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 대출' 발목잡힌 30대 직장인 통장 봤더니…

'학자금 대출' 발목잡힌 30대 직장인 통장 봤더니…

신희은 기자
2014.01.23 05:34

[기획 '빚수래빚수거' ①-1]"살기 위해 받은 대출, 형편은 나빠지기만 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지환씨(31·가명)에게 주말은 없다. 중고생 과외를 세 개씩 하는 탓이다. 몇 달째 하루도 쉬지 못했다. '만성피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돈독'이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의 통장잔고는 이번 달도 '마이너스'다. 김씨는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아 죄의식이 느껴지고 자꾸만 위축된다"며 울먹이기 까지 했다. 김씨에게 연애는 사치가 된지 오래다.

김씨를 옭아매는 굴레는 '빚'이다. 대학시절 학자금으로 2500만원을 대출받은 게 생전 처음 진 빚이었다. 은행에 다니는 지인에게 월세보증금으로 1000만원을 더 빌렸다. 취업하면 가장 먼저 갚겠노라고 약속했다. 6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전세살이를 하시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순 없었다.

매달 들어가는 월세 40만원과 통신비, 식비 등 먹고 사는 데만 최소한 50만 원이 넘게 들었다. 시급 5000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어가며 생활비는 벌 수 있었다. 배낭여행, 유학은 꿈도 못 꿨다.

졸업과 동시에 3500만원을 빚진 채로 사회로 나왔다. 다행히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세금을 떼면 간신히 200만원을 넘겼다. 김씨는 "돈도 벌기 전에 빚부터 졌다고 생각하니까 겁도 나고 마음이 조급했다"며 "얼마 안 되는 월급이지만 대부분 빚 갚는 데 쏟아 부었다"고 했다.

김씨는 첫 월급 200만원에서 부모님 내복 선물을 사고, 원룸 방값 40만원을 내고, 용돈 30만원을 뺀 120만원을 고스란히 은행에 갖다 준 기억이 생생하다. 학자금에 월세보증금 상환이 시작되자 한 달에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만 160만원에 달했다.

빚을 갚느라 늘 현금이 없다보니 생활비를 카드로 쓰기 시작했다. 20~30만원씩 쌓이던 카드값은 어느덧 300만원이 됐다. 갚기 힘들면 리볼빙 서비스로 상환일을 늦췄다. 얼마 안가 카드 한도도 바닥을 드러냈다. 장기연체로 원금에 대한 이자가 20% 가까이 붙었다.

은행에 추가로 대출을 받으러 갔지만 어렵다고 했다. 저축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저축은행을 세 번 이용했는데 시원하게 빌려주니까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며 "그땐 그래도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직장인이라고 싸게 해 준 이자가 20%가 넘었다"고 털어놨다.

학자금, 월세보증금 대출에 저축은행 대출까지 물리면서 김씨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빚 때문에 술, 담배를 모두 끊고 친구까지 멀리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고 주말 과외까지 뛰면서 돈을 모았다. 생필품까지 아껴가며 살아도 매달 '적자인생'이 되풀이됐다.

김씨는 "과소비한 것도 없는데 의식주를 해결하려다 보니 내 꽃다운 20, 30대가 빚 때문에 다 날아가게 됐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어서 이후 삶은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마흔 살쯤 되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대출에서 영원히 벗어나면 그땐 연애, 결혼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신현철(41·가명) 과장은 "다들 빚을 짊어지고 사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 과장은 스스로를 '중대형 아파트에 사는 거지'라고 자조한다. 경기도 광명 33평 아파트에 사는 신 과장은 1억8000만원 대출을 갚고 있다.

맞벌이 하던 아내가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활고'가 시작됐다. '아이 둘에 외벌이 아빠' 신 과장이 한 달에 갚는 원금과 이자는 140만원. 월급 350만원이 통장에 입금되는 25일이면 은행 대출 원리금 140만 원이 빠져나가고, 두 아이의 유치원비와 영어학원비 40만원, 아파트 관리비 등 공과금 20만원, 보험료와 통신비 30만원이 속속 인출된다.

여기에 네 식구 식비 등 생활비 40만원, 부모님 용돈 30만원, 경조사비 10만 원 가량을 빼면 제대로 적금 붓기도 여의치 않다. 갑자기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아프면 '급전'이 필요하게 돼 마이너스통장도 쓰고 있다. 결혼하면서 시작된 '대출인생'은 전세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 생활비 대출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다.

신 과장은 "아이들 교육비에 결혼비용, 80대를 바라보는 부모님 노후에 우리 부부 노후까지 앞으로도 은행에 손 벌릴 일만 남았다 싶다"며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집은 은행이 사주는 거야. 문 열고 들어가서 현관까지만 내 집이고 큰방, 작은방, 거실은 다 은행거야"라는 말만 돌아온다.

"살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열심히 갚아 나갔지만 형편은 나빠지기만 했다."

초·중·고등학교부터 시작해 대학진학, 결혼, 출산, 자녀양육, 자녀의 결혼, 노후까지 중요한 생애주기마다 대출을 받고 빚을 갚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평범한 이들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