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100만원, 안 받을게요"…사라진 '잉어', 후회도 지워준 의사

"병원비 100만원, 안 받을게요"…사라진 '잉어', 후회도 지워준 의사

김미루 기자
2025.09.07 08:23

[우리동네 히어로]피부과 전문의 송병한 원장

[편집자주] 평범한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선행을 실천하며 더 나은 우리동네를 위해 뜁니다.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우리동네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한 피부과에서 만난 전문의 송병한씨(43). 경찰청이 진행하는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최근 가장 많이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와 감사장을 받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한 피부과에서 만난 전문의 송병한씨(43). 경찰청이 진행하는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최근 가장 많이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와 감사장을 받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레이저가 살갗에 닿자 '타닥타닥' 기계음과 함께 피부 위 문신이 서서히 옅어졌다. 10대 청소년은 "으악!" 소리를 내면서도 시술을 버텨냈다. 충동적으로 새겨 넣은 팔의 문신이 조금씩 사라졌다.

명함 크기 문신을 지우려면 1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문신을 지우고 싶은 청소년들이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다. 피부과 전문의 송병한씨(43)가 운영 중인 병원에서는 청소년 문신을 무료로 지워준다. 필요한 건 조금 아픈 시술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10번 넘게 꾸준히 병원을 찾는 의지다.

송씨는 경찰청-대한피부과학회가 공동 진행하는 청소년 대상 무료 문신 제거 사업 '사랑의 지우개'에 올해로 4년째 참여하고 있다. 송씨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청소년은 20명 정도다.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송씨 병원이 문신 제거 봉사에 가장 많이 참여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14일 송씨 병원을 찾아 '당신의 열정과 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감사패를 전달했다.

송씨는 매년 200건이 넘는 문신 제거 시술을 하는 베테랑이다. 2019년부터 송씨 병원을 거쳐간 문신 제거 환자만 1000명에 달한다. 그가 없앤 문신도 용·잉어·도깨비·꽃 등으로 가지각색이다.

덕분에 문신가 수준의 전문 지식도 갖췄다. '이레즈미(일본의 전통적인 문신)', '레터링(몸에 글자를 새기는 문신)'처럼 전문 용어도 절로 터득했다. 송씨는 "웬만한 시술은 제가 직접 다 받아보고 하려고 해서 문신도 직접 새기려고 했는데 가족 반대로 그건 실패했다"고 했다.

송씨 병원에서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참여한 한 여성 청소년이 새긴 장미 모양의 문신을 레이저로 지우는 모습. /영상제공=송병한씨.
송씨 병원에서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참여한 한 여성 청소년이 새긴 장미 모양의 문신을 레이저로 지우는 모습. /영상제공=송병한씨.
의미 찾아 시작한 청소년 문신 지우기 봉사
송씨가 진료실에서 문신 제거 시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2019년부터 송씨 병원을 거쳐간 문신 제거 환자만 1000명쯤이다. /사진=김미루 기자.
송씨가 진료실에서 문신 제거 시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2019년부터 송씨 병원을 거쳐간 문신 제거 환자만 1000명쯤이다. /사진=김미루 기자.

송씨는 일에 치여 살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료 문신 제거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 청소년 1~2명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20명으로 늘었다.

병원을 찾는 청소년은 대체로 고등학생인데 시술을 연습하는 '아는 형', '아는 오빠'가 공짜로 해주겠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새겼다가 지우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병원에 동행한 부모들이 직원들에게 "제발 좀 지워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일도 적지 않다.

문신 제거는 수십차례 반복 치료가 필요하고 비용 부담도 크다. 제거 시술이 문신 시술보다 10배 아프다고 하는 만큼 의료진·환자 모두가 긴장의 연속이다. 매년 100~200명의 청소년이 사업에 신청하지만 모두 받을 수 없는 이유다.

2년 만에 옅어진 '잉어 문신'… 청소년 20명과 인연
 송씨가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참여한 첫 해인 2022년 12월에 만난 고등학생. 고통을 느끼는 모습에 안타까웠지만 2년간 시술 끝에 밝아진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영상제공=송병한씨.
송씨가 '사랑의 지우개' 사업에 참여한 첫 해인 2022년 12월에 만난 고등학생. 고통을 느끼는 모습에 안타까웠지만 2년간 시술 끝에 밝아진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영상제공=송병한씨.

송씨는 청소년들이 문신 때문에 학교 생활이 힘들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할 때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2022년 12월에 만난 고등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인이 무료로 해준다는 말에 팔과 등에 잉어 문신을 새긴 건장한 남학생이었다. 시술을 많이 아파하던 터라 병원 직원들까지 총출동했다. 얼음을 문질러 주며 "거의 끝났다"고 수시로 달랬다. 몸은 컸지만 어린 청소년이었다. 2년간 시술 끝에 흔적이 옅어지니 표정이 밝아지는 게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청소년에게 문신 제거는 단순히 외모 문제를 넘어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정 직종을 꿈꾸는 경우 문신 제거는 꿈을 이어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송씨는 "문신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라면서도 "군, 경찰, 소방 공무원처럼 격식을 갖춰야 하는 직종을 준비할 때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돼 문신을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 지워줘서 직업 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사랑의 지우개' 사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때 충동적인 호기심으로 문신을 새겼다가 시간이 지나 후회하는 청소년에게 무료로 문신 제거 기회를 제공해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게 돕는 것이 핵심이다.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경찰서 여성청소년과나 학교전담경찰관(SPO)을 통해 연 2회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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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루 기자

안녕하세요. 금융부 김미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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