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시절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늘 강조했다. 범죄란 것이 보이지 않아도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올빼미처럼 밤에도 눈을 밝히면서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다 했다. 이따금 시도 읊었다. "하늘에는 별이 살고/땅에는 꽃이 살고/우리의 가슴에는 사랑이 살고 있다."
경찰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책임감에 낭만적인 면모를 갖춘 '풍류인'으로 느껴졌다. 간담회 등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시원시원한 답변에 달변가였다. 충북경찰청장 시절 자신이 이름 붙인 '주폭(주취폭력)척결'을 서울경찰청장 임명 후에도 도입해 '술먹고 행패부린 자'를 잡아 들이며 유명세도 꽤 탔다.
#한 장의 사진이 가관이다. 지휘관은 '무쏘의 뿔'처럼 홀로 자리에 앉아 있고, 후배들은 오른 손을 들고 선서를 하고 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선택된 22명 가운데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비롯한 21명은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를 했다. 그러나 3만명이 넘는 경찰관을 지휘하던 전 서울경찰청장은 '양심에 따라' 그랬는 지 몰라도 선서를 거부하고 앉아서 자리를 지켰다.
15일 경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8월에 이어 또 다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이유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 때문. 모두 기립했는데 혼자 앉은 김 전 청장을 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쓸쓸해진 가을인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국정감사장에서 보인 모습을 비롯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김 전 청장의 태도는 예전에 봤던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경찰의 '실질적 2인자'이자 '경찰의 얼굴'로 대신되는 서울경찰청장 시절 자존감은 어딘가에 버려놓은 듯 했다.
증인선서는 국민 앞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과도 같다. '법대로'만 외치면서 선서를 하지 않는 게 스스로를 지키고 타당한 행동이라고 여길 지는 모르겠지만 불거진 의혹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 앞에 양심껏 할 말은 하고, 밝힐 것은 밝히는 게 옳다.
10개월전으로 돌아가 대통령선거 사흘전인 2012년 12월16일. 밤 늦게 뜬금없이 배포된 자료에는 "댓글 흔적은 없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 김 전 청장은 출입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했다. 답변은 명쾌했다. "뒤져보니 대선에 영향을 줄 댓글은 없었다고 보고를 받았다" "경찰이 오해를 받기 싫어 대선이 임박했어도 결과를 있는 그대로 한밤중이라도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꼬리를 무는 질의에도 자신의 판단이 맞고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고 강하게 해명했다. 워낙 '세게' 나오니 출입기자들도 말문이 닫혔다. 당시 기자들이 김 전 청장의 해명을 어느 정도라도 받아들였던 것은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호방함과 당당함에서 느꼈던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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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바뀐 태도는 실망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워싱턴사고' 이후 말했던 "사람 속을 모르겠다"는 말도 실감난다. 한 때 '경찰의 얼굴'로 나섰던 김 전 청장이 증인선서를 잇따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된 말로 '국민을 졸(卒)로 보는 게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김 전 청장은 자신이 그렇게 강조했던 명예뿐 아니라 경찰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