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충전소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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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5 건
"유서는 이미 써두었어요." 야심한 새벽, SNS 메시지가 울렸다. 삶을 끝내려던 10대 학생의 말이었다. 정리는 이미 거의 다 했단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45)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어디 사세요?" 실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의 말이었다. 그러나 유 단장은 그리 묻지 않았다. 정보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이는 사는 지역을 말했다. 죽으려는 이유도 알려줬다. 특정이 됐다. 유 단장은 112에 문자 신고를 했다. 그 역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건만, 고단함도 잠도 잊었다. 대신 밤새 경찰과 공조하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유 단장이 대화하며 정보를 파악한 덕분에 구조가 수월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근본 이유가 있었기에, 그 문제 역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자살하려는 10대들이 SNS에 남긴 흔적. 죽을 거라는 '암시'. 그걸 샅샅이 찾고, 정말 위급한 순간이라 판단될 때만 '112 신고'를 한다. 그리 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신고 건수
지난달 3일, 저녁 7시 12분. 혜율씨는 하늘이 노래졌다. 산책하고 마트에 함께 온 반려견 '진솔이'가 없어져서였다. 잠시 묶어뒀는데 버둥거리다 목줄이 빠진 모양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남편은 야근하다 전화를 받고 전속력으로 오고 있었고, 혜율씨는 동네 중고마켓에 실종됐단 글을 빠르게 올렸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진솔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차로 다니며 찾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차 키를 가지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내렸을 때였다. 글쎄, 잃어버렸던 진솔이가 집 앞에 와 있었다. ━화물 카트에 잠시 묶었으나…움직이며 목줄 빠져━17년 키우고 무지개다릴 건넌 강아지 아롱이 생각이 났다. 한겨울이었다. 부모님이 산책하다 녀석을 잃어버렸다. 온 가족이 미친듯이 동네를 뛰어다니며 찾았다. 다행히 다른 층, 같은 호수에서 아롱이를 찾았다. 남의 집 앞에서 짖고 있었다. 집을 찾아오려 애쓴 거였다. 옛날식 아파트라 공동
배달할 찜닭을 받아든 이재찬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6분 안에 배달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따뜻하게 드셨으면 좋겠단 책임감이 그를 채찍질했다. 재찬씨는 배달 가방을 메지 않고, 손에 꼭 쥐었다. 행여 국물이 흐를까 봐 싶어서란다. 걸어서 배달한 지 2년 넘은 이의 내공이 느껴졌다. 경사가 있는 언덕을 뚜벅뚜벅 걷는, 그의 뒤를 바삐 따랐다. 노란 개나리며 이름 모를 길의 꽃들이 스치는 따뜻한 계절이었다. 고개를 넘었을 땐 가쁜 숨이 헉헉거리며 나왔다. 이윽고 우린 어느 아파트에 다다랐다. 벨을 누르려는 찰나, 유모차를 끌던 주민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재찬씨가 "운이 좋았다"며 빙긋 웃었다. 보온 백에 든 찜닭을 꺼내어 요청대로 현관문 앞에 뒀다. 재찬씨가 배달 완료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었다. 가게까지 약 500m, 배달하는 곳까지 또 500m. 그리 1km를 부단히 걸어서 번 배달비는 2900원. 날이 아주 무덥거나 추운 날은, 조금 더 받아서 3900원 정도. 2년
"친구가 제주에 갔는데, 나쁜 마음을 먹은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지난해 2월 4일 새벽 1시쯤. 제주 경찰 지구대에 112 신고가 이리 접수됐다. 제주에 간 친구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겼단다. 내용이 이랬다. 죽으려고 제주에 왔다고, 그런데 사실은 죽긴 싫다고. 긴박한 상황이었다. 즉시 '코드 1(원)' 지령이 발동됐다. 핸드폰으로 자살 위기자 위치를 추적했다. 카페 인근 바다로 나왔다. 경찰이 5분 만에 출동했다. 직원 한 명이 황급히 먼저 갔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 밤바다. 거기에 들어가는 이들을 발견했다. 20대 여성 두 명이었다. 경찰이 소리쳤다. "어어이, 잠깐, 잠깐만!" 그들은 경찰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주저할 수 없이 '비상'이었다. 경찰은 지구대에 지원 요청을 했다. 팀장이었던 남기상 경감(54)도 즉시 경찰차에 올랐다. 구명환이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출동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끊임없이 이미지
초록빛 새싹이 여럿 그려진 식당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초등학생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한창 배고플 나이. 아이는 저녁 한 끼를 먹으러 왔다. 점심은 학교서 먹었으나, 저녁을 차려줄 이가 부재했다. 아이 보호자는 일하느라 밤늦게 돌아올 터였다. 그러니 실은 아이도 편의점서 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처지였다. 다행히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여기, 경기도 부천에 있는 '두루두루 식당'에서는. 식당 주인이 큰 밥솥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는 밥을 넉넉히 푸고, 제육볶음 같은 맛난 반찬도 함께 담았다. 뜨듯한 밥을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자리에 앉은 아이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다 먹은 뒤에도 돈을 낼 필요는 없었다. 동네 아이이기에 밥은 '무료'였다. 매일 매일 그리 먹을 수 있었다. 밥을 굶지도 가벼이 때우지도 말고 언제든 오라고. 어린이 전용 식당을 2015년 9월부터 매일매일 열어두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다 온다. 식당에서 잘
집에 살던 이는 고인이 돼 흙으로 돌아갔다. 홀로 살던 50대였다. 아무도 알 수 없던 그 죽음은, 10일이 지난 뒤에야 집 밖으로 삐져나왔다. 지난해였고 계절은 여름이었다. 냄새를 견딜 수 없던 이들이 신고했다. '고독사'였다. 고인은 그제야 떠났으나 집엔 오래된 흔적이 남았다. 아무나 쉬이 지울 수 없는. 그래서 특수청소부가 온 거였다.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49)의 일이다. 고인 흔적을 지워주고, 황급히 떠난 이의 이사를 돕는다. 하늘로의 마지막 이사다. 김 대표가 컴컴한 집에 들어갔다. 현관에선, 이미 집을 떠난 고인을 향해 인사를 꾸벅했다. 흑백처럼 정지된 집의 냄새가 특수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한참 전에 죽은 집이었다. 그때였다. 죽은 집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하얗고 작은 개였다. 보호자가 떠나고 홀로 남겨져 10일이나 있었던 개. 유가족도 돌봐줄 수 없다고 해, 갈 곳을 잃은 개. 차마 유기견 보호소에 보낼 수 없어 김 대표는 개를 집에 데려갔다. 이름은
80대 할머니의 오랜 생(生)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유독한 연기를 마시고 거실에 쓰러진 뒤였다. 화재는 지난해 8월 9일 저녁 8시쯤, 강원도 태백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할머니와 같은 3층 한 집에서 불이 번졌다. 냉장고 합선이었다. 불길은 벽을 타고 올라갔고, 연기는 자욱했고, 피할 사람은 바깥으로 피했다. 연로한 할머니는 집 밖을 미처 나가지 못했다. 아마도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였다. 집 문이 열렸다. 20대 청년이 집안에 들어왔다. 그가 핸드폰 불빛을 켰으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핸드폰을 던져버린 채, 집안을 샅샅이 기어다녔다. 아직 살아 있을 사람을 더듬고 더듬어 찾았다. 마침내 손 끝에 할머니의 머리가 만져졌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청년은 할머니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부르는 소리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불은 20여 분만에 꺼졌다. 해피엔딩.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한 프로젝트가 어떤 거냐는 물음에, 동내화 선생님(36)의 설명이 시작됐다. "음, 예를 들어 기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요. 진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그걸 통해 저희한테 세상을 보여주시잖아요. 그러면서 세상과 삶의 변화를 만들어주시는 일이지요. 그리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계셔서 감사드리고요." 그걸 가만히 듣고 있자니 뜻밖에 눈 밑에 뜨듯한 것이 차올랐다. 매일 하는 일, 그러려니 당연하게 하던 일을 새삼 조곤조곤 설명하며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 필요 없지 않다고 믿게 해주고 또 하루를 살아보고 싶게끔 만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나를 위한 예시 한 번에 단박에 이해되었다. 동 선생님이 초등학교 아이들과 한 게 무엇이었는지. 때는 3년 전인 2020년이었다. 김해 경운초등학교 5학년 3반 아이들 27명에게, 선생님이 제안했다. "얘들아, 우리 고마운 걸 한 번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저마다 감사한 걸 하나씩 말했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소소
지난해 9월 17일 밤이었다. 울산북부경찰서 농소1파출소에 112 출동 신고가 들어왔다. '코드 0(제로)', 최단 시간 내에 출동해야 하는 긴급 신고였다. 촌음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12층 아파트 난간에 50대 여성이 매달려 있다고 했다. 술에 취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려 했단다. 고경호 순경(35)은 동료 경찰과 황급히 출동했다. 도착해서 보니, 투신 시도한 여성의 몸이 거의 다 창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를 남편과 아들이 겨우 붙잡고 있었다. 손을 놓으면 바로 떨어지는 거였다. 출동한 경찰과 가족이 힘을 합쳐 끌어올려야 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 과정에서 추락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고 순경은 여성의 손목에 수갑을 꽉 채웠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자신의 손목에 채웠다. 이로써 구조자와 순경이 한 몸처럼 연결되었다. 작은 실수로라도 떨어지게 하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반드시 살리겠다고, 그 신념 하나로 나온 의로운 행동이었다. 그 덕분에 여성은 무사히 끌어 올려졌고 구조되어
1월 11일 오후 3시 46분쯤, 초유의 붕괴 사고가 벌어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에서였다. 아파트 한 동의 23층부터 38층까지 거의 다 와르르 무너졌다. 그곳에서 일하던 인부 6명이 엄청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 한 명은 사고 이틀 만에 1층 난간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명을 찾지 못했다. 인부 가족들은 사고 현장 아래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오겠다며 출근했고, 살아가기 위해 쌓아 올렸고, 그게 무너지며 그 안에 깔렸고, 생사도 모른 채 퇴근하지 못한 소중한 이들을. 추가로 또 붕괴될 수 있는 초고층 지역, 거기서 매몰자를 찾아야 했다. 다들 꺼릴만한, 전례 없는 위험한 현장이었다. 광주 광산소방서에서도 소방관들이 동원됐다. "누가 갈래?"란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한 이가 있었다. 과거 붕괴 사고 현장서 특수구조대를 했었던, 이형재 소방교(39)였다. 광주 학동에서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던 빌딩이 무너져 시내버스가 매몰됐을 때, 거기서도 시민들을
9월 20일은 반려견 '똘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축하도 받고, 맛난 간식도 먹으며 보내야 할 하루. 하지만 똘이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잃어버린 건 지난 2월 23일이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함박산에서였다. 갑자기 고라니가 울며 튀어나왔고, 소심한 똘이는 놀라서 달아났다. 똘이 가족들의 시간은 그날로 멈춰버렸다. 똘이가 없는 똘이의 열 번째 생일날, 오전 7시 23분. 단톡방에 누군가 글을 올렸다. 생일을 축하하는 이모티콘과 함께였다. "똘이 생일, 마니마니 축하해. 똘이야, 오늘이 생일인 만큼 기적처럼 나타나주면 안 되겠니? 그럼 더없이 좋을텐데…." 그 톡엔 22명이 하트와 엄지척을 눌렀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똘이 생일을 축하했다. 똘이가 지금 많이 춥고 배고프지 않은 곳이면 좋겠다고, 가장 큰 선물은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일 거라고, 다 같이 애타는 맘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루 5시간씩 찾아…전단지 붙인 것만 2만 장━똘이를 간
메일 한 통이 왔다. 서울 종로구를 깨끗이 청소해주는 30대 환경미화원 박정훈씨(가명)였다. 그는 따뜻한 응원을 받은 기억이 좋아서, 내게 꼭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박씨가 들려준 이야긴 이랬다. 지난달 25일이었다. 그날도 박씨는 선배 미화원 두 분과 함께 종로구 창신동에서 쓰레기 수거를 했다. 경사가 있는 언덕과 계단이 많아 일하기 조금 힘든 지역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수거할 때 쓰레기봉투를 던지고, 하역하는 등 힘쓰는 일이 많아 더 그랬다. 이날 밤 11시 35분. 고된 작업을 한 차례 마친 박씨는 연로한 선배들과 불 꺼진 가게 앞에 걸터앉아 쉬었다. 그리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건너편에서 닭강정을 파는 가게 사장님이 다가왔다. 그의 손엔 종이 그릇이, 그 안엔 따뜻한 닭강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장님은 미화원 세 분에게 그걸 건네며 "고생 많으십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했다. 야참으로 먹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종로구서 환경미화원을 한 지 얼마 안 된 박씨는 뭉클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