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선박사고 이후 전 국민의 마음도 가라앉고 있다. 나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에 앞서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로서 학생들에게 생긴 일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날마다 시간 나는 대로 해당 학교를 방문해 전문의 지원자들과 함께 심리 상담을 지원했다. 외부인인 전문의들이 학교에서 시간을 조금 보냈다고 해서 피해상황에 대한 고통과 분노를 다 공감한다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해 듣고 보게 되는 일들이 있어 몇 마디 당부를 드리고자 한다.
사고가 발생한 후 언론에서는 연일 사고에 관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기자들의 수고는 잘 알지만 종종 그 수고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것 같다.
상담 과정 중 아이들에게 여러 번 듣는 이야기는 "자신의 사진이 동의도 없이 언론에 실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을 방문한 학생들은 다음날 자신을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기자와 마주칠까봐 밖에 나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할 때가 있다. 지난 24일 아이들이 첫 등굣길에 가장 먼저 본 것은 반가운 선생님의 얼굴이 아닌 굵은 삼각대와 카메라였다.
병원에 입원한 학생들 역시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카메라를 피해 병실 밖을 다닐 때 담요를 뒤집어쓰고 나가야 한다. 또 그 장면이 국민에게 공개된다.
그뿐 아니다. 언론을 통해 병원에 입원한 학생의 최근 심리상태가 상세하게 공개된다. 대다수에게 특정한 증상이 있다고 발표되면 모든 국민이 입원학생 역시 그런 증상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심리상태가 전 국민에게 공개될 수 있는데 아이들이 솔직하게 상담에 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면 마음이 무겁다.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심리적 미사여구로 내담자를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의 실제적인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도 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안전'은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 하고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러나 지켜줘야 할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의 당사자들이 안전하게 느끼지 않을 때 이들을 격려하는 국민 역시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언제든지 내 '안전'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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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많은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물론 매체를 통해 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스트레스 반응을 겪더라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는 진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내 조카 같고, 친구 같고, 자녀 같은 학생들이 희생을 당한 것을 주변의 일처럼 느끼고 있다.
최근 진료실에서 여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은 그간 잘 지내시던 분들의 증상이 갑자기 악화돼 예약을 조정해 방문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잃었거나, 스스로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던 경우, 혹은 평소에도 걱정이 많고 우울한 기분이 있었던 경우 온종일 계속되는 세월호 침몰 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서 힘들어할 수 있다.
과거에 받았던 정신적 충격이 마음 속 어딘가 남아 있다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다시 자극을 받는 경우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도 비슷하다.
불안과 스트레스, 예민함, 눈물, 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심해지면 계속 운다거나 짜증, 심한 우울감, 분노 폭발, 허무감, 무기력감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우선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사를 반복해 들여다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하늘을 본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잡지를 보는 것도 좋다. 힘든 시간에도 잘 버텨온 나와 내게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마음이 울적하다고 술을 마시는 것은 해롭다.
초등학생이나 유아의 경우 아무리 똑똑해도 전체적인 사실을 다 파악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아이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좋지 않다.
가능한 한 간단하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상황을 설명하고 정보의 양은 아이의 연령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 어린 아동의 경우 사건을 다루는 내용의 텔레비전 시청을 제한하는 것이 좋다.
만일 아이가 사고에 관해 걱정 한다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이 미루어 짐작하는 염려와 다른 엉뚱한 걱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야기를 부모에게 했을 때 부모가 무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