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육휴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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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월 딸아이가 갑자기 1년 전 신던 양말을 가져와서 낑낑대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 작아져 발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억지를 부렸다. 새로 산 블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에 몇 개 남아있던 옛날 장난감을 들고 돌아다녔다. 혹시 말로만 듣던 퇴행인가 싶어 걱정했다. 새 양말을 신기고 월령에 맞는 장난감을 보여주니 성을 내며 반항했다. 주변 부모들에게 물어보니 이맘때의 통과의례 중 하나라고 했다. 이제 아이가 서서히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자아 발달'이 '생떼'로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가 병'의 진화…선택과 취향━두어 달 전부터 '내가 병'의 조짐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전문가 조언 등을 참고해 위험하거나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대부분의 행동을 허용했다. 한겨울에도 가을 점퍼를 꺼내오면 그대로 입히고 현관문도 스스로 여는 '착각'을 느낄 때까지 돕지 않고 놔뒀다. 이 병의 증세가 심해지니 이제는 아이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아침에 목도리를 씌우려면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로 들고 온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교회 칸타타 중 가장 널리 사랑받은 작품 중 하나는 140번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일 것이다. 신랑(예수)이 오는 것을 보며 신부(영혼)가 느끼는 벅찬 희망과 기쁨이 아름다운 선율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곡은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도입부 가사인 "깨어나라(Wachet auf)"는 '정신 차려라' 또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이 노래를 모닝콜이나 알람 소리로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집에서는 굳이 모닝콜 때문에 바흐까지 찾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바흐의 칸타타보다 더 선명하고 장엄하게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가 집안에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부터 애타게 부르짖는 "아빠!"━한때는 아이의 수면 주기를 적당하게 맞춰놨다고 자만했다. 오후 8시 전후로 잠든 아이가 오전 8시 전후로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다. 착각이었다. 아이 컨디션에 따라 취침과 기상 시간은 매번 바뀌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이상적인 회사 환경을 보여주는 걸 '직장인 포르노'라고 일컫는다. 실제 직장 생활의 고통과 노력은 숨긴 채 사람들이 꿈꾸던 판타지만 극대화해 쾌락을 느끼게 만드는 탓이다. 본질을 가리고 자극적인 환상만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르노'라는 극단적 표현이 쓰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육아는 가히 '육아 포르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화보처럼 평화롭고 세련된 육아 풍경, 적재적소에서 등장하는 신상 육아템, 감동과 웃음만 흘러 넘치는 분위기는 실제 육아와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직장인 포르노'는 일반 회사원들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장점이 있다. 현실과 다르다는 걸 누구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아 포르노'는 그 폐해가 크다. 집집마다 고립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육아 특성 상 '현실 속 나의 육아'와 TV 속 육아를 비교하며 자괴감과 우울함에 쉽게 빠질 수 있어서다. ━24시간 예쁜 아이는 없다━방송의 핵심은 '편집'이다. 연예인들도 자기 자식 키우면서 분명히 힘든 순간들도 있고 짜증도 날 것이다.
며칠 전부터 딸이 하루에 수차례씩 심한 설사를 하며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변비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지만 보는 부모 마음은 편치 않다. 기저귀와 바지를 뚫고 샌 흔적이 집안 곳곳에 남아 일일이 치우는 것도 쉽지 않다. 몸이 안 좋다 보니 아이는 점점 아빠한테 들러붙는다. 앉거나 누울 때마다 옆에 바짝 붙는다. 밥 먹을 때도 바로 옆에 아빠가 앉지 않으면 성을 낸다. 이동할 때도 자신을 안고 다니라고 성화다. 이제 13kg에 육박하는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다니다 보니 가뜩이나 허약한 허리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받은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요추와 경추 관리에 유의하라던 문구가 떠올랐다. ━가뜩이나 달라붙는 재접근기, 아프니까 더 '찰싹'━아기가 아프면 부모한테 더 매달리는 건 당연하다. 평소보다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존재인 부모를 찾는 것일 게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시작된 재접근기는 딸의 '껌딱지 모드'를 더 강하게 만든다. 아이는 사랑스럽다. 다만 아이가 엉길 때마다 "좀 더 일찍 낳을걸"이라는 후회가 조금씩 밀려온다.
52주로 예정된 육아휴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뭔가 제대로 한 것도 없이 1년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나마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휴직 이후 매주 써온 육아휴직기 부제목의 '주차', 휴대폰의 내장 AI(인공지능)가 보여주는 1년 전과 최근 아기 사진의 차이 정도다. 주변의 휴직 경험자들은 복직 직전에 회사를 찾아가 면담하는 게 필요하다고 알려줬다. '월요병'을 완화하기 위해 일요일에 출근하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휴직기간에 회사에 찾아가라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그래도 일단 경험자들의 말을 듣고 비교적 신문사가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에 회사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내 책상 돌려줘" 고성도 오간다는 '복직 전 면담'━면담을 가기 전 워낙 흉흉한 다른 회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보통은 '한직 발령'을 통보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 제조업 중견기업의 사무직 친구는 육아휴직이 끝난 뒤 집에서 3시간 거리의 현장으로 발령 낸다고 '통보'를 받았다. 육아휴직 복직자를 성과 내기 어려운 자리로 돌리는 탓에 상사와 싸웠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어린이집 방학이 기습처럼 찾아왔다. 동계 정비 기간이라며 가급적 가정 보육을 해달라고 해 크리스마스 이후 새해의 첫째 주까지 열흘가량을 온종일 아이와 보내게 됐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에는 이 기간을 고려해 연차를 연말까지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할 콘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얼어붙는 강추위 속에 야외 활동은 제한됐다. 그동안 '주말 찬스'로 쓰던 가족·친구 집 방문도 주중에는 어려웠다. 온라인을 뒤져봐도 생각보다 방문할 곳이 별로 없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점만 확인할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15만원 써도 만족도는 '그닥'━우선 제일 접근성이 좋은 '키즈 카페'를 가기로 했다. 연말에 일을 쉬는 친구네 부부와 그집 아기도 동행해 어른 4인과 돌쟁이 2인이 갔다. 아이 이용료는 2만원이었는데 이용시간이 2시간으로 제한됐다. 어른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었지만 1인당 식사 메뉴를 하나씩 시키는 게 필수였다. 식사는 2만5000~3만원가량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산타 이벤트를 열었다. 알림장 공지사항에 맞춰 빨간 옷을 예쁘게 입혀 등원시켰다. 이날 저녁 알림장에 올라온 사진 속 딸아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산타 분장을 한 차량 선생님을 알아채지 못한 채 오열하고 있었다. 0~1세 반 아이들은 모두 산타를 보고 눈물바다가 됐다는 선생님 말씀에 그저 웃었다. 집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여러 장식을 꾸몄다. 트리에 LED 조명도 달고 초소형 트리도 여러 개 사서 전원을 연결했다. 17개월 아이는 부모의 의도대로 즐기지 않았다. 초소형 트리는 어느새 촉감 장난감이 돼 이틀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큰 트리의 전구 장식은 아이 입속에 들어가 쪽쪽이 대용품이 됐다. 그제야 알았다. 딸은 아직 부모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잔치의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인스타용 크리스마스, 아이는 즐겁지 않다━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사진을 미리 찍은 부모들의 사연이 간간이 올라왔다. 온갖 쇼핑몰에서도 크리스마스용 아이 코스프레 아이템을 판매한다고 푸시 알림이 왔다.
한동안 혼자서도 곰실곰실 잘 놀던 딸이 별안간 껌딱지 모드로 돌입했다. 아빠 엄마가 매일 집에 있는데도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안긴다. 다른 부모들의 경험담을 보니 재접근기(Rapprochement)라고 한다. 다른 집과 다른 점은 엄마보다 주로 아빠한테 안겨서 떨어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는 딸과 끌어안고 그저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가만히 아빠 품에 안겨서 자던 딸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조용히 미소 짓는 풍경을 꿈꿨다. 그런데 정작 껌딱지가 된 딸과의 시간이 그렇게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때리다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유아 독재'━품에 안긴 딸은 언제나 제멋대로 군다. 우선 안으라고 요구할 때부터 재촉이 들어온다. 안고 나면 마치 택시를 탄 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지시한다. 주로 자신이 관심을 둔 '선반 위'나 '서랍 속'이 대상이 된다. 방마다 이동하다 지쳐 잠시 내려놓으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양다리로 아빠 몸통을 감싸고 힘을 준다.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말문이 트인 아기들만 걸리는 병인 줄 알았다. 아직 "아빠" "엄마" "이거" 세 단어밖에 모르는 우리 딸이 걸릴 줄은 몰랐다. 언젠가부터 식사 시간마다 생떼를 부리며 밥그릇을 수차례 엎고 숟가락은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침에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는 목욕시키랴 옷 입히랴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가을 점퍼를 들고 다니며 우는 시늉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안전펜스를 스스로 열겠다며 만지작거렸다. 아빠가 대신 열어주면 아이는 드러누워서 울부짖었다. 맥이 빠져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혼자서 숟가락을 들고 밥그릇을 휘적댔다. 아직 혼자 입지도 못하는 점퍼를 들고 혼자서 팔을 넣느라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집에도 드디어 '내가 병'이 찾아왔다는걸. ━뭐든지 "내가! 내가!" 부모의 뒷수습 감당━'내가 병'이 궁금해 검색해봤다. 모든 자료가 일관되게 설명해주는 건 이게 18개월 전후로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아중심성(Egocentrism)을 갖는 단계로 이기심(Egoism)과는 다른 발달상의 특징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엔 소셜미디어나 단체 카톡방에 자기 아이 사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하기 힘들었다. 간혹 하루에 수십장씩 과하게 자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의 카톡 프로필은 무조건 아이 사진으로 도배되는 것도 목격했다. 이제는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렇다. 어느새 내 카톡 프로필과 배경화면도 아이의 일상 사진들로 도배되고 있다. 다만 단톡방에는 과거의 나처럼 아이 사진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업로드를 최대한 자제한다. 카톡 프로필과 달리 소셜미디어에는 아이 사진을 웬만하면 올리지 않는다. 특히 40회를 넘어간 육아휴직기에도 아이 사진은 '모자이크'를 철저하게 해 올리고 있다. 귀여운 아이 얼굴을 굳이 가리거나 숨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유아에게도 엄연히 존재하는 초상권━자기결정권이 없는 자녀의 사진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는 행위를 흔히 셰어런팅(share + parenting)이라고 한다.
얼마 전 예쁘게 자라는 딸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친한 동생에게 휴대폰을 건네줬다. 사진첩을 넘기며 아이 사진을 구경하던 그 친구는 갑자기 아연실색했다. 어느 순간 아이 사진은 없고 기저귀에 가득 담긴 대변을 클로즈업해 찍은 사진만 연이어 나오기 시작한 것.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 친구는 "아이가 귀여우면 대변마저 이렇게 저장해두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이라도 대변에서는 성인과 유사한 냄새가 난다. 특히 이유식을 졸업하고 성인과 비슷한 음식을 먹는 월령의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유독 대변 사진이 한가득 사진첩에 담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땀 흘리며 우는 아이…찢어지는 건 부모 마음만이 아니다━이달 초부터 아이가 용변을 볼 때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찬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용을 쓰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며 일을 치렀다. 변비였다. 예전과 달리 돌덩이 같은 대변을 누면서 항문에 살짝 찢어지는 상처까지 났다. 연고를 발라주는 부모 마음도 같이 찢어졌다.
아이가 어릴 때 매일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을 집안의 모든 물건을 소독 티슈를 박박 닦는 것이었다. 아이는 입에 닿는 건 무엇이든 씹으려 했다. 친구네 아들은 흙이나 비누까지 씹었다는 말을 듣고 그나마 우리집은 다행이라 여겼다. 오죽하면 '구강기'라는 용어까지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은 뭐든지 입에 갖다 대는 것만이 아니다. 비싼 장난감 대신 어른들 생활용품을 더 좋아하고 그 밖에도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조금씩 자아가 생기면서 맥락 없는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줄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똥고집'이 생기고 있다. 처음엔 '마음 읽기' 같은 걸 시도해봤지만 이젠 다 부질없다고 느끼게 됐다. ━아이 키우며 체득한 삶의 지혜 '그러려니'━아이를 키우며 '훈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건 아이의 자각이 생긴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밥을 먹을 때 난장을 피우거나 책을 찢고 장롱에 들어가 노는 걸 막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