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LO 아·태 총회에 대한 단상(斷想)

[기자수첩]ILO 아·태 총회에 대한 단상(斷想)

부산=여한구 기자
2006.08.29 12:44

29일부터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 총회가 열리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한 이번 총회는 아태지역 40개국 노동장관 등 600여명이 참석하는 상당한 규모의 국제행사다.

노동현안을 놓고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노동계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 입장에 서서 이 기간만큼은 시위를 자제키로 하는 등 사실상 '휴전'에 동의했다.

그런데 노동문제를 담당하는 기자 입장에서 솔직히 이번 총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원만한 국제행사 개최란 대의명분 아래 노사정이 잠시 숨을 죽이고 있지만 회의가 끝나자 마자 또 한번의 '격동'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은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총회가 끝나는 다음날인 9월2일 최종 논의할 예정이지만 '대타협'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상황이다.

경험칙상 다음부터는 우리가 익히 봐왔던 수순을 밟을게 분명하다. 정부는 독자적으로 입법예고 할 것이고, 경영계는 못이는 척 지켜보고, 노동계는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반발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포항지역 건설노조원 고 하중근씨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9월5일에 맞춰 놓았다.

어찌보면 그동안 13번이나 이어져왔음에도 단 한번도 태국 이외의 곳에서 개최된 적이 없는 아·태 지역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 자체가 우리 노동문화의 후진성을 역으로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난해 노정 갈등으로 연기된 것을 우리 정부가 ILO에 끈질기게 구애해서 다시 유치한 행사다.

한국적 현실에서 총회의 주제이기도 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양보를 전제로 한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임은 두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주서서 앞을 향해 질주하는 '치킨게임'만 되풀이하는 현재의 노사정 대화 방식으로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다.

총회에서 논의되는 아시아 지역 전체의 노동권익 확대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 집에서 '쪽박'이 깨지려는 마당에 '큰 담론'이 왠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은 혼자만의 옹졸한 생각일까. 벡스코로 가는 발걸음이 절로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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