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9 건
"게임머니를 환전해주던데요." 지난 3월 서울 관악경찰서에 한 건의 첩보가 접수됐다. 신상철 관악서 범죄예방질서계장(경위)은 곧바로 팀원 10명을 소집했다. 짧은 회의 후 신고가 접수된 유흥가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수차례 옷을 바꿔 입고 시선이 느껴지면 전화를 하는 척 했다. 연인으로도 위장했다. 잠복 두달째. 신 계장은 마침내 용의자를 특정하고 현장을 덮치기로 했다. 불법 환전에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였다. 신 경위는 발소리를 죽인 채 불법 환전상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단 2시간만에 환전한 금액은 400만원에 달했다. 경찰은 곧바로 불법 도박장 내부로 진입해 업주와 환전상 등 5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업장에서는 아케이드 형식의 게임기 70여대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2년간 이 곳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 성매매업소, 옷장 안 비밀 통로 발견한 경찰관━ 신 계장은 "두달간 동선을 짜고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현장을 덮쳤다"며 "꼭
마약 수법이 '진화한다'. 거래는 증거가 남지 않는 텔레그램으로 하고 결제는 가상자산으로 한다. 투약범을 잡아도 판매책, 운반책, 유통책, 밀수책, 총책에 이르는 '마약사범 피라미드' 전반으로 수사망을 넓히기가 쉽지 않다. 지난 9월 자수한 투약자 수사를 시작으로 이틀만에 수도권 운반책과 전국구 유통책을 잇따라 잡은 후 가족여행을 가장해 35억원 상당 마약을 들여온 밀수책까지 검거한 경찰관이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2과 김성기 마약2팀장(경감)이 주인공이다. ━투약범 자수 받고 이틀만에 '운반책' '유통책' '밀수책' 검거━ 지난 9월10일 김 팀장이 이끄는 마약2팀 앞으로 필로폰 투약 자진 신고가 도착했다. 강남구 유흥업소 접객원 A씨(24·여)의 자수였다. A씨는 단약 이후 몸무게가 20㎏ 늘어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며칠 전 성동구 자택 복도에서 '드랍' 형식으로 필로폰 1g을 받았다고 했다. CCTV(폐쇄회로TV)에서 마약을 놓고 간 운반책 B씨(21·남)의 실루
"국내 거주 한국인들에게 단기 상용비자 서류 위조를 지시해 비자 장사를 하는 브로커가 파키스탄에 있습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1계 소속 문진혁 경위(43)는 지난 3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첩보를 입수했다. 파키스탄 현지에 있는 브로커와 국내 문서 위조책들이 공모해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위조한 뒤 수수료를 받고 이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증면제협정 효력이 2002년 1월 정지되면서 파키스탄인들은 무비자로 국내에 입국할 수 없다. 현지 브로커와 국내 문서 위조책들은 '단기 상용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위조했다. 단기 상용비자는 최대 90일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목적의 초청 비자로 발급을 위해서는 기업 명의의 초청장 등이 필요하다. 해당 서류로 불법으로 국내에 입국한 파키스탄인 3명은 특정했지만 비자 서류를 위조한 문서 위조책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문 경위는 같은 팀 소속 김주민 경사와 팀을 이뤄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주파키스탄 대사
"제 얼굴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녀요."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에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여성은 자신의 얼굴이 타인의 나체 사진과 합성이 돼 온라인 상에 떠돌아다닌다고 했다. 이 여성은 주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사진이 유출된 것을 알았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2대 5팀 소속 김인 경위는 팀원 6명과 2개월간 집중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30대 남성으로, 피해자의 지인이었다. 평소 조용했던 그가 이런 엄청난 일을 꾸몄다는 사실에 피해자들은 깜짝 놀랐다. 3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24명의 지인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허위 영상물 128개를 만들었다. 이중에는 미성년자 1명도 있었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 교환방도 운영했다. 직접 만든 허위영상물 3개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151개를 유포했다. A씨는 참여자들과 돈 거래도 따로 하지 않았다.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텔레그램 인공지능(AI) 합성 봇으로 가짜 영상물을 만들었다
"다음주 결혼식 있다길래 눌렀는데… 다 빠져나갔어요." 지난해 7월 40대 여성이 경북 칠곡경찰서로 뛰어들어왔다. 그는 결혼식이 있다는 문자를 받고 링크를 누른 것이 전부라고 했다. 순식간에 주민등록등본이 발급됐다는 알림과 함께 통장에서 1900만원이 빠져나갔다. 피해자만 230명, 피해금 1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스미싱(문자 피싱)'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경북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서명재 경위는 수사 초기 검거한 피의자의 텔레그램을 통해 배후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파악된 것만 86명 규모였다. 이 중 8명은 해외에서 범행에서 가담했으며 사용된 계좌는 70여개, 거래 횟수는 30만여건에 달했다. 이들은 청첩장과 부고장, 택배 문자, 주민등록증 발급 등 문자를 보내고 피해자들이 문자 속 링크를 누르면 악성프로그램을 설치해 돈을 빼냈다. 피해금은 가상자산으로 바꾸는 수법으로 '세탁'했다. 피해 규모를 파악한 서 경위는 '한 명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
"팀장님,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지금 체포 진행하겠습니다." 지난달 12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 상가 앞. 짙은 담배 냄새가 풍겨오는 이 건물로 경찰이 출동했다. 밖이 소란스럽자 누군가 건물 지하 1층에서 철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열린 문 틈으로 담배를 찍어내는 기계와 중국인 여성들이 보였다. 즉시 서울경찰청 기동순찰2대 소속 경찰관들은 '불법 담배공장'으로 진입했다. 이충호 서울경찰청 기동순찰2대 10팀장(57) 등은 작업반장 A씨 등 중국인 8명을 담배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이 중 4명은 불법체류자였다. 이 팀장과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담배 1360보루와 담배제조 물품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곳을 포함해 모두 2곳의 불법 담배공장을 적발했다. 대림동 불법 담배공장에선 한해 13억원 규모의 불법 담배를 제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림동에 불법 담배공장 있다"…첩보 수집한 베테랑들, 잠복 끝에━ 이 사건은 한 건의 첩보에서 시작됐다. 불법 담배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 지난달 13일 오후 8시40분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0112번으로 신고가 접수됐다. 0112번은 비정형 신고로, 신고자 위치, 인적사항, 신고이력 등을 확인할 수 없는 번호를 말한다. 신고자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단서는 지금 걸려온 전화 한 통 뿐이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22년차 베테랑 김성은 경위였다. 신고자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다가 조심스레 아버지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김 경위가 무슨 일로 아버지와 통화를 원하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김 경위는 긴장 상태가 됐다. 머릿 속에는 '이 전화는 절대로 끊으면 안된다' '무조건 길게 통화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40분 동안 삶을 포기하려는 자와 구하려는 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버지와 통화하려면…" 베테랑 경찰의 임기응변━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자 위치를 특정하는 일이었다. 김
"인테리어 비용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최근 3년간 경기도 일대 신축 상가 건물에는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한다는 안내 문구가 등장했다. 건축주들이 불경기로 상가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이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40대 남성 A씨도 2022년 1월 해당 문구를 보고 경기 평택의 한 건축주를 찾았다. 그는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건축주는 약속대로 A씨에게 인테리어 지원금 8억원을 선지급하고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시간이 흘러도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용도 변경 허가를 못 받았다" "누수가 발견됐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임대료도 제때 내지 않자 건축주는 지난해 12월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기 평택경찰서 이정황 경위는 9개월 동안 수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냈다. A씨 일당은 평택 외에 시흥, 화성, 천안 등 총 4곳에서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뜯어낸 인테리어 지원금은 29억원, 건축주에게 미납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난 5월22일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절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가 최신 기종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부축빼기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부축빼기란 취객을 도와주는 척 접근해 휴대전화와 지갑 등 물품을 훔쳐 가는 범행을 말한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3팀 소속 고은 경사는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해 CCTV(폐쇄회로TV)부터 분석했다. 전동차 내부를 비추는 CCTV 영상에서 부축빼기범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보였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 인상 착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유사 사건 6건이 추가로 접수됐다. 별건으로 접수돼 다른 수사관들이 수사에 나섰지만 피의자 A씨는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 경사가 유사 사건 6개의 CCTV를 확인해보니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걸음걸이와 체형 등이 익숙했다. 지난 5
"피해자 보호와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스토킹·가정폭력 범죄와 마찬가지로 교제 폭력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김영두 경위(37)는 지난 8일 교제폭력범죄 특별법 제정의 중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김 경위는 지난 8월31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치안정책리뷰에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과 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글을 실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는 집계를 시작한 2017년 3만6267건에서 지난해 7만71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 7월에는 한 유명 여성 유튜버가 연인 관계였던 남성으로부터 4년에 걸쳐 폭행을 당하고 수십억원을 빼앗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김 경위는 14년 전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11년 동안 여성·청소년 범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에 여성청소년과를 두고 교제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등 여성·청소년·아동·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응한
"피해자 다수가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어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이었습니다." 2022년 11월 19일 늦은 오후 한 시사프로그램 내용이 유난히 귀에 '꽂혔다'. 경기 의정부를 중심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대부중개업체 이야기였다. 피해자 본인은 물론 지인과 가족까지 파산시키는 수법이 악랄했다. 의정부를 관할하는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 광역수사1반은 즉각 수사에 돌입했다. 김창배 반장(54)과 동료 수사관 4명은 휴가를 반납하고 1년 넘게 수사에 매진했다. 그 결과 대부중개업체 대표 A씨 등 211명을 사기 등 혐의로 검거했다.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전국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425명, 피해액은 125억원에 달했다. ━"금융권 대출 어려우세요? 중고차 사면 저금리 대출"…가족·지인까지 파산하게 만든 일당━ 대부중개업체 대표 A씨는 신용도가 낮아 저금리 대출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노렸다. 이들은 우선 피해자들이 제 2·3금융권과 대부업체 등에서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
"정말 중요한 물건이거든요. 꼭 좀 찾아주세요." 지난달 24일 오후 7시10분쯤. 한 고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서울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를 찾았다. 학생은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려고 점퍼를 벗었는데 누군가 옷을 훔쳐갔다고 말했다. 점퍼 주머니에는 400만원짜리 '인슐린 펌프기'도 있었다. 인슐린 펌프기는 1형 당뇨 환자들에게 중요한 의료기기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형 당뇨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병으로 인슐린 펌프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고혈당이 악화돼 급성 케톤산증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과 어머니는 현장 주변을 3번 넘게 돌아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주말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과 집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두 사람은 애타는 심정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32년차 경찰의 촉… '분명 버리고 갔을 거야'━ 당시 파출소에 있던 사람은 32년차 경찰 박남훈 순찰2팀장이었다. 그는 신고자의 이야기를 듣고 '옷 사이즈가 안 맞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