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재발견, 삶을 바꾸는 연대
양극화와 지방소멸 등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을 아우르는 '사회연대경제'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사회연대경제가 가치창출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양극화와 지방소멸 등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사회적기업·마을기업 등을 아우르는 '사회연대경제'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사회연대경제가 가치창출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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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테이 주민들은 집이 아니라 단지에 들어서는 순간 안심된다고 말합니다. "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별내'. 위스테이별내 사업 기획을 맡은 사회적기업 '더함'의 김종빈 부대표(행정안전부 사회연대경제 민간자문단 자문위원)는 지난 11일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491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신축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관리사무소장을 '(동네)지기', 미화원을 '벼리(일이나 글의 뼈대를 뜻하는 순우리말)'라 부른다.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이웃이 있고, 주민들이 다양한 모임과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며, 공동육아와 돌봄이 일상처럼 이뤄진다. 위스테이별내는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입주민들은 단순 임차인이 아니라 사회적협동조합 구성원으로 공동체 운영에 참여한다. 김 부대표는 위스테이의 출발점으로 '관계의 회복'을 꼽았다. 그는 "한국 사회는 1인 가구 증가와 가족 규모 축소로 돌봄과 관계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며 "주택 공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공동체를 통해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정착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인천 강화도에서 체류형 프로그램 '잠시섬'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유명상 이사는 지난달 21일 자신이 강화도에 머물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잠시 머물 곳을 찾던 중 처음 들른 곳이 강화였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10년 넘게 지역에 살게 됐다는 것이다. 청풍은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잠시섬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7년 시작된 잠시섬은 강화도에서 1박에서 최대 5박까지 머물며 지역을 경험하는 체류 프로그램이다. 관광지, 맛집만 돌고 떠나는 여행과는 다르다. 동네 사람과 가게, 골목과 풍경을 천천히 경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 이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지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강화도를 잠깐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이 지역에 애정을 갖고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숙박이 아닌 환대. 잠시섬이 사람을 연결하는 법━잠시섬의 무대로 강화도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세종시 조치원읍은 고려대·홍익대 세종캠퍼스가 있는 대학도시다. 하지만 청년 대부분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곳을 떠난다. 매년 3000명 넘는 학생이 유입되지만, 지역 정착률은 5. 9%에 불과하다. 전국 최하위권이다. 청년이 없는 게 아니라, 머물 이유가 부족했다. '조치원 토박이'이자 '청년희망팩토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청년희망팩토리) 인병구 이사장은 지난 7일 "조치원은 천안·대전·청주 등 인접 도시 접근성이 좋은 만큼 청년 유출이 더 쉬운 구조"라면서 "실제로 동창들 가운데 70~80% 정도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떠난 상태"라고 말했다. 청년희망팩토리는 이 익숙한 흐름을 뒤집는 실험에서 출발했다. 체류형 관광이나 골목 상권 활성화, 유휴공간 재생에 집중한 기존 청년마을 사업과 달리 청년희망팩토리가 파고든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왜 청년은 지역에 남는 것을 실패처럼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졸업한 강기훈 청년희망팩토리 대외협력 이사는 이를 '지방열등감'이라고 표현했다. 2~3대 이사장을 역임한 강 이사는 "지방 사람들은 '산다'보다 '남아 있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며 "그 말 안에는 결국 지역은 떠나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했다.
부산 동구 산복도로 끝자락에 위치한 이바구마을. 한때 사람이 떠나고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달동네였지만, 지금은 청년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붉은 모노레일이 가파른 골목을 가로지르고 층층이 들어선 알록달록한 집들 사이로 카페와 공방, 작은 상점들이 이어지며 활기가 돌고 있다. 이 변화의 출발점에는 '연결'이 있다. 공공 디자인 기업 '공공플랜'의 이유한 대표에게 이곳은 낯선 동네가 아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 집이 있던 자리다. 지난달 24일 만난 이 대표는 "지금 이바구마을 건물 중 하나가 원래 할아버지 집이었다"며 "세월이 지나 다시 와보니 주민들이 운영하는 거점시설로 바뀌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들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벽화마을 조성 작업을 계기로 다시 이바구길과 연결됐다. 관광지로 바뀐 골목은 활기를 되찾은 듯 보였지만, 실제로 머물러 사는 청년은 많지 않았다.
충남 공주시 제민천 골목을 따라 걷자 낡은 한옥 사이로 작은 카페와 공방, 책방이 이어졌다. 평일 낮인데도 골목 곳곳에는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쉬거나 가게를 오갔다. 천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 사람들 사이로 커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젊은 층도 눈에 띄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빈집이 늘어서고 상권이 끊긴 원도심이었다. 지금은 가게를 열거나 살림집을 구하려면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건물을 새로 지어서가 아니다. 청년이 머물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빈집 골목에 불 켠 청년들━지난 13일 만난 권오상 퍼즐랩 대표는 골목을 가리키며 "처음 왔을 때는 20~30대는 거의 볼 수 없는 동네였다"고 말했다. 경기관광공사에서 15년간 근무하던 권 대표는 2018년 이곳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봉황재)를 열었다. 그는 "우연히 놀러왔다가 동네가 너무 괜찮다고 느껴졌다"며 "보통 부동산부터 가는데, 저는 계약금 걸고 바로 사표를 냈다"고 웃어넘겼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운영사인 퍼즐랩은 공주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을 연결한 '마을호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