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흔드는 '기술유출'③] 승소 어렵고 업계서 '낙인'
#중소기업 A사 대표 김민욱씨(가명)는 4년 전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다. 한 대기업이 A사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프로젝트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A사의 전 대표와 공모해 기술개발 직원 2명과 시스템 구축 매뉴얼 등 영업비밀을 빼돌린 것이다. A사 직원들은 업계 최고 급여인 월 1000만원을 보장받고 대기업에 이직해 핵심기술을 빼돌렸다.
김씨는 2011년 3월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것이 "일생일대 가장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말한다.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에 더해, 업계에서 '감히 대기업에 대든 트러블메이커'로 낙인이 찍혀 거래선이 끊기는 등 2차, 3차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고소 사실이 알려진 후 이 대기업의 요청을 받은 모 공기업은 김씨에게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진행 중이던 20억짜리 사업권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협박했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고소를 취하했지만 경찰은 수사를 계속해 2012년 9월 A사의 전 직원들과 대기업 관련자들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이후 사건은 검찰에서 1년 넘게 계류돼있다 결국 대기업 직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났다. '빼돌린 기술로 입찰에 성공했다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우리 기술을 가져가지 않았으면 제안서도 못 썼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김씨는 지난해 파산했다. 아직도 기소된 전 직원들과 끝 모를 소송 중이다. 김씨는 "10년간의 노하우가 담긴 핵심기술이 대기업에 넘어간 순간 우린 존재가치가 사라졌고 승소 여부를 떠나 모든 걸 잃었다"며 "경찰이 재빨리 압수수색해 회수해도 재판과정이 길어지면 견뎌낼 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의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 시행 중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승소하더라도 피해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인 중소기업을 실제 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씨와 같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2011년 12월 경기청에서 수사를 시작한 한 중소기업의 '보일러 도면 등 유출' 건도 13개월 검찰수사 끝에 불기소 처분됐으며, 이후 피해자 항고로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손해를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해 무혐의처분을 받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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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종의 송재섭 파트너변호사는 "산업기술은 복잡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아 유출여부 확인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사도 길어져 이 기간에 피해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손해액 추정 규정이 있지만 실제 입은 유무형의 피해를 모두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 중 핵심기술을 도둑맞고도 평소 보안문제 소홀로 '영업비밀'을 인정받지 못해 영업비밀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영업비밀보호법 제2조2호에 따르면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경제적 유용성)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비밀 관리성)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세 번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점영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산업기술유출수사팀장은 "중소기업에서 기술개발에 치중하다보니 관리에 소홀해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를 입는 걸 볼 때 안타깝다"며 "평소 관리부실로 영업비밀보호법이 아닌 '업무상 배임'으로 처리되면 사용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진행하지 못해 피해회복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현행 영업비밀보호법에 명시된 '상당한 노력' 문구를 '합리적 노력'으로 변경하는 등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유출의 주요 보호대상인 중소기업의 현실 여건을 감안해 법률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경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 이충곤 경위는 "'비밀관리성'이란 주인이 그만큼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투자하고 관리했는지를 보는 것으로, 같은 기술이라도 보안관리 안 했으면 '보석'이 아니라는 관점"이라며 "하지만 대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문서보안부터 보안담당자까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그런 여건이 못 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잣대에서 비교하기 어려워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송재섭 변호사는 "기술유출 보호 관련법이 실제 기술유출이 발생한 이후 얼마나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지 따져보면 매우 부족한 측면이 많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와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은 전체 형사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업비밀 인정요건 등 법률 개정 노력이 있지만 실무에서 법의 제정 목적에 맞게 법을 유연하게 적용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