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오기현 인턴기자) = "비가 그쳐야 할텐데... 요즘 일도 없어 죽겠는데 큰일이야"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든 30일 오전 5시. 인력사무소 밀집지역인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사거리에 일용직 건설근로자 100여명이 내리는 빗방울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일용직 건설근로자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
하나같이 낡은 옷을 입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근로자들 사이로 껄껄거리며 웃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색이 바랜 빨간 모자를 쓴 유형환(53)씨는 "돈 없는 놈이나 돈 많은 놈이나 사는 건 다 꽝이야. 그래도 돈이 많아야 좋지"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건설근로판에 30여년을 있었지만 지금처럼 일거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 동남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돼 한국 사람들이 일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일 못 구하고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 얼굴 볼 때 얼마나 미안한 줄 알아? 일거리가 있어야 애들 대학등록금도 내주지"라고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길 건너편 하나은행 앞에는 40여명의 중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었고 근처에서 중국인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무리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보였다.
머리에 흰머리가 가득한 김상규(57)씨는 "저 중국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일을 못나가. 일주일에 일을 많이 나가봐야 세 번인데 인력사무소에 10% 수수료 내고 나면 남는 돈도 없어"라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1978년 한 자동차회사에 생산직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 이후 각종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30여년째 이곳을 맴돌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안 모(52)씨는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나이 먹고 기술도 없어서 막노동 말고는 받아주는 곳도 없어"라며 김씨의 말을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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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말을 꺼낼 때마다 빠져버린 아랫니 두 개가 유난히 눈에 띈다. 하루 끼니 걱정이 먼저인 안씨에게 이를 해 넣는 것 따위는 사치처럼 보인다.
◇ 인력사무소 "그 사람들 일자리 구해줘야 되는데..."
얼마나 일이 없기에 근로자들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일까. 사거리 근처건물 2층에 자리잡은 A인력사무소를 들어가 봤다.
직원용 책상 2개, 원탁 하나에 낡은 소파 2개가 전부인 좁은 인력사무소 안에는 낡은 회색 외투를 입은 박태수(67)사장이 건설사 관계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어디라고? 몇시까지 보내면 돼? 알겠어. 자리 생기면 계속 연락해줘"라고 말하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박씨는 평생 일하던 식품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후 올해 5월부터 동서가 운영하던 인력사무소를 인수받아 일하고 있다.
인수 초기에는 하루 평균 50여명의 근로자를 현장으로 내보냈지만 요즘은 30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여기 일하러 오는 사람 대부분이 가족도 없이 혼자 고시원에 살아.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니까. 그 사람들 일 못주고 빈손으로 보낼 때 내가 어찌나 미안한지 말도 못해"라고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통계청의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인력공급 및 고용알선업' 업체수는 2121개로 남구로역, 신정네거리역, 영등포, 양천구 신월동 등에 밀집해있다.
그러나 하루 몇 명의 일용직근로자가 현장에 나가는지는 고용노동부, 통계청, 건설근로자공제회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꽁꽁 얼어붙은 건설경기에일자리가 사라진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