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7 건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100여곳에 '이갈이' 등 그라피티(길거리 낙서)를 그린 30대 미국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25일 미국 국적 30대 남성 A씨를 재물손괴 등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달 서울 용산구 이태원 등 용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택 대문, 굴다리, 쓰레기통, 도로 노면, 전봇대, 상점 셔터 등 155곳에 낙서를 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 관광차 한국에 입국한 A씨는 용산 일대에 래커 스프레이 페인트와 특수 펜을 이용해 '이갈이', 'bruxism' 'brux' 등 낙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bruxism'은 미국 의학용어로 '이갈이'를 뜻한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낙서 신고를 접수한 뒤 CCTV 분석 등을 통해 A씨 동선을 추적, 같은 날 용산구의 A씨 지인 집 근처에서 그를 검거했다. 검거 직후 출국 금지 조치도 내렸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10월에도 한국에 입국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엄마, 나 액정이 깨졌어. 휴대폰 보험 받으려면 링크 눌러줘야 해!" 올해 초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대포 유심이 유포되고 있다는 첩보가 전북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입수됐다. 사건 피해자들은 '휴대폰이 범죄에 이용됐으니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피해자는 당시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 적 없어 영문을 모른 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 조사 결과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전북 전주의 한 번화가에서 신분증을 분실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휴대폰이 개통된 대리점을 수상히 여겼다. 통상 휴대폰을 새로 개통하려면 대리점 업주(60대)가 가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동의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업주가 가입신청서를 위조해 범행을 벌이면서 휴대폰이 무작위로 개통됐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전수진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대 경위는 "피해자 진술부터 거꾸로 타고 올라가 조사해 보니 전주 시내 조폭(폭력조직원)
"으아아아악." 지난달 17일 오후 10시30분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주점. 남성 손님 A씨가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식당 직원과 술값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A씨는 그 자리에서 식당 직원 3명을 때리고 "다 죽여버리겠다. 흉기를 찾아오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 영통지구대 소속 정한결 경장은 신고를 받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한 정 경장은 처음 A씨를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전신에 문신을 한 상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손에 뾰족한 흉기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또 다른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식당 안 손님들은 처음에는 A씨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주방 쪽에서 칼을 내놓으라는 난동 소리가 들리자 눈치를 채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사이 정 경장은 재빠르게 식당 내부로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주방 쪽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의 비리를 제보합니다." 지난해 8월 대전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첩보 하나가 접수됐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이 유아용 교재 회사와 결탁해 약 3년에 걸쳐 학부모들로부터 교재비 등을 부풀려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원장들과 교재회사가 교재비를 부풀려 발생한 차액을 나눠가졌다고 주장했다. 첩보에 따르면 이들은 2016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총 11개 과목 교재비를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높게 책정해 학부모들에게 청구했다. 공립유치원이나 병설 유치원에 1만원 수준으로 공급하는 교재를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2만~2만5000원 상당으로 부풀려 제공한 것이다. 첩보를 입수한 조우경 경위(30)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관행처럼 굳어진 비리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특정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만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비리를 저지른 곳들을 모두 밝혀내는 것이 중요했다. 조 경위는 적용 법리부터 다시 고민했다
"제 돈 58만원이 사라졌어요. 도와주세요." 지난 8월26일 광주광역시의 한 지구대에 112신고 접수됐다. 나흘 전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서해안 고속버스를 이용했는데 그 사이 봉투 안에 넣어둔 중국 돈 1000위안(약 18만원)과 한화 약 40만원이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담당 형사는 피해자 진술을 바탕으로 고속버스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 때, 어딘가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 오전 11시쯤 불상의 한 남성이 충남 보령의 대천휴게소에 세워진 버스 안에 들어오더니 이곳 저곳을 살피고 현금을 빼가는 것이었다. 이후 이 사건은 관할 경찰서인 충남 보령경찰서 수사과 김정훈 경위에게 넘겨졌다. 김 경위는 블랙박스 영상, 휴게소 CCTV(폐쇄회로TV) 등을 바탕으로 범인을 특정했다. 그는 조사를 하던 중 과거 보령경찰서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몇 번 체포가 됐던 피의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2018년 똑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가 구속이 돼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지난해 출
지난해 10월13일.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전세사기꾼'으로 불리는 '빌라왕' 김모씨(당시 42세)가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경찰 수사 중 피의자가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 수사 대상이 사라져 수사를 끝낸다는 의미다. 안성근 수사관(31)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금수대) 2계 3팀 소속 6명의 수사관은 피의자가 숨진 뒤에도 9개월간 수사를 진행해 빌라왕의 범행 수법을 규명하고 공범의 존재 등 범죄의 종합적 실체를 밝혔다. 검거한 피의자 중엔 김씨를 모방해 제2, 제3의 '빌라왕'을 꿈꾸던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구치소에 갇혔다. 또 피해자들의 내용증명을 구치소로 보내고 경매를 진행할 수 있게 도왔다. 수사팀의 노력으로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가 다수인 피해자 708명은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의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숨진 사기꾼과 살아 있는 공범들…세입자 울리는 수법 밝혀내━ 경찰은 김씨가 숨지기 한
"지인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받았는데 이게 혹시 불법인가요?" 지난해 초 서울 강북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고시원에 살고 있다고 허위로 전입 신고를 하는 등 서류를 꾸며내 LH 전세자금을 불법 대출받고 LH 전세임대주택 부정 입주 자격을 얻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북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이한민 경위(52)는 직접 제보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브로커의 인적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일단 제보자로부터 들은 정보를 토대로 브로커 A씨에 대한 수배를 내렸다.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A씨가 검거돼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A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던 이 경위는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A씨는 브로커 B씨와 C씨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브로커들은 LH 전세자금 대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를 꾸몄다. 쪽방, 고시원 등에 3개월 이상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만나 조직적으로 보험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 강동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소속 송기열 경위(42)는 지난해 12월 첩보 하나를 입수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뒤 실제로 접선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가로채는 일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송 경위는 또 다른 보험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첩보 내용을 확인하려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고수익 알바(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게시물에는 어떤 내용으로 일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텔레그램 아이디만 공개돼 있었다. 글을 올린 이들은 보험 사기 집단이었다. 범행 설계와 교통사고 합의·범죄수익금 배분 등을 담당하는 총책, 중간에서 범행을 지시하는 중간책, 단순 범행 가담자들을 감시하는 감시책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단순 범행 가담자들을 모집했다. 범행에는 렌터카를 사용했다. 한 차에
연제우 삼성1파출소 순경(26세·남)은 지난달 14일 오후 1시쯤 "가게의 물건이 없어졌는데 CCTV(폐쇄회로TV)를 보니 3명이 훔쳐갔다"는 신고를 받았다. 연 순경은 즉시 서울 강남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출동했다. 강남경찰서 경찰관 10여명도 현장에 투입됐다. CCTV를 확인한 그는 그 3명이 유럽 한 국가를 상징하는 스카프를 착용한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생 때 스카우트 경험이 있는 연 순경은 이들이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여했던 대원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연 순경은 주변 잼버리 인솔자들에게 CCTV 영상을 보여주며 해당 영상에 나온 이들을 본 적 있냐고 수소문했다. 그러나 이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연 순경은 코엑스몰 내부를 뛰어다니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색을 이어갔다. 연 순경이 5번째로 만난 한 외국인 여성은 해당 잼버리 대원들이 현대백화점 10층의 한 매장을 방문했다고 진술했다. 연 순경은 이들이 찾은 매장을 방문한 뒤 동선을 추적해 현대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근무 중이든 퇴근길이든 제 직업은 경찰이잖아요." 지난달 17일 오후 8시20분쯤 서울 강북구 송중동 사거리. 서울경찰청 202경비단 62경비대 소속 안근석 경장(26)은 퇴근길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 뒤편에서 '쾅' 하는 충격음을 들었다. 안 경장의 차로를 향해 우회전하던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더니 안 경장의 뒤를 따르던 차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것이다. 안 경장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뛰어갔다. 태권도학원 통학버스인 노란 승합차의 뒤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 4명이 경상을 입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학원 차량 인솔 교사에게 112신고를 부탁한 안 경장은 곧바로 자신의 차에 몸을 실었다. 가해 차량 운전자가 음주 상태인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안 경장은 "근무 중이든 퇴근길이든 제 직업은 경찰이지 않으냐"며 "눈앞에서 범죄 피해를 목격했는데 신고만 하고 넘기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안 경장은 먼저 도주하던 흰색 엑센트 차량의 번호판을 되뇌
#. 지난 4월20일 20대 남성 건호씨(가명)가 자신의 친동생, 동생이 재직 중이던 회사의 대표 A씨와 함께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찾아왔다. 건호씨는 미추홀서 박지은 경장에게 "누군가 내 휴대폰으로 대출을 받아 피해를 봤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건호 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정확히 말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사실 건호씨는 초등학생 수준의 소통만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이다. 건호씨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박 경장은 대표 A씨가 건넨 통장 거래 내역서 1장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내역서에는 건호씨가 총 1억4000만원 상당의 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은 뒤 인출한 내역만 담겼다. 박 경장은 "본인이 어디에 감금됐고, 누구에게 어떻게 협박을 당했는지 등에 대해 전혀 진술을 못 했다"고 했다. 명확한 피해 진술을 받을 수 없었던 박 경장은 고소 또는 진정의 형태가 아닌 '첩보 수사'로 수사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증거 확보였다. 박 경장은 카드 결제 내역을 토대로 건호씨의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 기억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지난해 8월7일 밤 10시쯤. 부산 사상구의 한 도로에서 60대 남성 A씨가 그랜저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운전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B씨로 사고 당일 A씨를 병원에 데려다줬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던 B씨는 자신의 전화번호 대신 한국인 지인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러나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면서 다른 번호가 전달됐다. B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부상 사상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이정실 경사(40)는 B씨의 신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 경사는 사건 당일 A씨의 동선을 추적하고 A씨가 치료받았던 병원을 찾아 차량 번호를 특정했다. 차량 조회를 통해 나온 전화번호로 B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해당 차량 소유자는 B씨가 아닌 인도네시아 국적의 또 다른 외국인 C씨였다. 이들은 서로 이름 정도만 알 뿐 잘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