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아픔' 희귀병①] 환자 절반 자살 생각…복합부위통증 증후군(CRPS)

# A씨(30)는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뒤부터 바람만 불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어쩌다 종이 한장만 몸에 스쳐도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너무 아파 하루 수차례씩 기절할 정도다. 이른바 '복합부위통증 증후군'(CRPS)이다.
CRPS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치병이다. 뇌의 통증 담당 회로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뒤 CRPS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CRPS 환자는 2만여명으로 추정된다. 환자 스스로 병인지도 몰라 치료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CRPS 환우회에 따르면 환자의 약 80%가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 진료기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지방 환자들의 다수가 집계에서 누락됐다는 분석이다.
환자들은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케타민, 몰핀 등 마약류 진통제로 일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보험 처리되는 진통제 용량이 한정돼 있어 약이 부족한 바람에 응급실도 실려 가는 경우도 잦다.
◇온몸이 불타는 느낌… "죽고 싶다"
환자들은 CRPS 고통을 '불에 타는 느낌, 수천 개의 칼로 베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한 환자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통을 느끼는지 모르겠다"며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죽어야 끝날 형벌'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CRPS 환자들의 자살 고려 및 시도율은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높다. 조성근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CRPS 환자의 64.5%가 자살을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35.4%)의 약 2배다. 또 CPRS 환자들의 실제 자살 시도율은 37.5%로 일반인(3.7%)의 10배에 달했다.
한 의사는 "출산할 때 느끼는 고통보다 심한 것이 신경이 살아있는 신체를 절단할 때 느끼는 고통이고, 그보다 심한 게 불에 타는 고통인 '작열통'"이라며 "CRPS 환자들은 작열통을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느낀다"고 설명했다.

2010년 입대한 배우 신동욱(31)은 훈련 도중 쓰러져 1년 간 치료를 받던 중 CRPS 진단으로 의병 제대 했다. 연기대상까지 받았던 신동욱은 CRPS 진단 후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독자들의 PICK!
CRPS 환자들은 투병 후 생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달에 몇번씩 응급실을 다니다 보면 직장생활이 불가능하다. 마약류 진통제를 복용하면 단기 기억 상실 증상도 나타난다. 고통이 엄습하면 몸부침리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약에서 시작해 약으로 끝나는 것이 CRPS 환자들의 일상이다. 진통제, 합병증 약 등 하루 수십 알의 약을 먹는다.
◇교통사고로 발병 땐 자비 수술도 못해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은 '척수신경 자극기 삽입술'이다. 척수에 전극을 설치한 뒤 고통이 올 때 버튼을 눌러 고통을 줄인다. 완치는 힘들지만, 최소한 극한 고통은 없어진다. 한 환자는 "수술 받기 전 하루에도 몇번씩 자살을 생각했다"며 "수술 받은 뒤 잘 살아보자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CRPS 환자는 보험 혜택을 받기 힘들다.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회는 골다공증 등 11가지 CRPS 증상 중 8가지가 나타나야 보험 적용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8가지를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경우 자비 수술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12조 5항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 김계환 변호사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수술비를 청구하면 2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고, 보험사에 청구하면 다툼이 발생해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일단 환자가 수술비를 내서 치료를 받고, 청구대상 시비는 나중에 가릴 수 있도록 법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