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에너지리포트]전력 패러다임 바꾸는 분산에너지
⑦[인터뷰]영국 연구기관 '에너지시스템 캐터펄트'의 앤드류 피스 자문

# 영국 기업 에퀴와트(Equiwatt)는 가정이 특정 시간대에 전력 사용을 줄이면 앱에서 포인트와 보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전기를 덜 쓰면 포인트가 쌓이고 순위가 올라가는 일종의 '게임'이다. 목적은 전력 수요 조절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게임처럼 참여하지만, 그 결과는 전력망 안정화로 이어진다.
# 영국 에너지기업 옥토퍼스에너지(Octopus Energy)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충전 시간을 제어하는 V2G(vehicle-to-grid) 요금제를 출시했다. 전기차를 리스하면 충전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지만 전력망 상황에 맞게 충전 시간을 조정한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면서 동시에 전기차를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국 정부 지원 연구기관 에너지시스템 캐터펄트(Energy Systems Catapult)의 앤드류 피스 자문이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전력망 혁신은 결국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로 전달될 때 확산된다"는 점이다. 그는 "소비자들은 전력망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며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그 서비스가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주느냐"라고 말했다.
피스 자문의 메시지는 더 거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영국은 2012년 40%에 달했던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2024년 '제로'로 줄였고 같은 기간 풍력발전을 급격히 늘렸다.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95%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급선무는 달라진 발전원 구조에 맞춰 전력망을 확충하고 운영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영국의 고민은 풍력발전소가 대부분 바람이 센 북부 스코틀랜드에 있고 전력 수요는 런던 등 대도시가 있는 남쪽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전력 생산지와 수요지가 떨어져 있는 구조는 한국과도 닮아 있다. 피스 자문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굵직한 기반시설이다. 그는 "(북→남 간) 고전압직류(HVDC) 송전망을 확충하면 현재 발생하는 풍력 출력제어(전력이 남아 풍력발전기를 멈추거나 발전량을 줄이는 것)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송전망 병목을 완화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에퀴와트와 옥토퍼스에너지 등이 상용화한 수요반응(DR), V2G 같은 수요 측 유연성 자원이라 짚었다. 그는 "가정용 배터리나 전기차처럼 전력 계량기 뒤(behind-the-meter, 가정 내부에서 운영되는 에너지 자원)자원은 전력망 운영자가 언제 충전되거나 방전될지 알기 어렵다"며 "이런 자원을 플랫폼을 통해 연결하면 전력망을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 자원이 모이면 네트워크 운영자에게도 중요한 정보가 되고 특정 지역에서 어느 정도 전력 수요를 조정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확대 초기 단계에 있는 국가에서는 시장 구조와 계통 운영 체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기술에 투자하려면 시장 규칙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며 "가격 상한과 최소 수익을 보장하는 가격 상한·하한 제도(cap-and-floor) 같은 제도는 소비자를 보호하면서도 투자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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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연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제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건설 계획이 없는 프로젝트들이 대량으로 접속 신청을 할 경우 전력망 운영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기존 전력망 회사에서 분리돼 정부 산하 기관으로 개편된 국가 에너지 시스템 운영자(NESO)가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AI)도 전력망 운영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네트워크 운영자 협회는 AI 이미지 분석을 활용해 주택 전력 연결 공사의 안전성을 검사한다. 과거에는 현장 점검으로 확인하던 것을 이제는 사진을 분석해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또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구름 이동을 분석하고 태양광 발전량 변화를 예측한다. AI 기반 변압기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에너지 흐름을 최적화한다.
피스 자문은 "AI는 전력 시스템 전반에서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면서도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서로 공유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 공유 체계 구축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그는 "영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정부와 기업, 기관 사이에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체계가 전력 시스템 혁신의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