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김성기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2과 마약2팀장

마약 수법이 '진화한다'. 거래는 증거가 남지 않는 텔레그램으로 하고 결제는 가상자산으로 한다. 투약범을 잡아도 판매책, 운반책, 유통책, 밀수책, 총책에 이르는 '마약사범 피라미드' 전반으로 수사망을 넓히기가 쉽지 않다.
지난 9월 자수한 투약자 수사를 시작으로 이틀만에 수도권 운반책과 전국구 유통책을 잇따라 잡은 후 가족여행을 가장해 35억원 상당 마약을 들여온 밀수책까지 검거한 경찰관이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2과 김성기 마약2팀장(경감)이 주인공이다.

지난 9월10일 김 팀장이 이끄는 마약2팀 앞으로 필로폰 투약 자진 신고가 도착했다. 강남구 유흥업소 접객원 A씨(24·여)의 자수였다. A씨는 단약 이후 몸무게가 20㎏ 늘어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며칠 전 성동구 자택 복도에서 '드랍' 형식으로 필로폰 1g을 받았다고 했다.
CCTV(폐쇄회로TV)에서 마약을 놓고 간 운반책 B씨(21·남)의 실루엣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영상 속 B씨는 배달기사들이 주로 착용하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B씨는 A씨에게 배달한 뒤에도 5시간 동안 인근 주택가에서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운반한 뒤 서울 서대문구로 이동했다.
문제는 'B씨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마약2팀은 B씨의 이동 경로를 쫓았다. 특이한 점은 B씨가 매일 같은 복장으로 같은 시간대에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는 것이었다. 용의주도하게 현금만 이용하던 B씨에게도 맹점은 있었다. 야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편의점에서 어느 날 잔돈을 거슬러 받으려고 휴대폰 번호를 남긴 것. 수사팀이 B씨의 인적 사항을 특정한 순간이었다. B씨는 경기 수원시로 이동한 상태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오후 6시, 마약2팀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가겠다"고 했다. 한 팀원이 "팀장님 저 이대로는 집에 못 들어가니까 제가 수원 가겠다"고 하자 다른 팀원이 "저도 집에 가봐야 잠자기는 글렀으니 수원 가서 확인만 하겠다"고 응수했다. 김 팀장은 서로 야근을 자처하는 팀원들을 이끌고 B씨가 있는 수원으로 향했다.
마약 2팀은 다시 배달을 위해 모텔에서 나오던 B씨와 마주쳤다. B씨가 갖고 있던 마약류는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한 공원에서 캐온 것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팀장은 공원 인근 CCTV 분석을 통해 불빛 하나 없는 밤길을 지나는 차량을 발견했다. 경북 경주시에서 온 공유 차량이라는 점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김 팀장 뇌리에 스쳤다. 경주, 대전, 수원에 오가며 마약류를 묻은 전국구 유통책 C씨(45·여) 정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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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C씨에게 마약류를 건넨 해외밀수책 D씨(33·남)까지 검거됐다. D씨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아내, 자녀들과 가족여행을 가장해 필리핀으로 출국한 후 현지에서 마약류가 담긴 배낭을 전달받아 국내에 들여온 혐의를 받는다. 필로폰 6.643㎏과 케타민 803g 등 30만여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대량의 마약을 4차례 밀반입했다. 자수에서 밀수책 검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강남경찰서는 현재 필리핀 총책을 쫓고 있다.
전 야구선수 오재원(39)과 유튜버 김강패(33), BJ세야(35)를 둘러싼 마약 스캔들 등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9월까지 마약2팀이 맡은 사건에서 검거한 마약사범만 90명이 넘는다.
강남지역에서만 8년간 마약팀장을 맡아온 베테랑 김 팀장에게 하나의 철칙이 있다. "경찰로서 공적 쌓아줄 테니 자신의 사건은 봐달라"며 접근하는 제보자는 아예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우리는 정보원을 두지 않는다"며 "신고 사건만 해도 충분히 마약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의 형사로서 '촉'은 과거부터 빛을 발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최초 납치범으로 붙잡은 것이다. 2004년 7월15일 서울 마포구 중부지구대에서 경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순찰을 마치고 지구대로 들어가던 중 보도방 업주들을 만났다. 업소 여성들이 똑같은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나가서는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김 팀장은 업주들과 함께 그 남성이 나타난다는 그랜드백화점으로 향했다.
어린 경장이었던 그는 '아가씨랑 만나려면 인상착의를 알려달라'고 보도방 업주 휴대폰을 이용해 문자를 보냈다. 유영철은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나간다'며 '키는 175㎝ 정도'라고 답장했다.
현장에 나간 김 팀장은 그랜드백화점 앞에서 유영철을 발견했다. 검문검색으로 휴대폰을 뒤졌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유영철은 김 팀장에게 먼저 "저랑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찾냐"며 "방금 골목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김 팀장은 새벽 시간대에 행인의 옷차림을 봤다는 사실이 수상하다고 느꼈고 "골목길에 들어간 남성을 찾게 도와달라"며 그를 차에 태웠다.
차에 탄 유영철은 입에 무언가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입을 강제로 벌려 확인하니 보도방 업주들이 운영하는 업소 전단이었다. 유영철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사라진 업소 여성의 손목시계가 발견됐다. 이렇게 김 팀장의 손에 최초 납치 피의자로 검거된 유영철은 이후 20명을 살해한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면서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92년 입직 후 33년째 경찰관으로 사는 그는 퇴직 이후에도 동료들에게 '같이 근무해서 좋았던 팀장'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아들들은 학창시절 12년간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경찰'을 적었다. 김 팀장은 "잘한 일이 있어도 가족들이 걱정할까 싶어 얘기하지 않는 편"이라며 "겉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아들이 경찰을 하겠다니 내심 뿌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