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혁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1계 경위

"국내 거주 한국인들에게 단기 상용비자 서류 위조를 지시해 비자 장사를 하는 브로커가 파키스탄에 있습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1계 소속 문진혁 경위(43)는 지난 3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첩보를 입수했다. 파키스탄 현지에 있는 브로커와 국내 문서 위조책들이 공모해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위조한 뒤 수수료를 받고 이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증면제협정 효력이 2002년 1월 정지되면서 파키스탄인들은 무비자로 국내에 입국할 수 없다. 현지 브로커와 국내 문서 위조책들은 '단기 상용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위조했다. 단기 상용비자는 최대 90일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목적의 초청 비자로 발급을 위해서는 기업 명의의 초청장 등이 필요하다.
해당 서류로 불법으로 국내에 입국한 파키스탄인 3명은 특정했지만 비자 서류를 위조한 문서 위조책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문 경위는 같은 팀 소속 김주민 경사와 팀을 이뤄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주파키스탄 대사관 등 재외공관에 단기 상용비자로 국내에 입국한 파키스탄인들의 명단과 이들이 비자 신청 시 제출했던 서류를 요청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 서류 내용이 더 치밀해졌다는 점에서 문서 위조책들은 동종전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 용의자 목록을 추렸다.
위조 서류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파키스탄인들을 불러 조사하던 중 이들이 입국할 당시 인천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던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용의자 목록에 오른 이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이들은 모두 A씨(46)를 지목했다.
이즈음 A씨는 다른 범행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문 경위는 문득 A씨의 접견 기록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를 도와 함께 범행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A씨의 접견 녹취록을 확인해보니 A씨가 전처와 조카에게 범행 관련 대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 경위는 즉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A씨와 공범인 A씨의 전처와 조카 주거지, 차량 등을 강제 수사했다. 이곳에서 발견한 노트북과 외장하드에는 비자 서류 위조에 사용한 문서 등이 들어있었다.
A씨와 관련이 없는 또 다른 문서 위조책은 국정원과의 공조를 통해 특정한 후 검거했다.
문서 위조책 외에도 이들을 통해 위조 서류를 산 뒤 국내에 들어온 파키스탄인들을 잡아야 했다. 특히 외국인 등록증에 적힌 정보와 실제 주거지와 다른 경우가 많아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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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로 귀화한 파키스탄 출신 통역가의 도움을 받아 파키스탄인들이 주로 머문다는 전국 각지의 공장을 다니며 한 명씩 찾아 검거했다. 약 7개월간의 수사 끝에 국내 문서 위조책 4명과 위조한 서류로 국내에 입국한 파키스탄인 20명을 붙잡아 지난달 모두 송치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브로커 B씨와 C씨에게는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이들은 국내에 귀화했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파키스탄인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 경위는 "위조된 서류로 국내에 입국한 것과 별개로 검거된 파키스탄인 대부분이 난민 신청을 해 체류 자격을 연장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들은 위조 서류를 받기 위해 브로커와 문서 위조책들에게 1만~1만3000 달러(한화 약 1382만~1797만원 상당) 상당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문 경위는 지난해 전임수사관 자격을 획득했다. 경찰청은 2020년 '수사관 자격관리제도'를 도입해 수사 역량에 따라 '예비·일반·전임·책임' 등 4단계로 나눠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전임수사관 자격은 재직 기간 수사 경력 7년 이상인 수사관 중 심사로 선발된 이에게 주어진다.
15년 전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한 문 경위는 올해로 12년째 수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토익과 텝스 등 영어 어학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 부정 시험을 치른 브로커와 의뢰자 총 20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전임자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았지만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 필체 분석 방법을 따로 공부했다. 문 경위는 시험시행사에서 부정행위에 사용된 답안이 적힌 쪽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필체를 분석하던 중 해당 쪽지에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쪽지에 대한 지문 감식을 한 결과 범인의 신원이 특정됐다.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해결된 순간이었다.
문 경위의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는 늘 '형사'가 적혀있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인 문 경위의 아들도 경찰관이 꿈이라 말한다. 그는 "바빠서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지만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이 직업을 선택한 게 잘한 일 같다"며 "아들의 꿈이 앞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만약 정말 경찰이 된다면 아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