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웅틴 툰, 내 이름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수치 여사와 같은 나라, 미얀마에서 왔다. 36살이다. 그런데 미얀마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다. 19년째다. 한국말도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능숙해졌다.
하지만 한국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설에 고향에도 못가는 난민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17살이었던 94년, 대학교 입학을 한 뒤 2주가 채 안 돼서 대학 문을 닫았다. 1988년 민주화 항쟁의 여파였다. 별 생각 없이 '그럼 해외에서 일도 하고 공부나 하자'라고 생각해 산업연수생 제도를 이용해 한국에 왔다. 꼭 한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좋았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여권 제작에 과도한 비용을 청구한다는 이유로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가 '반정부 활동' 딱지가 붙었다. 그리고 난민이 됐다. 그렇게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 해부터 '버마행동한국'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어쩌다가'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 서게 됐다.
어머니는 지난 2007년 3월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께 차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을 못하고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느라, 그렇게 병을 얻어 돌아가신 것 같아서 아직도 내 마음 한켠이 아리다. 어쩌다가 내가 태어난 곳에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을까. 아직도 아버지와 5명의 형, 누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한국에 와서 갖은 노동을 해 왔다. 배의 펌프 만드는 일, 컴퓨터 배선 깔기, 아파트 차단기 조립, 섬유회사 원단 편집, 샤시 공장, 미싱일 등등. 닭고기 유통 업체에서는 브라질산 닭고기의 뼈를 발라 살코기로 가공했다.
나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왔다. 그래서 옆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 나에게 던지는 말은 모두 반말이고 욕이었다. 나는 반말과 욕을 처음으로 익혔다. 그리고 썼다. 남들이 쓰는 말을 썼을 뿐인데 존댓말을 안 쓴다고 핀잔을 들었다. 들은 적이 있어야 쓰지. 나는 심지어 '반말'이라는 말도 몰라서 내가 할 말의 '절반'만 했나하는 고민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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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주민 방송(MWTV)에서 동남아 이주민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들도 함께 일하는데 현재로선 내가 유일한 상근 근무자다. 네팔, 러시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 영어, 미얀마 그리고 한국 8개 언어로 송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가장 큰 업무는 바로 이주 노동자들의 고충 상담이다. 아직도 산업 현장에서의 처우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동남아 노동자들의 수모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백인들에게는 친절하고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무시하고 막 대한다. 모두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필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범죄자를 대하듯 하는 건 정말 고쳤으면 좋겠다.
한국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나라다. 기회가 열려있고 의지만 있다면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울 수 있다. 그런 면이 좋은 점이다. 하지만 극도로 일 중심적인 국가인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사랑이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다. 가족끼리의 유대도 극히 약한 것 같다. 모든 것이 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 고향 미얀마의 경우 GDP는 낮아도 가족들끼리 유대가 끈끈하다. 가난한 살림에 남에게 기부하는 일도 다반사다. 포천, 강화에서 촬영을 하며 독거노인 분들을 많이 만나 봤는데 한국은 이런 면에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를 따르라거나, 구미국가들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다. 젊은 층이 남의 시선, 비교 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구축해 나가야 한다. 타인과 교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설이 다가오니 고향 생각에 더욱 가슴이 아린다. 미얀마의 설은 4월 물 축제와 함께 있다. 한국의 설과 다른 점은 한국은 제사를 돌아가신 분을 위해 지내는 것에 반해 미얀마는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을 지낸다.
법당이나 집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나눠먹은 뒤 의식을 지낼 때는 모두 일어나 "행복하라" "행복하라"라고 외친다. 살아있는 동안 함께,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미얀마 인들이 추구하는 바다.
이번 설 연휴는 미얀마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몽롱예버(송편처럼 반죽 안에 야자수설탕을 넣어 만든 떡으로 '물위에 뜨는 떡'이라는 뜻)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보낼 예정이다. 영상 편집일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2014년 설은 미얀마에서 보내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대선에 출마한다. 미얀마는 135개 민족이 함께 하는 나라다. 미얀마 135민족의 아이들이 함께 보고 배울 수 있는 교육 TV를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두 나라에 힘이 되는 영상물을 많이 만들고 싶다.
곧 설이다. 미얀마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