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총 995 건
2013년 6월1일 대구. 여대생을 자신의 원룸에서 성폭행하고 살해한 조명훈(25)이 긴급체포됐다. 그는 새벽에 주점을 나선 여성을 쫓아 택시를 함께 타고는 피해자를 데리고 갔다. 택시기사에게는 애인이라고 거짓말했다. ━'택시 탔다'던 딸이 사라졌다━2013년 5월25일 대구에서 여대생 남모씨(22)가 실종됐다. 남씨는 그 전날 저녁 중구 삼덕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던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 남씨는 25일 오전 4시쯤 지인들과 자리를 떠났다. 지인들은 그가 택시를 타는 모습도 지켜봤다. 그런데 남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꺼져 있었다. 지인들은 "택시에 태워 보냈다"고 할 뿐이었다. 딸의 연락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25일 오후 7시쯤 대구 중부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실종 다음날 오전 경북 경주 건천읍 한 저수지에서 낚시꾼이 시신을 발견했다. 죽은 남씨였다. 하의는 벗겨진 채로 속옷 상의만 입고 있었고 윗니 4개가 부러진
한일 월드컵 막이 오르던 2002년 5월31일, 한 여성 시신이 부산 낙동강 하구에서 발견됐다. 검은 비닐봉지에 6번, 마대에 2번 싸인 모습이었다. 청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흉기에 무려 40군데나 찔린 흔적이 남았다. 피해 여성은 부산 사상구 태양다방에서 일하던 종업원 A씨(당시 22). 발견 열흘 전인 21일 밤 10시에 다방을 나서 11시쯤 지인과 나눈 통화가 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당시 경찰은 실종 바로 다음 날 붉은 모자를 쓴 한 남성이 A씨 계좌에서 돈을 뽑아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은행 폐쇄회로(CC)TV에 그 장면이 담겼다. 그러나 공개수배에도 남성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공소시효인 15년을 앞두고 법이 바뀌었다.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 이에 부산경찰청은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다시 수사에 나섰다. 15년 전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성을 붙잡았다. 목격자 증언도 받았다. 남성을 법정에도 세웠다. 해결 국면
7년 전인 2016년 5월29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서 여성 A씨(당시 64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목에는 흉기로 수차례 찔린 흔적이 있었다. 평소 새벽에 혼자 등산을 다녔던 A씨는 일요일이었던 그날도 오전 5시쯤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산에 오르기도 전에 살해된 채 30분 만에 등산객에게 발견됐다. 등산로 근처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던 중, 당일 오후 6시30분쯤 경찰서를 찾아온 남성은 "내가 죽였다"고 자수했다. ━시신 발견 13시간 만에 자수…"처음 만난 사람 죽일 목적"━김학봉(68)은 A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13시간 만에 자수한 이유에 대해 "도와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어서 포기하는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가 범행 전날 밤 수락산에 올랐던 목적은 '살인'이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산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죽이려 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범행까지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19년 전 5월,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 안방에서 가정주부 A씨(36)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A씨의 남편 B씨(46)와 내연관계였던 미국 영주권자 이모씨(여·40대). 미국인 남편과 결혼 후 문화 차이 등으로 갈등을 겪던 이씨는 한국에 들어와 B씨를 알게 된 뒤 만남을 이어왔다. 이후 B씨에게 '이혼 후 새 출발'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복수심에 B씨의 아내를 살해했다. ━고요했던 사건 당일…용의자는 피해자 남편의 '내연녀'━사건은 2004년 5월28일 서울 성북구 정릉2동의 한 빌라에서 벌어졌다. 평범했던 가정주부 A씨는 안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 현장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문을 강제 개방한 흔적도 없었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족적이나 DNA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건을 본 목격자는 물론, 피해자의 비명이나 당시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이 짖는 소리를 들은 이들도 없었다. 경찰은 문 개방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경찰은 면식범일 가능성도 열어둔 채 인물관
1986년 5월 27일. 극약을 먹고 괴로워하는 여성을 사진에 담은 이동식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동식이 남긴 사진은 죽어가는 피해자의 표정과 몸짓을 담았다. 이는 당시 외신도 보도했을 만큼 충격을 안겼다. 이동식은 피해자가 이미 숨을 거뒀는데도 플래시 세례를 멈추지 않고 촬영을 이어 나갔다. 목적은 하나, 자신만의 비뚤어진 세계관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죽음'에 대한 집착, 범행으로━ 이동식은 1940년 대구부(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6살에 부모를 잃고 14살에 상경, 넝마주이로 살았다. 세 차례 절도로 징역을 사는 등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그에게도 재능이 있었는데, 바로 사진이었다. 출소 이후 배관공이 된 그는 월급보다 몇 배 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닐 만큼 사진을 사랑했다. 이동식은 산 닭을 잡는 사진으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참신하다는 극찬과 함께 각종 대회에서 10여 차례 입상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에도 가입했으며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죽어가
"제가 고문을 도와서 죽게 된 여자가 꿈에 자꾸 나와요. 너무 괴로워요." 1999년 5월 26일. '아퐁'이라는 14세 소녀가 홍콩 경찰서를 찾아 여러 차례 호소했다. 경찰은 속는 셈 치고 소녀를 따라나섰다. 소녀의 손에 이끌려 홍콩의 침사추이 그랜빌로드 한 아파트 3층에 들어선 경찰은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냉장고에 사람의 내장 기관과 일부 치아가 발견된 것. 어린이 몸만 한 크기의 헬로키티 인형 안에는 조각난 사람의 두개골이 발견됐다. 이른바 '홍콩 헬로키티 살인 사건'이다. ━300만원 빚에 납치·감금…두 달여 잔혹한 고문 끝에 사망━피해자 이름은 팬 만 예, 1살짜리 아이가 있는 스물 세 살 어린 엄마였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던 팬은 진문락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다 마약에 손을 대면서 약 2만 홍콩 달러(한화 약 3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이후 팬은 빚을 갚지 못해 진문락 일당에게 납치됐다. 그는 침사추이의 그렌빌 로드 31번지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 감금됐다.
"1986년 독극물로 5명을 살해한 김선자 이후, 33년 만에 나온 최악의 여성 살인마" 4년 전인 2019년 5월 25일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당시 36세)에 대한 범죄분석가들의 평가다. 고유정은 범행 당시 전 남편 A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먹였다. A씨가 깊은 잠에 빠지자 고유정은 흉기를 이용해 그를 살해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고유정이 A씨의 시신을 훼손한 뒤 여러 쓰레기봉투에 나눠 담아 제주도, 전남 완도 해상, 경기 김포 등에 유기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고유정의 참혹한 시신 훼손 수위에 대해 "차마 언론에 공개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거 순간에도 "왜요?"…태연하게 연기━ A씨 동생은 형과 연락이 되지 않자 2019년 5월 27일 경찰에 "전 부인을 만나러 제주도에 간 형이 연락 두절됐다"며 신고했다. 경찰은 고유정과 연락을 취했고, 이때 고유정은 "A씨가 날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도망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쓰레기봉투를 옮기는데 유난히 무거워 열어 보니 남녀 토막 시신들이 들어 있었어요." 2000년 5월 24일.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한 공원 쓰레기통에서 남성과 여성 시신이 비닐봉지 여러 개에 담겨 버려진 것을 환경미화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건 당일 범인을 검거했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끔찍한 토막 살인 사건 범인은 다름 아닌 피해자들의 둘째 아들 이 모(당시 24)씨였다. ━원인은 가정 폭력…"어릴 때부터 부모가 학대했다"━당시 언론은 천인공노할 패륜범죄라며 대대적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가정폭력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어릴 때부터 부모가 나를 학대하고 냉정하게 대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그에 따르면 군 장교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이씨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엄격하게 대했다. 그의 어머니도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하고 자주 때리는 등 심각한 학대를 가했다. 일례로 이씨는 유치원생 시절
2011년 5월23일 부산 경찰이 완전범죄를 노렸던 사이버범죄 전문가와의 '두뇌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 대학교수 강모씨(52)에게 자백을 받아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 강씨가 받는 혐의는 이혼소송 중이던 아내 박모씨(50) 살해와 시신 유기였다. 경찰은 아내 박씨가 실종된 지 40여일이 지날 때까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수사 초기부터 강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잡지 못했다. 강씨는 형사와 말장난까지 나눴다. '부인 실종 전 통화한 사실이 있냐?'는 경찰의 질문에 "만난 적도 없고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형사는 통신 기록을 보여주며 "왜 거짓말을 하냐. 문자를 나누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강씨는 "질문을 똑바로 해야 한다"며 "내가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이고 교수인데 '문자'와 '통화'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연락이라고 물었다면 '문자'와 '통화'가 합쳐진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겠지만 '통화'라고 물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2011년 5월 21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 3명이 여학생 1명을 집단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12년 전 고려대 의과대학 본과 4학년이었던 남학생 박모(23)씨, 한모(24)씨, 배모(25)씨는 같은 과 동기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 용추계곡으로 여행을 떠났고, 민박집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여행 온 동기 여학생 A씨가 술에 취해 방으로 들어가 잠들자 박씨, 배씨, 한씨는 A씨의 옷과 속옷을 벗기고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범행 과정에서 한씨와 박씨는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 등으로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다음날인 22일 학교 상담센터와 여성가족부 성폭력상담소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충격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명문대서 벌어진 인면수심 범죄…결국 고려대 출교 처분━한 달이 지난 6월 14일 경찰은 특수강제추행 혐의로 가해자 한씨, 배씨, 박씨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해자의 나체를 촬영한 영상과
"아는 사람이 부르드나, 모르는 사람이 부르드나?" "아는…사람이다." 온몸에 흰 붕대를 감은 태완이(6)가 모로 누워 움츠린 채 대답했다. 황산을 뒤집어쓴 태완이의 목소리가 힘겹게 갈라졌다. "누군데?" 경찰의 질문에 태완이는 "○○ 아저씨(치킨집 아저씨)"라고 용의자를 특정했다. '치킨집 아저씨'는 당시 최초 목격자였던 태완이의 친구 A군 역시 사진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경찰은 두 아동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사건은 결국 미제로 남았다. 1999년 5월20일. 태완이 가족의 시계도 24년 전 그날에 멈췄다. ━피아노 학원 가는 길 "태완아"…'치킨집 아저씨'가 불렀다━1999년 5월20일 오전 11시. 대구시 동구 효목1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6살 고(故) 김태완군을 노린 '황산 테러'가 발생했다. 당시 김군은 학원에 가려 집을 나선 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변을 당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김군의 머리를
1994년 5월19일. 부유층이 모여 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택에서 다급한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당시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인 박 모씨의 자택으로 신고를 한 사람은 박 씨의 아들 박한상(당시 23세)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박씨 부부가 처참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했다. 아들 박씨는 "자다가 불이 난 것을 알고 급히 빠져나오느라 미처 부모님을 구출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이 같은 박 씨의 모습에 단순 화재사건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들 부부를 살해한 사람은 바로 박 씨 아들 박한상이었다. 이 존속살인사건은 당시 각 일간지 1면 머리기사에 실리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부유한 환경서 자란 '금수저 아들'→'패륜아'로...대표적 존속살인사건━ 박한상은 아버지 박 모씨와 어머니 조 모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한상은 어렸을 때부터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대형 약재상 '덕양한약방'을 경영하던 부모 덕분에 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