠 것 같다'고
"기체가 고장 났다." 상공을 가르던 미그(MIG) 15기가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곧장 전투기가 뒤따라붙으며 쫓아왔지만 정낙현(당시 24세)은 이들을 따돌리며 남쪽으로 더 거세게 날아들었다. 1960년 8월3일 대낮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귀순이었다. ━대낮에 벌어진 귀순…"자유가 그리웠다"━1960년 8월3일 오후 12시10분. 북한 공군 소위 정낙현이 미그15기를 몰고 강원 대포리 비행장에 착륙,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24살 청년 정 소위는 평안북도 영월 출신으로 북한 공군 76연대 소속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11시45분쯤 미그 15기를 몰아 원산기지를 출발해 한국으로 귀순했다. 당시 정 소위는 북한 정규 장교가 아닌 북한 조종학교 학생 신분이었다. 러시아의 주력 전투기인 미그기는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동유럽 ·중국 등에서 공군 주력기로 채택된 바 있다. 이날 원산 비행장을 이륙해 동료 조종사들과 비행 훈련에 나섰던 그는 편대를 이탈한 뒤 "기체가 고장 났다"며 남쪽으로 기수
1990년 8월2일 새벽 시간,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었다. 6시간 만에 수도인 쿠웨이트시티까지 함락했다. 침공 일주일 뒤에는 모든 저항을 진압했다. 이내 양국의 합병을 선언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1월17일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군이 공습에 나섰다. 이른바 '걸프전'이다. 다국적군에는 미국, 영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일부 아랍국가가 참여해 총 34개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해 2월 이라크군은 완전히 철수했다. 정치 지도자의 '오판'으로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오판의 실마리를 미국이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지역과 세계 정치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했다고 알려졌다. ━전쟁 빚을 또 다른 전쟁으로 갚으려…역풍 불었다━1990년 이라크는 앞서 8년간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 실패로 막대한 국가 부채를 떠안았다. 대외 채무만 600억달러가 넘었다. 전후 복구에도 2300억
43년 전인 1980년 8월1일. 삼청교육대가 설립됐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사회 정화'를 이유로 전국에 있는 군부대에 설치한 기관이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삼청교육대의 명칭은 교육 대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군경 합동작전인 '삼청 작전'에서 비롯됐다. 이듬해 1월25일 교육대가 해산되기 전까지 법원 영장 발부 없이 총 6만755명이 체포됐고, 이들 중 3만9742명이 삼청 교육을 받으며 가혹 행위를 당했다. ━신분증 지참 안 했다고 끌려갔다…셋 중 하나는 '無 전과'━1979년 '12·12 사태'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비상계엄을 발령하고 국보위를 설치했다. 당시 국보위는 '깡패' 조직을 제거해 민심을 얻으려는 정권 차원의 조치로 '불량배 소탕 계획'을 공표했다. 미리 전과자와 폭력배의 목록을 조사한 이후 작전이 진행됐다. 처음 목표로 삼았던 검거 대상자는 2만여명이었지만, 군대와 경찰 간에 경쟁이 붙어 점차 머릿
1983년 7월31일. 충청남도 공주군에 사는 50대 여성 A씨가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밭일을 하러 나간 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A씨가 집을 나갈 이유가 없었기에, 가족들은 그녀가 곧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A씨는 며칠 후 우성면 용봉리의 소룡골 계곡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특이점이 없었고 멱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 당시만해도 시골에서는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당시 아무도 A씨가 살해됐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A씨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21일. 공주에서 또 부녀자 한명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50대의 여성이었다. 역시 평범한 주부였던 이 여성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이후 모습을 감췄다. 두달 후인 4월14일 이 여성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죽은채 발견됐다. 이번에도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단순 변사사건
2005년 7월 30일 오후 MBC를 보던 시청자들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음악 방송에 나온 인디 밴드 멤버들이 느닷없이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초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당시 프로그램은 생방송 중이었고 이들의 성기 노출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고스란히 방영됐다. 이들의 기행은 국민적인 충격을 준 것뿐 아니라 인디밴드 전체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성기 노출하더니 '폴짝폴짝'…7초간 전국 생중계━18년 전이던 오늘 MBC에서는 음악 프로그램 '음악캠프'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녹화가 아닌 생방송이었다. 당시는 인디 밴드가 조금씩 주목받는 때였고 MBC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이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에는 인디 밴드 럭스가 공연에 나섰다. 럭스는 자신들만 무대에 서면 허전해 보일 것을 우려해 다른 인디밴드 동료들을 불러 함께 공연을 펼쳤지만 이 선택은 독이 됐다. 간주가 흘러나오고 있을 무렵, 광대 분장
1981년 7월29일 다이애나 스펜서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기 왕위 계승 예정자와 막 20세가 된 신부는 세기의 결혼을 올렸다. 6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으며 50개국에 생중계로 중계됐다. 생전 이혼했기 때문에 '비(妃)'라는 명칭을 떼야 하지만 아직 다이애나 비(Diana, Princess of Wales)로 불리고 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서도 서민 곁에서 낮은 자세로 베풀었기에 그렇다는 평이 많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왕실의 전통과 품격을 상징하는 존재로 사랑받았다면, 다이애나 비는 보수적인 왕실에 변화를 가져온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英세자빈 된 유치원 교사…아들 학교 운동회서 '맨발 달리기'━다이애나 비는 명문 스펜서 백작 가문의 자제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해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핌리코의 유치원에서 시간제 보조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찰스 황태자와 만났다. 결혼부터 파격이었다. 전통 결혼 서약에서 "남편에게 순종하겠다(o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