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악마들의 양심고백'

[광화문]'악마들의 양심고백'

방형국 부장
2008.10.31 09:57

'양심고백'이 아니라 '악마의 실토'였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직원들 얘기다.

한국 등 신흥국에 군림하던 이들이 서브프라임사태로 세계적 은행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실토했으니 말이다. '악마의 숫자놀음'에 놀아난 것을 생각하면 '양심'이라는 말은 허사일 뿐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FRB 전 의장은 "신용시장의 붕괴와 경기침체를 예상하지 못했으며, 금융기관들이 투자자들과 주주들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나의 실수"라고 고백했다.

미국이 그토록 신봉해온 '시장이 최고의 가치'라는 절대논리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그가 지난 18년 동안 세계경제의 대통령으로서 누려온 절대 권위와 온갖 영화와 지금의 어려움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잘못을 인정한 그의 양심고백이 마치 시장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자가 아직 속이 좁아서 그러리라.

무디스와 그린스펀의 실토와 잘못 인정은 '시장'에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변화를 감지케 한다.

좌파인 사회당 출신의 세골렌 루아얄을 물리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은행 국영화'를 골자로 하는 금융위기 타개책을 내놓으며 "시장독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우파에 뿌리를 둔 사르코지의 '은행 국영화'라는 사회주의 정책은 EU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얻기까지 했다.

20년전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미국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고하고, 월가의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는 미국이 과도한 빚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될 것이란 주장을 폈다.

나아가 정치외교학자인 워렌 코헨은 '제국의 추락'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이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외교 국방 등 각 부문에서 그 위상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시장'과 시장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위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남에 틀림없다.

미국 영국 등은 그토록 경계해오던 정부의 시장개입을 당연시하기 시작했다. '고성장·저물가'로 대변되는 신경제(New Economy)는 고개를 들고 있는 'S의 공포'로 힘없이 논리를 잃었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도 과도한 규제완화와 방임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이라는 분석에 그 빛을 잃었다.

앞으로 어떤 세상, 어떤 시장이 펼쳐질지 실체를 모를 뿐, 손톱만큼의 반론도 허용치 않고 영원할 것 같았던 시장제일주의가 도전을 받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절대'는 원래 없다. 일시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더라도 변하게 마련이다. 로마제국의 붕괴가 그렇고, 사회주의 몰락이 그렇다. 이것이 역사이고, 인생이 아닌가. 조변석개를 조롱하는 인간의식이 어찌 보면 또 다른 가벼움이어서 그저 가여울 따름이다.

이황 유성룡 박지원 박제가 등 조선시대 선비들의 자식사랑을 담을 '아버지의 편지'를 며칠 전 읽었다. 이들 철학자들의 편지에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근심이 듬뿍 배어있다.

수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나무처럼 거대한 이들이나, 이들에 비하면 한섶 풀에도 미치지 않는 기자나 자식사랑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도,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것은 부모들의 내리사랑 뿐이지 싶다.

이번 주말엔 애들 데리고 어버님 묘소를 찾아 소주 한잔이라도 올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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