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미화원 녹초돼 쉬는데…'닭강정' 건넨 사장님[인류애 충전소]

늦은밤 미화원 녹초돼 쉬는데…'닭강정' 건넨 사장님[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2.09.09 08:30

자정 가까운 밤, 거리 걸터앉아 쉬던 환경미화원들에 "고생 많으십니다"라며 넉넉한 닭강정 주며 응원…이름도 안 밝힌 닭강정 가게 사장님 "그게 뭐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전 좋은 사람 축에도 못 껴요"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8월 25일 밤 11시 35분. 서울 종로구 창신동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박정훈씨(가명)가 "고생 많으십니다, 맛있게 드세요"란 응원과 함께 건네 받은 닭강정. 그는 그 덕분에 고된 야간 작업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사진=박정훈씨 제공
8월 25일 밤 11시 35분. 서울 종로구 창신동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박정훈씨(가명)가 "고생 많으십니다, 맛있게 드세요"란 응원과 함께 건네 받은 닭강정. 그는 그 덕분에 고된 야간 작업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사진=박정훈씨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메일 한 통이 왔다. 서울 종로구를 깨끗이 청소해주는 30대 환경미화원 박정훈씨(가명)였다. 그는 따뜻한 응원을 받은 기억이 좋아서, 내게 꼭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박씨가 들려준 이야긴 이랬다.

지난달 25일이었다. 그날도 박씨는 선배 미화원 두 분과 함께 종로구 창신동에서 쓰레기 수거를 했다. 경사가 있는 언덕과 계단이 많아 일하기 조금 힘든 지역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수거할 때 쓰레기봉투를 던지고, 하역하는 등 힘쓰는 일이 많아 더 그랬다.

이날 밤 11시 35분. 고된 작업을 한 차례 마친 박씨는 연로한 선배들과 불 꺼진 가게 앞에 걸터앉아 쉬었다.

그리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건너편에서 닭강정을 파는 가게 사장님이 다가왔다. 그의 손엔 종이 그릇이, 그 안엔 따뜻한 닭강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장님은 미화원 세 분에게 그걸 건네며 "고생 많으십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했다. 야참으로 먹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종로구서 환경미화원을 한 지 얼마 안 된 박씨는 뭉클했단다. 그는 "늦은 밤, 이렇게 간식과 함께 응원해주신 덕분에 야간 작업을 더욱 힘내어서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바다는 염분 3.5% 덕분에 썩지 않는다고, 자신도 닭강정 가게 사장님처럼 3.5%의 염분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종로구 창신동의, 닭강정 가게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닭강정 가게서 만난 사장님 김정우씨(49, 가명)./사진=남형도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닭강정 가게서 만난 사장님 김정우씨(49, 가명)./사진=남형도 기자

그 닭강정 가게 사장님의 선행을 알리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그 지역서 일한 지 얼마 안 돼 그와는 아무런 친분이 없으나, 자칫 가게 홍보로 비칠까 걱정된다며 가게 이름은 아예 빼달라고 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상호는 넣지 않는다.

환경미화원들에게 소소한 정(情)을 나눠준, 닭강정 가게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전화로 먼저 연락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하는걸 "닭강정 먹으러 가려고 한다"고 설득해 겨우 만났다. 그는 이름도 가명으로, 얼굴도 가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좁다란 닭강정 가게에 가서 사장님을 만났다. 모자를 털털하게 눌러 쓴 김정우 사장님(가명, 49)은 예상보다 더 인자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 우기며 말을 최대한 아끼는 이에게, 별 게 맞다며 이야기를 어떻게든 들어보려는 기자의 노력이 이어졌다.

가게에 놓여 있던 맛있어 보이던 닭강정들./사진=남형도 기자
가게에 놓여 있던 맛있어 보이던 닭강정들./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환경미화원님께서 제보를 주셨어요. 사장님 좀 취재해달라고요. 30대 초반 정도이시고….

정우 : 아, 그분이 제보 주신 거예요? 남자분이 잘생기셨더라고요. 그런데 닭강정을 드렸는데 안 드시더라고요.

형도 : 아, 닭강정은 연로하신 선배님들 먼저 드시라고 드렸대요. 그분이 막내신데, 대부분 40~60대, 많게는 70대인 분도 있다고요. 가게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

정우 : 원래는 다른 일을 하다가, 닭강정 가게를 한 지는 1년 정도 됐지요.

빵만 드시고 있기에, 같이 드시라고 드렸지요
사장님이 만들고 있던 닭강정 세트. 모처럼 비싼 제품이 나갔다며 좋아하시던./사진=남형도 기자
사장님이 만들고 있던 닭강정 세트. 모처럼 비싼 제품이 나갔다며 좋아하시던./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닭강정을 주셨다고요.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정우 : 아, 원래 그전에도 몇 번 드렸었어요. 그냥 드시라고요. 아마 제보하신 미화원님이 오신지 얼마 안 되셔서 처음이었나 봐요.

형도 : 미화원님들께서 어디 앉아서 쉬고 계셨던 거예요?

정우 : 저기, 건너편 안경점 앞에요.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데 저희 가게는 12시(자정)까지 하거든요. 그런데 안경점 앞에 걸터앉아서 빵을 드시고 계시더라고요.

형도 : 그래서 닭강정도 드린 거예요?

정우 : 빵만 드시니까 그렇잖아요. 이 동네 쓰레기도 엄청 많고 힘들거든요. 닭강정도 같이 드시라고 드렸지요. 일하고 계시면 방해될까 봐 안 드렸을 텐데, 앉아서 쉬고 계셨으니까요.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제보하실 줄은 몰랐어요.

형도 : 닭강정 양도 넉넉히 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우 : 아뇨! 안 많아요. 비싼 것도 아니고 금액적으로도 작아요.

형도 : 사실 팔면 다 돈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장사가 잘되시는 것도 아니고요(사장님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드린 건지 궁금해요.

정우 : 아, 그냥…하하. 그게 뭐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아무 이유 없어요. 이유가 뭐가 있어요(네에…).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신경 쓰지요
닭강정 배달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닭강정 배달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아무것도 아니란 말만 반복하는 역대급 난이도의 인터뷰였다. 오죽하면, 그는 정말 할 말이 없다며 본사(그는 닭강정 프랜차이즈 지점 점주다) 의견이라며 내게 보여줬다. 내용이 이랬다.

"사장님께서 하신 선행에 본사에서 살짝 숟가락을 얹는 건 실례일 듯하네요. 홍보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장님의 훌륭한 행동에 흠집이 날 수 있겠지요. 앞으로 환경미화원 도와드릴 일 있으시면 본사에서도 물량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형도 : 아, 그런데 인류애 충전소 취재 다니다 보면요. 다 사장님과 같은 얘길 하세요. "당연한 거다. 아무것도 아니다."

정우 :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 생각해보세요. 여기 있다 보면요. 청소가 힘들단 건 누가 봐도 다 알지요. 여긴 골목도 좁고 차도 많고 부딪히고요. 쓰레기도 엄청 많아요. 저만한(원단 쓰레기) 게 다 밖에 나와 있어요. 미화원님들께서 오히려 고생하시는 거지요.

닭강정 가게에 있던 깨끗한 기름./사진=남형도 기자
닭강정 가게에 있던 깨끗한 기름./사진=남형도 기자

궁금했다. 선행조차 아주 당연하게 여겨서 말도 안 하는 그 마음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인지. 과거를 물었으나 사람에 대한 좋은 경험만 한 것도 아녔다. 오히려 배신당한 일도 많았단다. 그럼에도 왜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걸까.

형도 : 그럼 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다들 아득바득, 자기 것만 더 챙기려고 살잖아요.

정우 : 튀김집은 기름이 중요하잖아요. 기름 한 통에 7만 원으로 올랐어요. 저기 기름 보시면 깨끗하지요(정말 깨끗했다). 몇 개만 튀겨도 색깔이 나와요. 안 보이는 거지만, 원칙으로 삼고 기름을 더 많이 갈아요. 그럼 손님들도 알지요. 기억나는 게, "여기 닭강정 먹으려고 멀리서 호텔 잡고 왔어요", "아침에 시켰는데 저녁에 맛있어서 또 시켜요"라고 남기고요. 그냥 그런 교감이 좋아요. 장사는 거의 안 남아도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마음 편해요
닭강정 가게에 손님이 실제로 남긴 리뷰./사진=남형도 기자
닭강정 가게에 손님이 실제로 남긴 리뷰./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그렇지만 좋은 리뷰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우 : 그쵸. 한 마리 시키고 두 마리 양만큼 달라거나, 시키지도 않고 배탈났다며 협박하는 분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슬프지요.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지 않아요. 당연한 거지요.

형도 : 그런데 왜, 대체 그런 마음으로 사시는 거예요(거의 따지는 수준).

정우 : 선천적인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저한테 더 잘 맞거든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마음이 편해요. 그 기쁨이 더 크고요.

형도 : 사장님의 선한 마음에 영향을 준 분은 누구인가요.

정우 : 아, 선하진 않아요. 하하. 모르겠어요. 누군가 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면 제가 더 불편해요. 선하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거예요.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남도 저한테 피해 안 줬으면 좋겠고. 세상에 좋은 사람 정말 많아요. 저는 좋은 사람 축에도 못 껴요.

형도 : 알겠어요, 사장님(포기). 끝으로 환경미화원님께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해주세요.

정우 : 제보해주셔서 이런 것도 처음 해봤네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예전에 좋은 일 많이 했을 땐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형도 : 앗, 예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고요? 어떤 거요? (집요한 편)

정우 : 하하. 사람들 좋은 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물어보시면 안 되고…(방어 잘하는 편).

따뜻한 분이 만든 닭강정이라 그런지, 유독 더 맛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따뜻한 분이 만든 닭강정이라 그런지, 유독 더 맛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 인터뷰조차 쉽지 않았던 사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그의 가게서 닭강정을 사서 먹어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그의 가게 리뷰 별점은 5.0이었다. 손님들 반응도 칭찬 일색이었다.

끝으로 환경미화원이 닭강정 가게 사장님께 전하고 싶다던 이야기를 남긴다.

"안녕하세요, 닭강정 받은 젊은 환경미화원입니다. 덕분에 고된 새벽 작업 선배님들과 힘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소상공인인 사장님께서 어려운 경제에 요즘 많이 힘드실 텐데, 밝게 웃으며 선뜻 내어주신 그 따듯한 사랑이 담긴 마음. 그걸 잊지 않고 더 큰 사랑으로 나누고 실천하는 멋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라는 말로는 한참 부족할 정도로 많이 감사합니다."

환경미화원님이 닭강정 가게 사장님을 제보했던 이야기를, 사장님께 문자로 전해드렸다. 그걸 보고 우는 이모티콘을 남긴 닭강정 가게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환경미화원님이 닭강정 가게 사장님을 제보했던 이야기를, 사장님께 문자로 전해드렸다. 그걸 보고 우는 이모티콘을 남긴 닭강정 가게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